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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속 좁은 표상

표상이란? 지각 또는 기억에 근거하여 의식할 수 있게 된 관념 또는 심상으로 물리적 표상(physical representation)과 정신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리적 표상은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의 상황이나, 사건을 떠오르는 것처럼 마음 밖의 물리적 매개물이나 매개체를 통하여 그 대상을 떠올리는 것이고, 정신적 표상은 개인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심리적 관계를 맺는 기본방식을 결정하는 심리적 내부 구조로, 이에 대한 행동과 태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표상은 마음 밖의 실제 대상과 유사한 지각적 특성을 유지한 채 마음속에 심어지는 유추(analog) 표상과 지각적 유사성이 없이 단어로 치환되는 분석(analytic) 표상으로 분류되며, 분석 표상은 추상적인 생각에 대한 표상을 가능케 해 준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표상은 감각적으로 외적 대상을 의식상에 나타나며, 이는 사고에 의한 논리적이며 추상적인 개념과는 구별되고, 지각에 입각하여 형성되기는 하지만 현재 지금 시점은 지각이라 하며 과거에 지각된 대상이 기억에 의해 재상됨은 “기억”, 과거 지각의 여러 요소가 주관에 의해 조합되면 “상상” 기반의 표상이라 합니다.


관념도 표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지각된 여러 요소 중에서 선택이 이루어져 두드러진 것, 중요한 것이 받아들여져 각자의 지각 표상과 사고의 개념을 매개하게 되며, 의미적으로 본다면 과거의 것을 재생, 미래를 예견하여 대상을 자신의 심상 위에 그려내고 과학적 인식이나 실행, 예술적 창작에 있어 적극적인 매개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다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미처 세심하게 생각하지 못한 영역은 인간의 교만과 아집, 시기심과 질투, 부정적 생각은 옛 자아의 기본적인 전형으로 혼을 통해 영의 세계의 것들도 보고 감지하기 때문에, 시공간 물질을 초월하는 것이 원래 매우 당연한 것으로 상상력이라는 것도 혼의 차원에서 보는 영의 세계의 가능성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개념은 특정한 사물, 사건이나 상징적인 대상들의 공통된 속성을 추상화하여 종합화한 보편적인 관념으로 한 무리나 집단의 개개의 것에서 공통적인 성질의 공통분모를 빼내어 새로 만든 관념이라 합니다. 따라서 세상적 의식하는 자아는 자신을 아이앰 현존의 초월하는 측면으로 보지만, 겉모습에 따라 판단하며, 자신의 경험을 현존이 평가하게 하고 그러한 경험과 그 결과를 저장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순간순간을 단면으로 보면, 3차원 공간 안에서 살면서, 시간이라는 축을 통해 4차원을 일부 경험할 수밖에는 없는 물질세계에서의 삶은 각자의 환경과 처지에 따르는 편협적인 개념에 물들고, 축적되어 버린 타성으로 스스로의 표상은 절대적인 오류를 지니게 됩니다. 스스로 인식하고 교육으로 축적되어 쌓아 놓은 것은 어쩌면 차원적 인식으로 접근해 본다면, 그 모두는 자신의 개체성으로 쓰레기에 불과하므로 영의 세상과 영계에서는 쓸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스스로 전체적 존재에 합당함을 찾아내 개체적 자신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서 창조된 전체 속의 자신 스스로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설정됩니다. 이는 그동안 표상으로 지닌 모든 것.. 익히 들었던 익숙한 말씀까지도 내려놓아 비우고 자신 안에 거하시는 보혜사께서 은혜로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갈망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존재함에는 우리가 아는 것들은 적은 수밖에는 없으며, 자신이 알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십인십색의 인간들과의 관계적 삶에서 물질계에 있는 어떤 관계도 실제적이거나 영원하지 않으므로 늘 변수는 존재하는 것으로 현실에선 표준편차에서 벗어나는 값은 거의 항상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으로 학자들이 제시한 충격적인 가설은 의식하는 자아의 임무는 이 세상에서 완벽한 자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고, 인식의 영역을 확장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자신의 제한된 자아보다 더 큰 존재”라는 깨달음으로, 그 자아를 초월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망각의 깨어남을 경험(부서짐)할 때마다 의식하는 자아가 인식하는 영역은 크게 확장되는 것으로 영혼을 완벽하게 하려고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가르침을 사용하지만 차원의 영역적 초보의 도에 미치지 못하면 영혼을 날선 검처럼 배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매일 죽는다고 했으며,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자 외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자가 없다.” 하신 말씀의 “내려온 자”는 의식하는 자아로 “올라감”이란 인식을 통하여 자신의 자아적 수용체와 하위체로 머물고 있는 스스로를 영적인 여정(성화 과정)에서 육화된 모든 것의 변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유리에 투영된 물체는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경험하게 되는데, 진짜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만지려 하면 단지 유리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에.. 속 좁은 표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주신 말씀이 육신이 되도록 우리 안에 계신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가운데 운행하시는 성령님께 울며불며 다가가는 격과 결을 달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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