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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With Holy Spirit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코로나가 가져온 세계사적 충격은 워낙 커서 이번 사태가 끝나면 ”비포(before) 코로나“ 전(BC)과 ”애프터(after) 코로나“ 후(AC)의 시대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코로나는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사상·제도·행동방식·정치체제에 크나큰 도전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는 코로나에 관한 용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코로나 발생과 장기화에 따라 “포스트(post, 이후) 코로나”의 합성어가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코로나가 종식되거나, 종식에 실패하드라도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의 시기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각 용어들의 포인트는 초기 발병 전과 후를 경계적 관점으로 바라본 것과, 앞으로 코로나가 종식 되었다라고 하는 전제에서 그동안의 영향을 통하여 초래되는 상황적 접근으로 풀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많이 듣게 되는 “위드(with) 코로나”라는 용어는 변이를 해가면서 계속 적응해 나가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집단면역, 나아가 종식이란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감기, 독감과 우리와 함께 안고 가야하는 하나의 질병으로 인정하는 측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용어적 접근으로 속성값을 풀어헤치기는 어렵지만, 믿는 자 모두는 상황적 논리의 근거를 말씀을 기반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그에 따른 정설로 코로나는 마지막 환난의 관문으로의 진입을 뜻함에 있어 백신 접종만을 강요할 것이 아닌, 비포(before)/애프터(after), 포스트(post)/위드(with)에 관한 입장을 정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오시기 전의 (주前, BC)과 오신 후(주後, AC)의 관점으로 연대를 나눈다는 점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고, 예수님 오신 이후(post)의 공생애(公生涯)적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이 오신 이유와 목적을 무식하기 이루 짝을 이룰 수 없는 창조물들에 실증적 사건을 통하여 깨우쳐 가십니다. 이 모든 것들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포괄적인 사랑하심의 표현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삼 년 이상이나 의지하고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이제 하늘로 떠나가실 시간이 되었다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하시고 성령이 항상 함께(with)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안만 바라보며 미주알고주알 나누고, 오십보백보로 분석과 예측할 것이 아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셨으니, 어떤 사실이 믿어진다는 것은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하나님께서 보증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행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지녀야 바른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성령을 보혜사(comforter)라 하셨고, 영어 단어적 풀이로 보면.. “필요할 때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라는 뜻함으로 “항상 곁에 있어서 위로하며 길을 인도해 주는 이”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면, 아주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간단하게 깡그리 풀어지는 형국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영이시다”(요 4:24) 하셨고, 성령도 영이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 또한 영이실진데, 육신으로 오시어 불쌍하고도 가련한 제자들을 앞에서 성경의 예언대로 다 이루신 후.. 떠나셔야 하므로, 안타까워하시며.. 믿음의 선진이신 영의 선배님들께 놀랍고도 위대한 선물을 약속해 주셨음에 그저 멍해버릴 뿐입니다.


따라서 비포(before)/애프터(after), 포스트(post)가 어저구 저쩌구~ 지지배배... 공자 왈 맹자 왈~ 재탕삼탕하여 소가 발만 담구거나 지나가 버린 멀건 곰탕을 제공하거나, 그걸 꼴깍꼴깍 받아먹으며 맛있다는 리엑션을 취하는 모습을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실까?하는 생각을 문득해보게 됩니다. 이 마지막 때를 위하여 요한복음 14:17-20로 주신 말씀을 기초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으므로, 당연히 함께(with, 연합/동행)하는 것이 옳은 것임으로 그에 따르는 임재와 더불어 놀라운 영적 체험과 주의 영의 인도를 받는 경험을 증거 삼아내지 못한다면.. 이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우라까이(뒤집기)를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 참~~ 성령님이 도체 누구신지를 모르겠고, 어떤 분인지를 전혀 모르시겠다면.. 먼저 기본자세로 무릎을 꿇고 힘이 드니 고개를 땅에 꿩처럼 처박고 큰 소리로 “자신의 영” 문 앞에 서계신 분이시여.. 안으로 들으셔서 저의 지성소에 좌정하시 옵소서 간절히 소리쳐 외쳐보시면.. 어떤 증후군이 나타나는데.. 마귀새끼들이 광명한 천사처럼 작업할 수도 있으니, 먼저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을 정결케 해달라고.. 외치고 뭔가? 현재와 다른 느낌이면.. 우선적으로 ”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마귀는 떠날지어다!“를 강하게 선포하며 외치시면.. 도우시는 분께서 나다!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 까먹은 것이 있네요.. 그렇게 하기 전에.. 시간을 내서 무릎을 꿇고 먼저 회개를 하셔야 되는데.. 뭘? 회개할 줄 모르시면.. 생각나게 해달라고 하시어.. 생각나는 대로 시행하시고, 성령님을 자신의 영안의 지성소로 정중히 모셔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 후에는 진령과 진정으로 성령의 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신경을 무시로 써야하며.. 예전과 같이 대하다가는 아니함만 못한 것이 아니라.. 더 고질적인 사탄의 앞잡이가 될 수 있으므로 하려면 제대로 행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행위와 믿음이 따로 국밥이 되지 않도록.. 완전무결하지는 않지만,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님을 인정하며, 오직 성령의 역사를 마치 자신에게 능력과 권능을 통하여 유익이 되고, 기적을 베풀게 하며 환희의 경험을 가져다주는 매개체로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입니다. 성령을 우리들에게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므로 죄를 깨닫고 의롭게 살도록 양심을 일깨우셔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품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증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중요 포인트는 우리가 성령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케 하는 것으로 성령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원하시는 방법과 시기에 따라서 행하심을 절대 놓치거나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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