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히는 것만 생각하면 내가 길이란 걸 깨닫지 못한다.

by Neon

밟히는 것만 생각하면 내가 길이란 걸 깨닫지 못한다.


성격 탓인지.. 남 눈치를 너무 보며 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을 맞춰주는 선택이 마음이 더 편하다. 내가 선택할 걸 했다가, 상대방 반응이 별로일 때 몰려 올 민망함이 벌써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기 합리화한 것이, 나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포장해오곤 했다.지금 생각하면 완전 자의식 과잉 그 자체다. 적당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지메이킹이 나름 잘 되어 이 짓을 꽤 오랬동안 했다.


이런 생각이 고착화되어, 어느 순간 내 무의식이, 내 마음 속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울타리를 쳐버린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360도 모두 막힌, 문 하나 없는 울타리를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고,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서야, 내 취향, 내 선택에 대해 솔직해지기로 다짐했다.


6년 전, 대학교 졸업 당시, 교생 실습 나간 동아리 친구가 단톡방에 물어봤다.

"내일이면 교생 마지막 날인데, 학생들한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평상시엔 잘 확인도 안 하는 내용이 마침 눈에 들어왔고, 내가 10년 전의 나에게 한마디를 해준다면, 뭐라고 해줄지 고민했다. 30명 가까이 되는 단톡방이란 걸 잊은 채,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만이 그 공간에 서 있었다.


인생을 많이 살지도 않은 설익은 나이에 사춘기가 찾아온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너무 큰 재앙이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내가 내린 인생의 결론은, '인생의 의미는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하려면 있어야 하는 불같은 열정도 내겐 없고, 시키는 건 곧잘 하는 나에게 특출날 재능이란 건 없다.'


'차라리 조선시대에, 신분이 정해진 시절에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 누군가가 했던 일을 내 천직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삶이면 좋았으련만. 너무 많은 일들이 생겨난 현재. 무한히 많은 것들 중에 무언가를 선택해서 없는 열정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생의 의미는 없는 것이고, 그냥 주어진 24시간을 알아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춘기 때의 고민의 답을 허무맹랑하게 내려놓고, 무심하게 10년을 더 살다가, 10년 전 나에게 해줄 말을 생각하려니,,, 조금은 설레었다.


돌이켜보면, 내 앞에 길이 너무 많고 방대해서 뭘 고를지 몰라서 방치한 세월이더라도, 하루하루 해와 달이 번갈아 뜨는 시간 동안, 살아있는 한 어디로라도 발을 내딛어야 한다는 걸, 그리고 내딛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길 같지도 않은 길을 삐뚤뻬뚤 걸어온 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나만의 길이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혼자만의 기분에 취해 30명이나 있는 단톡방이란 걸 잊은 채,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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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히는 것만 생각하면, 내가 길이란 걸 깨닫지 못한다'

"이거 어때?"


10년 전 허무맹랑하게 묻어버린 고민을 다시 꺼내어 그럴 듯한 한 문장을 만든 것에 심취할 수 있는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앜ㅋㅋㅋ 왜케 진지한대??ㅋㅋ 좀 오글거려..."


머쓱해져 괜히 두리번 거리고, 괜히 핸드폰을 껐다 켰다 반복했다. 이 글을 단톡에 올린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그 때 이후로 이 문장을 밖으로 꺼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전 고민을 문득 풀어낸 듯한 이 문장을 마음 속에 품어놓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 6년의 시간이 지나니, 연유는 모르겠지만, 남의 반응에 조금은 무던해져도 괜찮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무의식이 누구도 그 이상은 못 들어오게 쳐버린 마음의 울타리를 조금은 허물어 보고 싶다. 겉보기엔 울타리가 건재해 보일지라도, 사람 한명 정도는 은밀하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개구멍이라도 만들어 보고 싶다. 내 무의식이 개구멍이 생긴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밀하게 구멍을 파야 할 것이다.


그래서 쉽진 않겠지만. 이것 또한 내 길이기에. 내 무의식에 지배당하지 않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밟히면 바닥에 납작 붙어 더 뿌리를 내리는 기회로 삼는 저 잡초처럼. 아끼는 신발을 신고 나의 길을 밟아나가겠다. 그리고 이젠 너에게도 나의 마음을 전해보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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