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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2. 2021

Great Rest & Restart (2)

슈퍼리치를 중심으로 Great Reset을 이루어가는 진영의 역할과 방향을 살펴보면, 인간에게 부여된 지혜로 발전시킨 기술을 최대로 적극적인 활용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중심에는 현실적 실물적 컴퓨터가 있음을 발견하며, 쓴웃음을 짓게 되는 이유는 하늘나라의 전을 지키는 교계는 컴퓨터를 등한시하는 것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로 젊은 시절의 수많은 밤을 허여케 지새우고 밥벌어먹고 살았던 자로써 그에 대한 부분적인 그림자라도 유추해보자면, 하나님의 전을 지키며 기도를 등한시 한 영역과 더불어 말씀이라는 영역을 통하여 자신들의 전유물인양 세상적 접근을 거부하고 파먹는 사이에 교계 안이 하나의 고립무원의 안하무인 지대를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요즘 수준의 컴퓨터는 미시적인 물질의 움직임을 규명하는 이론 기반의 양자컴퓨터로 고전적인(전통적인) 컴퓨터에서 자료의 양은 비트로 측정되며 데이터가 항상 2개의 명확한 상태 (0 또는 1)중 하나에 있는 2진 숫자(비트)로 인코딩 되어야 하지만 양자 계산은 상태의 중첩으로 있을 수 있는 양자 비트 또는 큐비트를 사용합니다.


Reset 영역에서는 이와 같은 고성능의 양자컴퓨터를 활용하여 자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철저히 활용하는 부분은 참으로 높이 살만하며 그의 도구로써의 실용성은 모든 것들이 만족할 만큼의 성능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교계는 믿음이라는 영역에 컴퓨터는 보조 수단으로서 형식과 절차를 돋보이기 하는 측면에서만 최대로 적용함과는 다르게 적그리스도와 그의 수하는 자신들의 단일 정부나 통합종교를 이루기 위한 작업과 더불어 목표로 향한 길을 트기 위해 컴퓨터를 활용하여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교계는 당해낼 재간이 없고 오직 은혜로만 버틸 수밖에는 도리가 있겠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상은 급속히 쓰나미와 같은 양의 정보를 통하여 변화해 나가며, 그를 활용하는 자들의 능력은 인체에 컴퓨터를 장착하여 내재화한 듯한 성능을 지니게 되므로 그들을 향한 접근에 대한 전략과 전술에 교계는 실패를 했다라고 함이 맞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의 역할과 분야는 과도하게 복잡해지면서 수작업이나 잔머리로는 분석과 접근하는 것은 불허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로 그에 대한 복잡도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상적 복잡도가 높아질수록 분석과 개선점을 도출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지수함수로 증가하듯 새롭게 Restart 한다는 것은 새로움에 걸맞는 조건과 환경이 요구되므로 그에 따르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으며 그 조건과 환경에 맞추어 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절차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Reset은 재설정에 필요한 회로를 기반으로 파워인 동력을 살짝 끊었다 다시 이어주면 되므로 재설정을 기반으로 하는 유/무선의 프로토콜(통신규약)을 받아들일 수 있는 회로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설계하고 Reset이 진행되는 시간 속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루틴으로 자신들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작업을 처리하면 그 전체 시스템은 그 의도된 바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지닙니다. 그렇다면 하드웨어 기반의 피지컬을 건드려 놓는다는 것은 몸의 세부 요건의 중심축에 Reset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반을 구축하는 의도로 볼 수 있으나, 대외명분적으로는 현재적 삶의 모든 생태계적 기반의 재설정이라는 명분을 비용과 함께 회복력(비상상태에 대한 대비)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통제를 통한 다른 것들과는 호환이 되지 않는 전면적인 재설계를 추진한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그럴싸한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암묵적 관계를 통한 실상은 세상의 인구가 포화되어 인과관계가 모호해 명확한 해결방안을 필요하므로 저 너머의 새로운 질서를 유지할 터이니, 따지면 안되는 이유로 과거에는 150여척의 각각의 배에서 살아갔다면 지금의 세계는 큰 배에 150여 개의 객실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음으로 그에 따르는 인구 감축/축소가 절대적이라는 대목을 잘 곰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절대적 대안으로 심리적이며, 육체적인 안전감을 심하게 손상시킴으로 인간의 취약점에 대한 결점을 깨닫게 되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신 건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정부의 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질 것이고, 스스로 돌아보고 함께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는 명분을 축적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통제 조정을 맡겨버리게 만들어가며 봉쇄가 주는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합니다. 이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개인의 기본적 권리라 할 수 있는 인간 존엄도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고립된 개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형성된 사회에서 형성된 인간 고유의 가치를 훼손당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모든 것들도 봉쇄 및 통제 기반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시 이상야릇한 곳에는 언제나 뭔가? 악취가 풍기거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 단일정부와 종교통합”에서 그 냄새의 근원을 살펴보면 왜? 그런 상황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단일정부를 주장하는 그들만의 “약속의 땅”은 그들이 기다리는 “Kingdom Now”라는 것으로 새롭게 Restart되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경되기 전에 현재에 왕국을 건설하고, 현재의 복음을 재설계하여 다른 복음을 혼합시켜버려 더 이상 순수 그 자체의 기독교일 수 없게 만들어버림으로 기독교 멸절의 목적과 목표를 추구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뒤에 적그리스도가 있다 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표면에 안개와 같이 깔아 놓은 성분들을 통하여 본질을 파악해본다면 기독교의 근간과 근본을 흔들기 위한 새로운 접근의 판을 재설계한 통합종교의 주장을 이루기 위하여, 논쟁 위에 논쟁을 설정하고 그 다음은 혼란이 지배하도록 논쟁의 양면을 조장하여 촛점을 논쟁점에 고정되게 함으로써 모든 장막의 뒤에 있는 정체를 아는데 실패하도록 한다는 행동강령을 공공연히 펄치고 있으나, 믿는 자들은 뭔? 소리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은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 Great Reset & Restart 전개의 결론으로 창조 역사와 구속사적 관점에서 피조물을 두고 벌어지는 “육천년 역사의 파노라마 대장정의 마지막을 향한 피날레의 엔드투엔드 클라이막스(절정)”라 저 스스로의 명명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배도와 반역의 기미가 서려있는 우상숭배를 위한 무시무시한 모략에 따르는 점철된 역사가 펼쳐져 대 환난을 이룰 것이라는 후속편까지도 예고되는 경우가 아닌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직분이나 영빨있다는 선지계열이 아니어도 세상만사에 믿음을 지니고 유심히 살펴도 답 나오는 것들을 살기 바쁘고, 세상 것들에 매혹되거나 정신 팔리게 만듬에 앞서 나가며 그러한 자신을 뽐내고 이야기할 거리를 만드는 것은 급박한 대서사시적 시대적 상황으로 본다면 절대 하면 아니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소지가 다분한 것은 지금으로, 우는 사자와 같다는 표효의 의미가 적용되는 시점에서는 납작 엎드려 주의 날개 밑으로 숨어야지 호기심과 자기만족을 위하여 잘난 척 후려 대다가는 어느 순간 싹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은 떠나질 않습니다.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지금이나 예전이나 불순종은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과 그의 법을 경히 여기고 아니라 맞다 뻐댕기며 신뢰하지 않을 때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데, 예전은 그 민족들에게 내려진 방황이라는 형벌이었지만, “영원”이라는 어마무시 무시한 축복의 약속을 거부나 얕잡아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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