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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끝장에서의 반전

“끝장”은 일이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상태로 실패, 패망, 파탄, 죽음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유의어로는 결국, 종결, 결말 등이 있으며, 또한 같은 의미로 “막장”을 쓰는 경우가 있으나 표준어 규정 3장 4절 25항에 따라 “끝장”만 표준어로 삼고 “막장”은 순우리말로 채택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표현하는 “막장”은 탄광촌 갱도의 마지막 부분을 일컬으며 가장 깊은 곳, 절망의 끝자락으로 인생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간 것을 인생 막장이라 하며, 막장 드라마는 보통사람의 상식과 도덕적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의 드라마를 말합니다.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과 얽히고설킨 인물관계나 불륜관계 또는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 드라마로 연출되어 인기를 누리지만,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막장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함부로 쓸 말이 아니며, “막장”은 사람들이 마구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라고 어느 작가는 일갈합니다. 더 이상 찾을 길도 잃어버릴 것도 없는 희망의 빛이 가물가물 희미해지는 그곳에서 밝은 빛을 통한 전율을 느끼는 존재로서의 맛과 느낌을 통하여 하나의 세계가 끝나는 곳 이였다는 것을 느껴보아야 할 것이라고 제시합니다.


“갱도의 막다른 곳” 즉 광산의 끝부분이라는 원래의 의미가 “끝장”으로 변질된 것으로 목숨을 건 노동의 현장이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말로 바뀌었으나, 막장은 끝이 아니며, 막장을 뚫고 나가면 거기부터 진정 새로운 세상이 열리며 시작될 것으로 막장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쟁터보다도 더 사악한 악조건으로 모든 면이 다 끝장이고 막장으로 치닫는 현 시점을 살펴보며, 막장을 넘어 끝장을 봐 버려야함을 발견하게 되는데, 아무리 주위를 돌아보아도 믿을 것이라고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뿐으로 옛 자아와 본성을 끝장내 주시기 위하여 오셨음에 몸 둘 바를 몰라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입니다. “나”라는 본질과 “나 자신”이라는 허상의 “나를” 얽매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아(自我) 중심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새 사람의 새 인류로써 변화를 이루어감은 싸구려적인 종교의 영 기반의 영접주의의 프레임에서 벗어남이 주님의 은혜에 그나마 바른 자세를 취함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 중심적 삶에 있어서 스스로의 자아를 교양 있고 세련되게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끝장내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므로 그 모두를 절단해 버려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신실한 영의 사람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 새 사람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허하신 모든 고난의 시련들을 오래 참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깨닫고 이겨 승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다닌다 하지만, 자기의 유익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옛 자아의 혼적 욕망으로만 살아가며, 어둠 마귀의 사망의 법을 따르는 옛 자아의 혼적 생각으로 혼의 욕망을 채우지 못해 불평불만과 원망하며 자신의 욕망을 따라 행동하는지?를 침잠하여 조심스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너무나 흔한 혼적인 종교인들은 진리의 초보적인 교리들을 배우게 되면, 남의 위에 서 선생되어 가르치며 훈계하기를 좋아하므로 최종적으로 자신의 자아적 의지로 진리의 선을 선택하여 실행해야 할 때에는 세상에서 높아지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조롱과 모욕이 부끄럽고 두려우며 돈과 명예를 놓칠까봐..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내적인 하늘의 진리에서 돌아서고 어둠의 사망의 법에 따라 행하게 되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재정리하면, 자기중심적 주관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스스로 섞어 복잡하고 미묘하게 혼합된 결과의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죄인에서 벗어날 기회 주심으로 끝장에서의 반전을 이룰 수 있음에 진정 감사해하며, 출석교인으로 명목상 그리스도인이기보다는 자신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리스도인 됨의 대가를 지불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의 자아를 지탱해줄 다양한 세상적 필수영양소에 의지해, 교만을 증대시키고 자신의 결점 숨기기에 급급해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이면 책상 펴고 성경공부하며 소모임으로 나누고자 하나, 인간적 본성과 실제적 인격의 전방위적 전인격의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므로 자아의 옛 생명에 너덜너덜 헝겊조각 덧붙여 보기 흉할 뿐, 본질적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적이며 기본적인 중요 포인트는 함께 하심에 대한 궁극적이며 객관적인 실재를 임재로 인정하는 것으로 존재하심에 관한 경험과 진리를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동행을 통하여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지성과 직관, 의지, 감정, 상상력, 감각이 믿음의 지식(말씀) 안에서 수렴되어 전방위적으로 마음 깊은 곳에까지 파고들므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통해 새 예루살렘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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