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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Dec 22. 2019

짜증과 훈육의 한끝차이

엄마도 사람이지만, 그래도 엄마로 성장하기.

   엄마가 되기 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을 볼 때 쉽게 혀를 끌끌 차곤 했었다. 내 아이 하나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부분 부모들이 몰라서 실수했던 부분들이 있었고, 전문가의 조언으로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끝날 때쯤엔 '저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부모들이 아이 마음 하나 못 읽어서 저 사단을 만드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나는 다를 줄 알고.!!!   

등원을 거부하는 아이

  나는 요즘 아침이 오는 게 무섭다. 5살을 꽉 채운 아이는 매일 아침 다양한 이유를 화를 낸다.

옷이 마음에 안 들어.(너 콩순이 좋아했잖아.)  

엄마가 대답을 안 했잖아.(엄마가 오조오억 번 대답했는데..)

지금 그림 그리고 싶다고.(우리 지금 신발 신고 나가기 직전이라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아.(그래도 지금 8시 20분인데...)

최근에 읽고 있는 육아책 "아이의 감정이 우선입니다."의 조언에 따라 "아~ 그렇구나~"를 해보지만 늘 그 방법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해도 매 순간 사용할 수 없다.

   스스로 떠먹던 시리얼을 흘렸을 때 "나 안 먹어!"라고 소리치며 숟가락을 던지고 미끄럼틀 밑으로 숨어버리는 아이에게 "아~ 스스로 먹고 싶었는데 흘려서 속상했구나. 정말 속상했을 것 같아. 문제는 네가 계속 여기에 있으면 시리얼을 계속 먹을 수 없다는 거야.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서 시리얼을 함께 먹는 것은 어떨까?"라고 이야기하는 사건을 아침에 5개쯤 겪고 나면, 결국엔 "너 자꾸 이럴 거야?!!!! 나 출근해야 하는데 나한테 왜 그러냐고!!!!!"라는 괴성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그리고 출근길에 그 마지막 한 번을 참을 걸 이라고 자책하며 숨 넘어갈 듯 뛰어 지하철에 오른다. 이미 지각은 확정인 그 시간의 지하철에 말이다.


최근에 관찰을 해보니 아이가 화를 내는 순간은 패턴이 있다.

- 스스로 하고 싶은데 실패를 했을 때

-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엄마가 들어주지 않았을 때


   화가 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리고 아이는 그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적절히 표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해는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고, 바쁜 출근 시간에 아이가 행하는 모든 저지레는 나를 힘들게 하는, 어서 해결하고 클리어해야 하는 과제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런 시간이 두세 달쯤 되니 이제 아이는 매번 통제 밖으로 벗어나 화가 나는 순간에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바로 그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고 나서 하지 말라고 제지하는 나를 보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 - 자기 머리 때리기, 손바닥 핥기- 을 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 행동처럼 말이다. 케빈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며 저질렀던 그 끔찍한 사건들이 생각하며 나는 이대로 아이에 대한 통제를 잃을까 봐 무서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며칠 전에 그 영화를 다시 볼까 했는데 포기했다.


   문제가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미 아이에게 나는 기싸움에서 져버렸고, 농담처럼 내 상태를 '노예 12년'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집 근처 놀이치료하는 곳들을 검색하며 새해에는 기관의 도움을 받을까 하고 있다.

    

   오늘 저녁, 나무 블록과 글자 자석을 가지고 토끼 반지의 집을 만들던 아이는 뜻대로 되지 않자 집을 부수고 반지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불현듯 '지금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굴면 안 된다는 것을 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내 마음이 평소와 달라졌다. 평소에는 '아, 또 물건을 던졌어... 이러다 폭력적인 통제할 수 없는 아이로 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육아서 대로 '괜찮아~ 다시 만들면 되잖아.'라고 이야기하다가 결국 "엄마더러 어쩌라고! 네가 무너트려놓고! 물건을 던지면 어떻게 해! 너 엄마한테 혼날래?"로 끝나던 패턴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단호한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법을 가르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하지 않고 "네가 화가 났다고 이 물건들을 던지는 걸 보니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가 보구나~ 버리자~"  이야기하며 던져버린 장난감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버리지 마! 버리면 안 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보고도 흥분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한다고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건 안돼.

자. 지금부터 이 벽은 생각의 벽이야. 네가 1분만 차분히 서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하고 아이를 벽에 세웠다. 당연히 아이는 이 방 저 방 도망 다니며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단호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아이를 데려다가 벽 앞에 세워두었다. 마지못해 서서는 나를 돌아보고 "엄마 나 사랑해?"를 묻는 아이에게 그건 1분이 지나고 대답을 해주겠다고 했다. 몸을 배배 꼬고, 뒤를 돌아보고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끝내 30초가량은 차렷 자세로 가만히 벽을 보고 서 있었다.

  다시 돌아선 아이는 차분해져 있었고 꼭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었더니, 아이는 물건을 던진 것이나, 소리친 행동들을 사과하고 나를 꼭 안았다.


나는 엄마가 되고 50개월 만에 처음으로 내 감정을 빼고, 아이를 통제하기 위한 훈육을 끝까지 진행했다.

우리 집 규칙

  

  그리고 아이와 함께 앉아 우리 집 규칙을 몇 가지 추가했다.

<저녁에 양치질하고 나선 간식 먹지 않기>와 <식사 중에 영상 보지 않기> 두 가지가 기존에 있던 우리 집 규칙이었는데 <소리 지르지 않기> <자동차 위에 올라가지 않기><물건을 던지지 않기> 세 가지를 추가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면, 벽을 보고 1분 동안 서서 생각을 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어렸을 때 크게 혼나지 않고 자랐다. 내가 순한 어린이였다보단 언니들이 말을 안들을 때 혼나고 맞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 엄마가 화가 나는지 본능적으로 배우며 살았다. 지금에야 그 시절 그 살림에 아이 넷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시절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잘못을 하고(진짜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혼나고 맞고 그러면서 깨달았으면 달랐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혼날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겁쟁이로 자라 버렸다. 이제와 엄마 탓을 하는 것은 아니고, 내 타고난 성향과 환경이 빗어낸 어떤 조화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아이가 자유로웠으면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원하는 것은 거침없이 말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했고, 아이의 의견을 많이 물어보았다.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허용적인 부모가 되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다양한 군것질거리에 일찍 입맛을 내주었고, 영상에도 또래에 비해 많이 노출된 편이다. 아이에게 "안돼"라는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가 조금도 억압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실 더 난감했던 것은 무엇을 통제하고 무엇은 허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이름하에 혼을 낼 때는 내가 더 이상 아이를 받아 줄 수 없을 때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단호하게 기준을 정해주기보다는 짜증을 내는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짧은 시간 벽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정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은 것은 아닌지, 지금 이 순간이 아이에게 억압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닐지. 이 순간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을 채우고 돌아선 아이를 꼭 안으며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과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미리 이야기된 바 없는 나의 새로운 훈육에 신랑은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신랑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였단다. 그리고 오늘 내가 짜증이 아니라 단호함을 보였기 때문에 오히려 피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그 1분을 어떻게 느꼈을지.

그러나 내가 인간적인 짜증이 아니라 가이드를 제시해주고 싶었다는 것(화가 난다고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가 본능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훈육하는 엄마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고, 짜증 내는 엄마를 싫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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