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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란 Feb 17. 2021

장래희망과 꿈

 요즘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면 운동선수, 크리에이터, 의사, 교사, 요리사, 프로게이머, 뷰티 디자이너, 만화가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내가 어렸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직업들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시골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생업에 바빠서 아이들을 그야말로 방목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달랐다. 서울에서 소위 대학물까지 먹은 아버지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청년시절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긴 가방끈을 가졌음에도  농사일을 하는 본인의 못 다 이룬 학업에 대한 열망 탓인지 아니면 그나마 의식이 깨어 있어 선진화된 덕인지 아버지는 오빠와 나의 공부에 대해 관심이 지나치셨다. 요즘은 워낙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아이들 교육에 대해 과열된 양상을 보이지만 그 때야 어디 그게 일반적이었던가. 걸핏하면 우리를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누구누구처럼 공장에서 심한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공돌이, 공순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과 주변에 '사'자 붙은 직업을 가진 지인들 예를 들면서 은연중에 우리에게 그 직업을 가져야만 사람 구실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서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자랐고, 그 당시의 공부 잘함은 곧, 자존감과 거의 일치하는 개념이어서 난 자존감 상승을 넘어 거만함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정해 준 장래 희망이 곧 정답인 줄 알았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누군가가 "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면 난 조그만 목소리로 "판사요"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덕망과 존경을 아우르는 그 당시 최고의 직업이 아마 판사였던 것 같다. 지금도 물론 그 직업은 추앙받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 대답이 그리 우렁차고 확신에 차 있지 않았던 것은 아마 내 바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바람이었기 때문이었던 듯싶다.


  당시 시골 마을에서 친한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잔치를 벌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종종 학교 선생님들 전부 저녁 초대를 하고 각종 음식에 술상을 벌였다. 요즘은 절대 금기시되는 촌지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그때는 어색한 일은 아니었고, 아버지에게는 그저 공부 잘하는 딸이 자랑이었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2학년 그날도 우리 집에서는 왁자지껄한 잔치가 있었고, 젊은 여자 선생님과 마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당시에도 선생님이랑 직업은 아이들에게 닮고 싶은 우러러 보이는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흔히 보기 힘든 하얀 얼굴에 굵은 웨이브 반 머리에 단정한 원피스 차림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이쁘고 상냥한 선생님께서 물어 보시는터라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고 그때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은 하기 싫었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게 뭐지? 잠시나마 진지하게 생각한 건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워서였던지 선생님은 귀까지 빨개진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재차 물으셨고 난 기어들어가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간호사요"했다. 아마 진지하게 그 집업의 숭고함이나 희생정신 이런 걸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디 드라마 같은 데서 본 간호사 이미지가 좋아서 즉흥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던 것 같다. 그것 말고  또 생각해 보자면 작가나 디자이너도 있었다. 어린 시절에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였지만 나의 재능의 크기가 그 정도는 아니란 것과 뭔가 직업으로 해서 돈벌이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도 막연했다.


  초등 2학년 때 그 일 이후로 내가 간호사라는 직업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확실히 아니다. 대입 즈음에 터진 IMF 경제위기에서의 선택지는 안정적으로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으로 한정되어졌고 그 한정된 범위 안에서 성적에 맞춘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직업을 가지고 지금 햇수로 1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이 직업은 적성에도 잘 맞고 재미와 보람도 있다. 그런데 이 건 정확히 나의 꿈은 아니다. 꿈이라 함은 뭔가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하고 생각만으로 흥분되는 무엇이 있어야 하거늘, 난 이 일이 그렇게 흥분되거나 설레지는 않는다. 매너리즘 탓일 수도 있지만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다.


 지금  나의 꿈은 나의 20년 후쯤 모습과 결부된다.  널찍한 거실에 결이 예쁜 심플하고 단단한 책장 한편에는  M출찬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수백 권을 순서대로 꽂아 놓고  물론 다른 장르의 책들도 같이 있어야겠지. 그에 둘러싸여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이 나의 지금의 꿈이다.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하는 일 내 오랜 숙원 사업이지만 그때쯤이면 내 책도 같이 내 책장에 꽂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꿈이 있어 상상만으로도 포근해질 때도 있지만 또 그 때문에 오늘 새로이 나를 담금질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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