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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Nov 02. 2019

돌봄도 노동입니다.

2020년 가족돌봄휴가 신설! 아싸!

   아이가 꼬박 일주일을 아팠다. 신랑과 둘이 번갈아 가며 휴가를 써서 아이를 돌봤다. 회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픈 아이를 혼자 두거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는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 부부가 아닌, 하지만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아이를 키우며 어쩌다 반나절 정도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을 시터의 도움을 받아 우리 부부가 아이를 돌봤다. 아이나 태어난 후 이렇게 오랫동안 열이 나고 아픈 것은 처음이라, 아이를 키워주시지 않은 양가 부모님에게 아이를 온전히 맡기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하원후 3~4시간만 돌봐주시기로 계약한 이모님께 낮시간까지 양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다른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왜 부모가 아닌 다른 돌봐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긴급한 상황에 아이를 돌봐줄 대체 인력을 마련해두지 않은 것은 아이가 있는 직장인으로서 잘못된 선택일까? 조부모 댁에  아이를 떼어놓고 병간호를 부탁하는 것이 직장인으로서 더 책임감 있는 선택이었을까? 아픈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과연 개인이 혼자 발발 동동 구를 일이기만 한 걸까?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과연 사적인 영역에 불과할까?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개개인의 선택과 사생활이라면 국가는 왜 그렇게 출생률에 목을 매는 걸까?

    안다. 이 정도 쉽게 휴가를 쓸 수 없는 사람도 많다는 걸. 그나마 신랑과 나는 연차휴가를 소진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휴가가 모자라 내년 연차도 당겨 쓴 것은 안 비밀!) 그러나 나의 업무 공백으로 피해를 본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장인으로서의 Refresh를 위해 제공되는 연차휴가를 돌봄 노동을 위해 모두 사용해야 하는 지금의 구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이지만, 육아는 엄연한 노동의 영역이다. 니 새끼 니가 돌보면서 왜 생색냐고 묻지 마라. 생색이 아니라 그저 노동을 노동이라고 명명할 뿐이다. 응당 부모라면 개인의 휴가를 돌봄 노동에 모두 소진하는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년부터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되어 '가족 돌봄 휴가'가 신설된다는 기사를 읽고 쾌재를 불렀다. 기존에 연간 90일 이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족 돌봄 휴직이 있었는데 그중 10일을 가족 휴가라는 이름으로 하루 단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취업규칙에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무급이 원칙이라 아쉬웠지만, 연차휴가와 별도로 아이가 아플 때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쉬게??


   바람직한 제도 변화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내게 옆자리 동료가 보인 반응이다. 당연히 그의 말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다. 다만 내 귀에 저 말이 걸린 건 나는 "돌봄 노동"을 수행한 시간이 동료에게는 "쉬고 온 시간"으로 인식되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은 명백히 노동이다. 한두 시간 간격으로 쪽잠을 자며 체온을 재고, 속을 편안히 해주기 위해 온갖 종류의 죽을 끓이고, 약을 챙겨 먹이고, 반짝 체력이 돌아온 아이가 저지래 하는 집안을 끊임없이 치웠다. 끊임없이 노동을 하고 있는 나는 쉬고 온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런 대우가 전업주부에게는 일상일 것이다. "너 집에서 놀잖아~ 너 집에서 쉬잖아~"

   그 동료의 반응이 놀랍지는 않았던 이유는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개인적인 사유를 핑계로 회사 업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을 주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니까. 생산성이 떨어지는 인력보다는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하는 것도 현실도 인정한다.


   학생이었을 때 공부가 내 생활의  主 였다면,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회사생활이 내 일상의 主였다. 물론 퇴근 후 취미생활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활동의 우선순위에서 회사는 항상 가장 위에 있었다.

부모가 되고 가장 달라진 것은 치열하게 다투는 2개의 우선순위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나의 에너지 총량은 동일한데,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2개의 main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도 몰랐다.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데 이렇게 많은 품이 든다는 것을... 그리고 육아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실질적인 부담은 아빠보다 엄마에게 훨씬 크게 부가된다. 사회적으로 아빠에게는 '직장'을 '돌봄' 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허용되고 기대된다. 그러나 엄마는 둘 다 잘 해내기를 요구받는다. 회사는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노동력을 100% 투입하기를 기대하고, 사회는 3세까지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좋다는 모성신화에 부합하는(부합하려고 노력하는 척이라도 하는) 엄마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 사이에서 많은 엄마들은 번아웃되고, 결국 사표를 내게 된다. 워킹맘으로서의 지난 몇 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와 업무 사이에서 갈등할 때 실제로 어떤 구체적인 문제보다 마음 속 갈등이 더 컸다. 이 번처럼 아이가 아플 때, '이렇게 무책임하게 계속 휴가를 내고 되나" 하는 불안함과 "아이가 아픈 것은 내가 좀 더 돌보지 않아서는 아닌가" 하는 죄책감 사이의 갈등 같은 것.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 "비행운")



   이번에 아이가 아프면서 20~30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더 절실하게 느꼈다. 그동안 '가족'은 자본주의 재생산 기지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왔다. 남녀 역할 분업이 그런대로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시장은 가족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가족은 그 임금으로 임금노동자 자신의 재생산뿐 아니라 다음 세대 재생산까지 충실히 이행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식상한 단어지만) 신자유주의 이후로, 가족은 이제 개인으로 분화되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것은 여권 신장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제 각자 벌지 않고서는 일상생활 유지도 힘든 현실이 반영된 측면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다음 세대 재생산을 위한 돌봄 노동에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을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더 이상 돌봄 노동은 사적인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 조부모의 희생, 부모 자신들의 혹사, 혹은 각종 도우미(등원 도우미, 학원 도우미, 픽업 도우미, 방과 후 도우미, 입주 시터 등등등)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돌봄 공백을 해결하거나, 혹은 불가능한 경우 아예 아이 낳기를 포기한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강제로 한다던지, 가족이 아플 때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별도로 있다던지 하는 북유럽의 사례들을 접할 때, 부러워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조금 일찍 이런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제도를 만들어간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제 그 논의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기가 된 것 같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했던가. 그 말을 응용하여 말하자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니 수정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사랑은 멀고, 아이를 낳아 키울 때 개인(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포함하여)이 경험해야 하는 불합리와 손해, 피해는 가깝다. 이 간극을 채우지 않는 한 출산율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 아픈 얘기로 시작해서 글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로 흘렀다. 그래도 나는 내년에 신설되는 '가족 돌봄 휴가'가 너무 좋다. 회사 내에서 어떻게 제도화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수족구에 걸렸을 더 이상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물론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P.S  아이 돌봄을 위한 근무시간 단축이라던가, 가족 돌봄 휴가라던가 하는 제도가 워킹맘을 위한 제도라고 소개된다. 그러나 정책을 만들 때 제발 '워킹맘 위한 정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워킹 파파'라는 단어는 없지 않은가?  "워킹맘 위한 정책", 이 말에는 이미 돌봄의 주체는 엄마라는 함의가 숨어있다. 워킹맘과 워킹 파파를 '일하는 부모'로 동일하게 생각하고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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