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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와 사이를 엮어내는

by 잡학거사

“사랑한다”라고 하는 명제를 놓고, 곰씹어보면..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은 맞는 사실 같으며, 방임과 방치가 아닌.. 저질러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닌, 항시 관심과 관계를 이루어냄이 지속되어야 함에 전적으로 현명하여야 하고, 슬기로워야 하는.. 지혜의 총체적인 집합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관계의 시간 속에 행함이 함께 동시에 아우러져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에 대한 근원보다 진정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인가? 를 생각하여야 하는 것은 사랑과 이해의 대상으로.. 사랑은 설명 없이, 이해는 설명을 조건으로, 상대와의 간극을 직관적 행동으로 메꾸어 나가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인식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다가는 혼란의 연속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여야 함은 이해라는 자체가 흐릿한 것들이 명료해지는 상태로, 극도로 명확한 상태에 이르므로 인하여 모호함과 그럴 것이라는 미루어 짐작을 통한 오류가 적어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 자체는 상대를 억압하기도 하며, 무한 방임에 따르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경우를 만들어.. 서로가 인지 못하는 경우에 이르면 스스로 형성해 놓은 사고 체제 속에 함몰되거나 매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상호 대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 기대와 요구로 점철된 관계와 관심이라면.. 사랑의 유통기간이 지나버리게 되면, 상상 속에 그려진 허상과 충돌에 따른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삶에서는 살기 바쁘고, 살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며 진정으로 중요한 사랑이라는 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이루어내지 않은 상태로 지내며 잊고 살려고 버둥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한다 라고 하는 미명 아래 상처주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지속적인 강한 자극으로 돌연변이적 소견과 암적 세포로 발생케 하는 경우는 밝혀내지 못해서 그러하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 거의 전부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기도 합니다. 한쪽에만 집중된 상처가 누적되어 가는 것은 아닌, 상대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환경에서는 보이지 않고 증후군이 나타나지 않아 그러하지.. 심한 데미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상처로 이별을 경험한다고 하는 것은, 그에 따른 후폭풍은 보이지 않는 곳을 강하게 후벼낸 강한 아픔으로 극단적 행동을 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이 목도한 것처럼.. 양쪽에 보이지 않게 서로에게 누적된 상처로 인하여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그저 삶을 살아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얼굴을 지속적으로 맞대고 호흡하며, 살을 부딪기며 살아가야함에..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감내할 수 있다고, 치부할 수는 있지만.. 상대의 어설픔과 무지함에 따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게 되는 괴로움에 봉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잘못되거나, 엉성한 관념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내려놓지 않으려 하는 것보다도.. 서로 간에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 설정되지 못함에 따르는 문제가 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이와 사이를 엮어내 줄 알며, 간극과 간극을 어떻게 매끄럽게 이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지혜로움을 갈구함이 현명하고 슬기로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물론, 서로간의 입장에서 간극은 냉혹함을 지니고 있으며, 그를 헤아려내기는 쉬운 일은 절대적으로 아니고, 깊은 관심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 사랑의 마음 중심이 되어야 표출과 접근이 가능할 것입니다. 상대의 간극으로 버거워하기도 쩔쩔매야 하지만, 세상만사에서 나와 관계되어야 하는 다양한 존재만으로도 기겁을 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부가되어 그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뒤로 넘어갈 상태에 이르렀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질적으로 인간들의 삶 자체에서 서로 간의 간극은 멀고도 깊다고 할 수 있으므로, 무시와 방임, 차단만이 능사가 아닌, 좁히려는 마음 자체가 소중한 것 같습니다.


“사는 동안 멋지게”의 에세이 문구처럼.. “속이 차 있는 사람의 눈에서는 광채가 난다. 무언가 자기 자신의 색깔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은 멀리서 봐도 도드라져 보이고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니 가슴속에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담아두자. 그것이 진심이어도 좋고, 중심이어도 좋고, 사랑이어도 좋다.” 진리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의지적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것에든지,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며 관계를 지속함 따라 많은 변화가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음에..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상대가 제시하는 시선과 내용에 대하여 느낄 수 있는 자세를 먼저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미루어 짐작하여 처음부터 상대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추려 형성된 사고체계를 기반으로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고, 소통 소통하며.. 소통이 중요하다고, 언어가 지닌 차단의 역할을 제대로 할용 하지만 말고, 진솔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소통의 힘을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서로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뜻이 통하여 서로 오해가 없는 소통(疏通)으로 감정이 하나 되도록 하는 최고의 행복감을 이루며 세상을 살아 내야 할 것입니다. 소통을 향한 갈망만을 간절히 바랄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배려와 관심으로 대안 없는 비판과 그러할 것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서로 따뜻함으로 자기가 먼저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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