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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Oct 30. 2019

더이상 비겁하지 않기를

영화, 시나리오집 <벌새> 를 보고 읽고

(스포일러 많습니다.)

 "네가 아들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딸딸 딸 아들. 나는 그중에 세 번째 딸이다. 내가 태어나고 외할머니는 한 시간을 울었고 친할머니는 와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임신 중에 딸인지 알고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고 얘기했지만 아마 수없이 낙태를 고민했을 것이다.  아들만 내리 셋을 낳은 워킹맘 동서와 비교대상이 되어 시집살이를 호되게 당하던 엄마에게 아들을 낳는 것은 지상과제였을 테니까. 어쨌든 나는 태어났다. 여자여서 미안한 채로. 

  자라면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네가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였다. 나는 그 말이 칭찬인지 알고 자랐다. 내가 아들이 아닌 게 아쉬울 만큼 대단한 성취를 이룬 존재라는 말로 이해했던 모양이다. 뭐 그래 봤자 약간 우수한 성적표 정도였지만.  동시에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최선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딸이 아들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로 인한 무기력함이 내 정서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엄마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겠지만, 엄마의 인생에서 새어 나온 한숨 섞인 넋두리가 나에게는 날카롭고 깊은 상처를 남긴 셈이다.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린 시절은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의무에 허덕이고 있을 뿐, 아무도 괜찮다고 말해 준 적 없었다. 공부를 못하는 셋째 딸, 갈등을 일으키는 셋째 딸, 사고를 치는 셋째 딸은 있을 곳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 시절. 그런 시간들이 내 10대의 전부다. 그리고 존재의 증명에 대한 강박은 내 모든 관계의 바탕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김은희 사랑해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 집의 세 번째 아이. 부모는 은희를 원해서 가졌을까? 

기대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 큰 딸에게 아빠는 애가 타고 속이 터진다. 교육시키겠다고 대치동까지 이사 왔지만, 고입을 망친 첫 딸은 강북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모든 것이 못마땅해 자꾸 혼낸다. 첫 아이에게 가졌던 애정이다(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중3 아들은 부모님의 기대주다. '대원외고-서울대 코스'를 통해 탄탄대로를 가야만 한다. 아들이라서 가지는 기대다. 가족은 그의 고입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반면, 부모님은 은희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김대훈이 때렸어"라고 이야기해도,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만 듣는다. believe 스펠링도 모르는 중2는 초등학교 때부터 습관적으로 다녔을 한문학원에 다니는 것이 고작이다.  그 시대, 관계가 아닌 기능으로서만 작동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의 표본이다. 그러나 은희는 그 안에서조차 역할이 없다. 


   심부름 다녀와 초인종일 눌렀는데 대답이 없다. 아무리 불러도 엄마가 대답이 없자 문이 부서져라 두드린다. 열리지 않는 문. 그러다 문득 아랫층으로 잘못 왔음을 깨닫고 집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간다. 은희가 순간적으로 느낀 분노는 "유기 불안"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무서웠을 것이다. 존재의 거절. 그러나 막상 두려움, 불안, 분노를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엄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대신 부모님 방을 구석구석을 뒤진다. 무엇을 찾는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반짇고리도 열어보고, 옷장도 열어 옷을 뒤적인다. 그러다가 엄마가 해 놓은 감자전을 허겁지겁 먹는다. (p.39) 가끔 TV를 보는 엄마 옆에 앉아보지만, 은희를 봐주지 않는다. 어딘가 아프다고 하기 전에는.(p.67)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엄마는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울 수는 없어 엄마 곁에서 오도카니 앉아 있어 본다.(p.84) 세 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집안 살림을 하고,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저녁 식탁을 차리면서, 춤바람 난 남편 단속하고, 떡집도 운영해야 하는 엄마에게 막내의 마음을 보듬어줄 여유는 없을 것이다. 딸이 혹을 째는데 동의서 사인하러 가지도 못하고, 큰 수술의 퇴원 길도 챙겨주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사는 엄마는 배고프다는 딸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전을 부쳐주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가끔.(p.200) 은희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터트리지만, 은희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 자기연민이다. 왕 대접에 익숙한 오빠는 은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찌검을 한다. 죄책감 같은 건 없다. 그냥 당연하다. 언니는 콩가루 집안에서 탈출할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가정에 대한 큰 애정은 없다. 같은 집에 살지만, 아무도 은희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부엌에 냉장고가 있는 것처럼, 다용도실에 세탁기가 있는 것처럼, 그냥 각자 존재할 뿐이다. 

   은희는 자신을 좋아하는 지완과 유리에게  "너는 내가 왜 좋아"라고 묻는다. "대청중에서 네가 제일 이쁘잖아"라는 지완의 대답이 실망스럽다. 지완이 보내는 삐삐 메시지  "486"은  달콤하지만, 그가 내어주는 '근육'은 작은 상황 변화에도 사라질 만큼 뿌리가 없다. 이유 없이 언니가 좋다던 유리의 사랑은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는 말로 끝날만큼 가볍다. 가장 친한 친구 지숙은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배신했다. 은희가 상처를 받은 건 지완이나 유리, 지숙이 특별히 나쁜 아이여서는 아닐 것이다. 그저 각자의 고민을 해결하느라 상처 주는 줄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이다. 

   은희는 학교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날라리를 색출하고, 서울대를 가야 한다는 허황된 구호를 외칠뿐이다. "김은희 사랑해"라는 지완의 낙서는 불량학생의 징표일 뿐이다. 아무도 은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 없다. 그래서 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찰나의 순간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방이를 타거나, 콜라텍에서 춤을 추거나 Avec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정도다. 은희를 보며 둔촌동 시장 거리를 몇 시간이고 걷던 날의 밤공기나 산울림 노래방의 퀴퀴한 냄새가 어제 일처럼 고스란히 떠올랐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집 앞 오락실에 동전 30개 쌓아두고 땅따먹기 하던 때의 기분까지도. 


 나도 만화 좋아해요.


    은희가 새로운 한문 선생님과 서로 자기소개하는 자리에서 망설임 끝에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고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을 때 김영지 선생님은 "나도 만화 좋아해요"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었을 은희의 취미와 즐거움이 처음으로 존중받는 순간이었다. 

    심리학자 에릭 번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인정 자극에 대한 욕구(Stroke hunger)가 있다. 인정 자극(Strok)은 관계에서 심리적, 신체적 접촉을 의미하는데, 스트로크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을 긍정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자아존중감을 느끼며 건전하게 기능할 수 있다고 한다. 영지 선생님은 단짝 친구와 싸워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은희에게,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은희에게 따뜻한 우롱차를 통해 위로를 건넨다. 은희의 말을 조용히 듣고, 한참을 기다려준다.  지 선생님은 은희를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한다. 영지 선생님의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타인에게 '기능이 아닌 존재로 인식됨'을 경험한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처음으로 스트로크를 경험한 셈이다.  영지가 은희에게 건낸 말들은 꼰대의 충고가 아닌 존중과 애정과 진심이다.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p.136

너 이제부터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같이 맞서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알았지? p.156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이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p.204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나타나 사과하는 지완에게 "나 사실... 너 좋아한 적 없거든"라고 선언한다. 본인들의 기준으로 은희를 규정해버리는 부모님에게  "내가 잘못한 것 아니야!! 나 성격 안 나빠! 나 성격 안나 빠!!! 나한테 이상하다고 제발 그러지 좀 마!!!"라고 그들의 시각을 정정할 것을 요구한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지랄발광 중2병이라고 하겠지만.) 손찌검을 하려는 오빠에게  "때리기만 해 봐 이 개새끼야. 내가 너 신고할 수도 있는데 봐주는 거야!!! "라고 항의하며 자신을 지킨다. 아무도 없는 집 거실에서 라디오 음악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은희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은희는 비로소 자신이 느끼는 순간과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나를 왜 좋아해"라고 묻던 14살 소녀는 제자리에 두 발을 딛고 우뚝 섰다. 타인의 외로움까지 살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만큼 아이는 확장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다는 바람은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생겨날 수 있는 마음이다. 아마 나중에 은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나를 왜 좋아해"라고 묻지 않고, "나는 너를 좋아해"라고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시나리오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나는 아직도 "나를 왜 좋아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비록 어린 시절에는 '조건적 stroke'를 받으며 성장했고,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살면서 층분히 좋은 stroke를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친구들과 남편을 만났다. 

결국 나에게 이 영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내 인생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존재의 증명에 대한 강박"은 과거를 분석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그리고 내일에 그 강박을 벗어던짐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울부짖는 그 아이를,
스스로 사랑할 수없어 부끄러워하는 그 아이를,
집이 있지만 집이 없다고 느꼈던 그 아이를 자주 만났다.
그 아이를 집중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그 과정은
내가 피하고 싶었던 그림자와의 만남이었다.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내 모습 안에,
여전히 울부짖는 중학생 아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남들은 중2에 하는 그것을 나이 마흔에 영화를 보고 질질 짜며 얘기하고 있자니 쪽팔린 마음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한 달이 다되도록 마음이 출렁이기만 했지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다시 펴 든 시나리오집 서두의 작가(감독)의 말에 용기를 받았다. 김보라 감독은 이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직면했고, 영화를 찍었고,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바로 내가 원하는 것. 끝났다는 느낌과 안도감. 


얼마 전에 은유 작가가 소심한 책방에서 한 북 토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은유 작가 페이스북)

"제 책을 시즌1과 시즌2로 나눈다면  시즌 1은 저에 대해 알아가고 집중하는 시기였고  
시즌2는 관심사가 나에게서 남으로 넘어간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시즌 1이 10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어요. 
여러 글쓰기 수업을 통해 제가 배운 건 내가 아는 앎을 내려놓고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그리고 세상에 나와 무관한 일은 없다는 것이에요. "


  세상에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 풀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삶에,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착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투명하게 가져가려면 결국 나에 대해 먼저 아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는 은희의 질문에, 이 길의 대선배(?) 버지니아 울프의 말로 답을 해본다. 나에게도 같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반짝일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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