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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01. 2020

사실속의 지혜

라디오 광고를 듣다가 이병헌이 “바다를 본 사람은 호수를 보고 바다라 하지 않지만, 바다 같다고 한다는” 멘트하는 르노삼성자동차 QM6 나레이션을 듣고 너무 좋아서, 찾아보니 <맹자>에 나오는 말로 “관어해자난위수”라는 구절에 있었습니다.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라는 내용으로 어떤 내용으로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깊은 통찰력과 지혜가 담긴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와 인간계의 근저에 흐르는 보편적 진리를 꿰뚫어버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으며, 문자 자체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며 문자 그 자체가 살아 역동적으로 다가오게 한다고 이야기할 수 도 있습니다. <맹자>의 관어해자난위수의 내용들을 자세히 보면,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며, 대해를 본 사람은 웬만한 물은 바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따라서 물이라고 하기가 어렵다고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바다’는 큰 깨달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고, 그러한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법이며, 더구나 작은 것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깨달은 사람이 취할 태도가 못 된다는 격언과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은 모든 언어에 대하여 지극히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법으로 진정한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또한 두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벅차고 힘이 들겠지만, 한 점 숨김없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살아 갈 수는 없지만 조그만 부끄러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노장사상의 양대 산맥으로 <노자>는 주로 강인한 처세의 지혜를 설파하는 반면에 <장자>는 초월 사상이라는 도라고 하는 큰 관점에서 이 세상 모든 것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시(是)도 없으며 비(非)도 없고, 선(善)도 없는가 하면 악(惡)도 없다는, 가령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차별에 구애받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소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차별에 현혹되지 말고, 좀 더 자유로운 생활 태도를 취하라고 강조하고, 그것이 인간다운 생활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노자>가 도라 부르는 무위자연은 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도의 기능과 일체화 하는 것을 뜻하며, 세상의 모든 일에는 고저•강약•장단•강우의 조화가 있고, 이런 조화를 잘 이루는 일은 곧 순리를 따르는 일이며 도와 통하는 일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와 역사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아는 눈이 있어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며, 미래를 내다 볼 수 있어야 현재를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기 때문일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적 사실 속에서 선인들의 지혜는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고리라고 할 수 있으며, 저는 곰곰이 생각을 해 봅니다. 선인들의 전시대적으로 세상을 꿰뚫는 지혜에서 바다를 본 사람은 호수를 보고 바다라 하지 않지만, 바다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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