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꽃밭인가?
암극복기를 책으로 쓴 한만청 박사도 암 진단을 받고 격게되는 심리변화 중 하나로 인간관계와 심리의 변화를 꼽았다.
위로. 공감. 격려.
보통 내가 암환자라는 걸 커밍아웃하면 대부분 이런 단계를 거쳐 나를 대한다.
나 또한 암진단을 받고 수 많은 위로와 공감과 격려를 받아왔다. 그런데 어떤 위로는 공감이 되고 어떤 위로는 마음에 1도 와 닿지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꼭 특정인도 아니고 특정 시기도 아닌 것이 마치 항암 할 때 음식에 기호가 수시로 바뀌는 것 처럼 변덕쟁이가 된다.
처음 전이 소견을 듣고 혼돈의 구렁텅이에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을 때 오는 친구의 평이한 톡에도 왠지 탐탁치가 않았다. 내 마음은 지금 지옥인데 당연히 그 상황을 알리없는 친구의 농담 섞인 말에 괜히 나의 감정의 분출구를 찾은 마냥 시끌시끌 뾰족한 마음이 담긴 말들이 괜히 튀어 나왔다. 그리고 내 마음이 그리 복잡하니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질 않았다. 주말에 보러 온다는 친구의 말에 마음은 백번 이해가 되지만 궂이 이런 엉망진창인 상태로 만나서 웃고 일상을 나누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만 덩그라니 남겨진 무인도에서 아등바등 살고자 기를 쓰고 있는데 저 멀리서 호화 크루즈에서 벨벳 장갑을 끼고 손 흔드는 것 같았다.
병원은 옮기고 어느정도 치료의 방향이 정해지고 내 병에 대해 공부를 하고 조금 명확해 진 다음에는 대부분 수용이 되었다. 그러니 친구도 보고 싶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일상이 건강할 때(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정상 세포가 공격받아 보통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가 없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울 엄마, 아빠지만 그들을 마주하면 나보다도 더 무너질 줄 알기에 굳건히 대할 자신이 없다.
결국은 '나'인 것이다. 내 마음이 중요한 것이었다. 내 마음이 지옥이면 주위 사람이나 환경도 다 뒤죽박죽이 되고, 내 마음이 꽃밭이면 그 들도 다 그 위에 노니는 예쁜 나비가 된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선배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그 선배는 처음 그 소식을 듣고도 내게 와서는 "난 니가 휴직한다고 해서 정말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별거 아니네~ 괜찮아. 다들 치료 받고 골골 하면서도 그렇게 늙어 가고 하는거야." 라고 말해주는데 정말 그 선배언니 말 처럼 가늘고 길게 그럭저럭 내 생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는 애써 유쾌한 농담과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정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쫄지마!" 하는데 그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후비는지. 눈자위가 뜨거워 지는데 꾹꾹 눌렀다. 그깟 것들. 증상도 없고 눈에도 안 보이고 내 엄지 손가락 길이 만큼도 안되는 세포 덩어리들. 그 것 땜에 기죽지 말자. 건강한 세포가 훨씬 많고 그 녀석들은 약을 꾹꾹 달래면 된다. 건강한 세포들이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아서 회생되도록 난 열심히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내가 즐거운 일을 하면 된다.
이 이야기를 아침 밥상에서 딸에게 했다. 그런데 이 아이 또한 쿨하게 "맞아. 엄마. 눈에도 잘 안보이는 것들이잖아. 엄마 안 쫄았지? 별거 아니야" 라는데 어른이다.( 말하는 것만) 그래서 나도 애써 "그래, 엄마가 좀 세긴 하지. 강하잖아.”
그리고 내가 아끼는 후배는 시크하게 선물과 카드를 건네주는데 <그 깟것들 다 조져버리고 다시 건강히 컴백하세요>라고 쓰여 있다. 죠저 버리래. ㅋㅋㅋ 그 얌전하고 이쁜 입에서 나올 어휘는 아닌데.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 그 시키들한테는 그 정도 욕은 당연히 해도 된다.
깊은 위로가 되는 사람들. 사실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마음과 정성과 기도와 사랑이 결국 내가 꾀가 나거나 지칠 때 또 지탱해 줄 것이고 그러므로 나는 더 꼿꼿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내 마음이 꽃밭이 되도록 환하게 정성들여 마음을 가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