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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Nov 28. 2019

너의 마음을 볼께

자기연민의 뫼비우스띠를 끊을 것. 

엄마 회사 관둬.

엄마가 데리러 오면 좋겠어.

할머니는 쪼금 좋아. 엄마 많이 좋아.


어젯밤 아이는 잠자리에서 내내 짜증을 냈다.


엄마도 솔빈이 어린이집 끝나면 같이 놀고 목욕하고 밥 먹고 같이 책 보고 같이 그림 그리고 싶어~~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엄마도 정말 속상해~ 대신 주말에 같이 많이 놀자~


내일도 할머니가 오는 거지? 나 엄마 싫어. 나 이제 엄마 아빠 없어. 나 혼자 있을 거야. 나는 혼자야. 장난감도 없어. 친구도 없어. 난 나쁜 아이야. 


그나마 예전 같으면 나에게 죄책감을 들게 하는 아이에게 불편함을 느끼며 "엄마를 이해해주겠니?"라는 태도로 이야기했을 텐데 다행히  그 불편함 조차 이기적인 마음이었다는 것을 수많은 선배 엄마들과 상담 끝에 알게 되었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아침에 나갔다가 깜깜해진 밤에 들어오는 현실이 스트레스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길 바랄 게 아니라,  아이가 부모의 장시간 부재를 받아들이기에 힘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모가 인정하고 그 마음을 보듬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수많은 육아서에 이야기하는 '감정 인정해주기'를 연습 중인데.....

 그럼에도 하루 종일 '엄마 회사 관둬!'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어린이집 앞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서서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아이의 외로움을 인정해주는 것 이상으로 내가 좀 더 잘한다면, 내가 좀 더 채워준다면, 아이가 씩씩하게 잘 견디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금은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친구에게 카톡을 하나 받았다.  그 친구 아들이 5~6살 무렵 그녀가 적었던 일기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내 마음을 누가 적어놓은지 알았다. 


 내가 평소에 '롤모델'로 생각하는 엄마인 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제로 비슷한 감정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저 친구는 여전히 회사를 잘 다니고 있고, 아이와 관계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아이도 잘 자라고 있다. 이미 앞서서 잘 헤쳐나간 친구의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습관처럼 역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로 돌아가 자기 연민으로 빠지는 뫼비우스의 띠를 확 잘라냈다.

내가 무엇인가 더 하면, 아이가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결국 아이의 괜찮지 않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항상 아이의 모든 감정을 내가 다 책임져 줄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원인이 되어 아이가 슬퍼할 수도, 외로워할 수도, 힘들어 할 수도 있다. 다만, 아이가 나에게 그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 줄 때, 나도 아이만큼이나 아쉽다는 것을 그리고 너의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아이가 알게 해 줄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까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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