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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Oct 11. 2019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엄마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닌 거 알면서... 

   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떠나기 전, 우리 가족 셋이 단출하게  4박 5일 동안 딱 붙어서 강원도 맛집 투어를 하고 함께 수다를 떨고 여유 있게 지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래서 태풍이 와도 룰루랄라 떠날 수 있었다. 


   이제 막 48개월 채운 아이. 세상이 아이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만큼 아이는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운다. '유'라는 그림이 '유'라는 소리를 가진 글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세상의 모든 '유'를 마주칠 때마다 아이는 '유! 유! 엄마 저기 유가 있어!!"라고 흥분한다.  지나가다 태극기를 10번을 보면 10번 다  '우리나라 태극기다'라고 소리 지른다. 왜 바다가 화났는지 궁금하고, 저 화난 바다가 옆에 주차해 놓은 우리 차를 먹어버릴까 봐 걱정스럽다.  밥 먹기 전에 과자를 먹으면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고, 하루 종일 만화를 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이제 아이는 스스로 머리를 감고, 용감하게 비누로 세수를 하고, 겉옷의 지퍼를 채우고, 꽃을 그릴 줄 안다. 매일 새로운 성취를 하는 아이는 세상이 즐겁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하고 싶어 한다. 


   평소에 "엄마 회사 그만두고 나랑 매일 집에서 놀자"를 외치던 아이는 여행 내내 엄마 껌딱지였다. 내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토라졌다. 아이 입장에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내내 "싫어"라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하루에 오조 오억 번쯤은 "싫어"라고 떼 부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이 빠졌다.  사실 해결책은 간단했다. 내가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만 쓰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고 싶었고, 메모를 하고 싶었고, 풍경을 보고 싶었고, 쉬고 싶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따라 일정을 변경해야 했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으면서 어른도 만족할 식당을 검색해야 했고, 그러면서 운전하는 신랑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다.  결국 여행 내내 "싫어"를 외치는 아이에게 나는 소리를 지르고 협박을 하고 화를 내고 아이를 여러 번 울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화를 내는 나에게서 엄마를 봤다.  


scene1.  초등학교 다닐 적이다. 어쩐 일로 오늘은 놀이공원에 간단다.  엄마는 부산스럽게 김밥을 싸고 있는데 아빠는 여느 때 주말 아침처럼 곤히 자고 있다. 아빠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화를 낸다.  아빠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눈은 감은 채 일어나서 씻으러 간다. 귀찮은 표정으로. 


scene2.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와 동생은 풀밭에 앉아 엄마가 아침에 싼 김밥을 먹고 있다. 놀러 나왔으면 신나야 할 텐데 심장이 콩닥콩닥.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그날 내가 나에게 부여한 미션은 최대한 즐거운 듯이 행동하기. 김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불안하지만, 나는 웃으며 애교를 부리고 있다. 엄마 아빠에게 어깨동무해봐~ 사진 찍어줄게~라며 카메라를 찰칵. 그 사진은 아직도 친정 집 거실 tv 장 위에 있다.


   사실 이 정도의 일은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하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싸울 수도 있고, 냉랭한 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 신랑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왜 그런 것들만 기억하냐고 타박하곤 한다. 그렇다. 나들이에 남아있어야 하는 즐거운 기억이 없다. 대게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게 그런 식이다. 내 감정이 어떤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전에,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루가 조용히 흘러갈지, 나는 그 역할을 잘 연기하고 있는지가 먼저였다. 가끔 소화하기 버거웠던 순간들만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분명 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배꼽 빠지게 웃었던 날들도 있었을 텐데 원가족과 함께 있는 기억 속의 나는 줄곧 연극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 내 상태를  '정서적 대상 항상성' 이란 단어를 통해 겨우 이해했다. 이는 대상 심리학에서 나오는 용어인데,  부모에게 몹시 실망했을 때에도 부모에 대한 좋은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충분히 따뜻한 경험을 한다면, 간혹 사소한 분리 경험 와 같은 좌절을 경험한다고 하더라고 그 경험이 따뜻한 경험을 떠올릴 수 없게 될 만큼 아이를 압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더 쉽게 말하면, 아이가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한 두 번 혼난다고 부모를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내 어린 시절 기억이 많은 부분이 저 모양인 이유는 아마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일 테다. 부모님 두 분의 불편한 관계와 간헐적인 다툼(그냥 결이 다른 사람들이다.)을 옆에서 겪던 방안의 풍경, 부모님께 무섭게 혼나는 언니들을 보면서 불안해하던 숨소리,  우수한 성적표를 내밀던 순간 조차 "너라도 이렇게 해줘서 다행이야. 네가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던 폭력인지 몰랐던 칭찬들, 그런 경험들이 엄마가 싸주던 맛있는 도시락 반찬의 추억이라던가, 본인은 10년도 더 된 점퍼로 버티면서 내가 원하던 운동복을 계산하던 엄마의 사랑을 압도해버렸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엄마를 이해한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는 결이 다르게 이해가 깊어졌다. 만약 내가 40살의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늦잠을 재우고, 갓 지은 밥과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막 구운 갈치로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 그리고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되기까지 나는 괜찮지 않은 나를 보듬고 달래고 다독이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이제는 마음이 편안하고, 그래서 나는 꽤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이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그런데.  

여행 내내  나는 내 엄마가 나에게 화내던 모습과 닮은 모습으로 내 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화를 내는 나를 보면서 나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던 엄마가 또 이해돼서 슬펐고, 

내가 화내고 있는 내 모습이 아이에게 '어떤 결정적 순간' 이 될까 봐 무서웠다. 

'나는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던 건방진 내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웠고, 

나도 엄마처럼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시도 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다던 엄마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가끔 엄마에게 "엄마가 공들여 키운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엄마의 인생이 아니다. 냉정이 말해서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도 기어코 작가도 데뷔해서 성공한 박완서도 있고, 70살이 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화가 모지스 할머니도 있으니 엄마의 한탄이 전적으로 환경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 내내 매일 밤 지워졌을 "엄마가 아닌 한 사람" 이 보였다. 없는 살림에 아이 네명 돌보고 살림하며 매일 지쳐 잠드는 시간 속에서, 지워지는지도 모르게 희미해지던 한 사람이 있다. 아니,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예민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런 자신을 잡을 물리적, 심리적 여유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밤은 아마도 심장이 까맣게 타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처럼 될까 두렵다는 감정의 실체는 결국 엄마처럼 엄마가 아닌 나는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려움은 아이를 향한 온전한 집중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엄마 됨을 선택한다는 것이 나를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확장하는 일이라고도 한다. 한 생명을 기르는 일을 고귀하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매우 보람 있는 일이며 그 가치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당분간 홀가분한 여행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 생각하는 그런 여행 말이다. 물론 아이를 두고 다녀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남편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안함에 떠난 마음도 홀가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엄마가 되기 전과 같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변했다. 


   우리 엄마는 엄마를 소멸시켰고, 사라져버린 '엄마가 아닌 그녀'는 나에게 부채의식을 남겼다. 그래서 나의 모든 사유는 엄마에게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부채의식을 남기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집중하고, 나도 지킬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삶이 가능하긴 한 걸까? 이런 고민은 엄마와 나, 그리고 나와 딸의 이야기이기만 한 걸까?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인 걸까? 



나는 나를 지우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온전한 집중을 하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연구들에서는 아이들과 여성에게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일로 간주되어온 엄마가 되는 일이 여성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살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점점 더 강조된다. 수많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나오미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으 바로는, 비록 아이가 태어나고 새로운 사랑이 생겨나도 그들 내면에서는 뭔가가 서서히 소멸한다. 그리그 그 경험은 아이들로 인한 기쁨 저 아래에 자리한 예전의 자아에 대해 애도한다는 인식으로 한층 힘겨워진다." 나오미 울프의 책에서 미국 엄마들이 첫 아이를 낳고 얻는 기쁨의 심연에서 일종의 상징적 죽음을 느꼈다면, 내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엄마로서의 삶의 실체는 파괴를 뜻한다. 그들이 두 자녀나 세 자녀를 낳은 후에도, 그리고 출산 후 수년이 지날 때까지 호소하는 후회의 감정에는 모든 의미와 목적까지 포함되어 있다. 즉 이렇게 아무 의미와 목적 없는 상실감이 후회의 주요 요인이 되어는 것이다. 이때 이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느끼는지는 상관이 없다.  p.147~p.148

많은 엄마들이 고유한 관심사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능한 제쳐둔다.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없애기까지 한다. 그리고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후회했기 때문에 더더욱 강한 의무감을 느낀다. p.158 』
                                                                              - 엄마 됨을 후회함 中 (by 오나 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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