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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Fint & Point

핀트(fint)와 포인트(point)는 행위를 함에 있어 “고정(fixing)"에 관한 의미로 말·행동 등의 요점은 포인트(point)를 쓰거나, 동작·작업 등이 속도를 맞추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에는 포커스(focus)와 싱크(sync)를 쓰게 됩니다. 포커스(focus)는 집중한다는 걸 강조를 하는 뉘앙스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한 가지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고, 지금 진행 중인 행동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 강하며, 핀트(fint)는 모든 문제에 해결방안과 방법의 어떻게(how)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핀트를 잘 맞춰~ 하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찍을 대상을 사진 속 어디에 위치시키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찍을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핀트가 안 맞으면 흐릿하게 나와 찍으나 마나이며, 촬영 후 컴퓨터로 수정과 보정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동 보정을 해주는 장치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핀트가 중요하드라도 빛의 통로에 설치된 렌즈의 성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미세한 표현과 디테일의 훌륭한 해상과 깨끗한 재현성은 렌즈가 지니는 밝기와 성능의 징표이므로, 렌즈는 촬영 행위 자체의 포텐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가족들과 “에덴의 회복”이라 주제로 서로 말씀을 나누었는데,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이라는 인간을 만드셨고, 아담에게는 진정한 친구인 짝을 만들어 같이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에덴에서 삶을 영위했는데, 에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을 것이므로 열매를 먹지마라 당부하셨습니다. 에덴은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곳으로 죄의 근원인 선악과 정욕이 없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아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와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을 거야~ 라는 사단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에 입을 대는 순간, 영이 죽어버리므로 인하여.. 부끄러움과 선악의 결과에 따르는 형벌이 무서워 이전처럼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랑하심을 깨달았으나, 자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므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곧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자들을 죽어버리게 만든 장본인으로 낙인 되었습니다.


위의 내용의 기본전제를 바탕으로 가족과 함께 나누었으며, 결론적으로 “에덴의 회복”은 옛 에덴동산에서 새 에덴인 새 예루살렘 동산의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랑의 표징으로 천년이 하루 같으시지만, 우리 인간들은 한정된 시간만의 삶을 지니므로 그에 대한 감각을 갖출 수는 없겠지만.. 긍휼을 베풀어 주심의 과정에 필요한 타임라인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우둔함과 완악함, 불의함과 불순종(옛 성품)의 죄성으로 순종치 못하는 자임을 깨닫게 하셨다가 그 자체를 이겨내게 하시며 신비로움을 경험케 하시고, 이제는 인간 실존이 불순종임을 깨닫고 알았다고만 하지 말고 옛 성품을 과감히 던져버린 성령의 불로 태워 인침 받은 자들만 불러 모아 새 에덴에 거함을 허락하시어 “에덴의 회복”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핀트와 포인트를 맞추어야 하는 부분은 요한계시록 7장의 계시된 새 사람과 새 언약의 성취와 완성에 있어서 예수님의 초림이 새 언약의 성취라는 것으로, 예수님의 재림은 새 언약의 완성으로 왕이신 예수께서 왕의 대로로의 귀환에 관한 그 시와 때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가까운 시간에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은 믿는 자들의 영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 세상 살아감에 있어 생명은 사탄마귀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그 주변을 흔들고 건드려 스스로 그 자체를 내려놓게 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믿음은 대충 믿어서는 절대로 아니 됨에는 자신의 영생(영원한 생명)이 담보됨으로 그에 관련된 핀트와 포인트를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영원에서의 모든 것이 결정되게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목사님이 자신의 영생을 결정지어 면제부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 믿는 전화로 소통하는 가까운 교우가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은 절대 아니므로.. 무조건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핀트와 포인트를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너나 잘해~ 니가 어떻게 아냐?? 교만한 것 아니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하든 “에덴의 회복”이라는..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자들이 모여들고, 예수님과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과 뜻, 생각과 삶을 드린 자들이 모인다면.. 누가 뭐라 하든.. 저는 그곳에 함께 하고 싶을 뿐입니다. 스데반 집사처럼 짱돌에 맞더라도.. 저는 예수님을 빨리 뵐 수 있다는 소망과 잘난 척들 함이 없고 아비규환의 지저분한 것들을 보기 싫어서라도 하루 빨리 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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