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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정신 개비

개비를 했다는 것은 옛것을 걷어내고 새것으로 대체하는 의미로, 국악계에서는 “개비”와 “비개비”를 많이 사용하는데.. 우리나라 국악계는 무속과 관련이 깊다보니 대대로 내려오는 무당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삼현육각이나 시나위니 하는 것들을 배운 사람들은 “개비”이고, 소위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비개비”일 뿐으로 개비는 “진짜”, 비개비는 “가짜”라 은연중에 표출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개비의 사용에 있어 믿는 자의 입장에서는 마음 개비를 제대로 하여야 하는데, 세상사적 입장에서 지극한 인간으로 제대로 바뀌기 위해서는 “더 센 놈을 만나봐야” 한다는 말을 통하여 센 놈을 통한 “정신 개비”를 할 것이라 합니다. 저도 믿는 자이지만,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믿는 자들은 아주 강한 센 놈을 맞아 제대로 얻어 터져보아야지만 바뀐다는 것으로 진정으로 아픈 것이 무엇이며, 맞아야지만 제대로 바뀔 수 있을 것 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저 편안하게 잘 살았고 부족함 없이 살아서 그런지? 하나님의 은혜로 편한 상태를 유지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하늘 기준의 기준에 따르는 영계의 영역적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하며 나약한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의 편안함과 부족함 없음을 통하여 은혜의 강물에 속하였다고 느끼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깊은 은혜의 강물이 아니라.. 배꼽까지 차는 수위에 몸 담그고 철퍼덕거리며 자조하며 즐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강물은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곳으로 용기를 지니고 스스로 헤엄쳐 나가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 강물 초입에서 겁먹어 두려움에 떨며 버둥거리며 깔쭉거리며 희희낙락한다면 이는 믿음에 대한 깊이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지니려면 자신의 영 깊은 심연으로 침잠하여 그 가운데 임재하신 성령의 뿌리 깊음을 발견해야 하는 것으로.. 세상일 바쁘고 해야 될 것들 쌓여 대충 교회봉사로 퉁 치거나, 말씀의 줄기를 정리한다고 정신 개비를 통한 인격적 만남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선적인 선결적 측면에서 반듯이 알아야 중요 포인트는 믿음을 “피의 역사”속의 피 흘림으로 생각하여야 한다는 점으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를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은 수소와 숫염소의 피를 지성소로 가져가 증거궤 위 곧 속죄소에 부었으며, 피 뿌림으로 증거궤 속의 십계명을 어긴 죄와 범죄를 용서한 부분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피 값으로 사셨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구약은 죄지음에 대해서는 진노를 통한 심판으로 싹쓰리적 입장을 취하시거나, 직빵적 응답으로 바로 생명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지만, 전쟁은 수평선에 걸린 불길한 먹구름처럼 성경 역사에는 언제나 있었고, 성경은 전쟁의 역사적 기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으로 그 모든 장면들이 리얼하게 성경에 표출됨에는 무구한 생명까지도 희생되었음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로 힘입어 신약시대는 저주 아래 있던 인간들을 위하여 휘장을 찢어 주심으로 휘장이 제거됨으로 각자가 이동성전의 제사장으로 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라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의 절기를 지켜야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성경적 상징인 “피의 역사”는 전쟁뿐만 아니라, 복음의 전파도 순교자들의 피 흘림으로 이루어졌으므로 피에는 생명이 있고 피 흘림 없으면 사함도 없다고 하심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쳐 죽기까지 피 흘려내야 하지만, 마귀들은 피를 흘리게 한 숫자를 세며 즐거워 환희를 지르므로, 피의 속성을 제대로 알아야 믿음의 숙성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집단 아멘 최면에 걸려 아멘! 아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으로 피 흘림을 통한 용서와 속죄는 인간들이 아멘 한다고 통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쳐 내려놓음과 환난과 연단을 통해 바둥대며 짜낸 진액을 제시해야 하는 과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자이신 완전한 분 앞에서 죄인임과 악의 화신임을 인정하며 창조주 발 앞에 엎드려 죄사함을 간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피 값으로 다시 사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어 피 흘려 돌아가심에 우리들의 죄성이 얼마나 끔찍하고 가증한지를 깨닫고 마음아파 눈물을 흘리며 “정신 개비”를 진행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라도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믿고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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