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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Sep 21. 2019


'파레토 개선' 중이긴 합니다만....

<팩트풀니스>를 읽고 


  매일매일 사건사고는 발생한다. 뉴스는 그 사건 사고에 집중한다. 어딘가는 불이 났고, 어딘가는 또 교전 중이며, 누군가는 굶어 죽고, 전염병이 돌기도 한다. 뉴스를 보다 보면, 오늘 바로 지구의 종말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곤 한다. 세상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조심하라고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이런 위험천만한 세상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

"사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점점 좋아지도 있다.
그리고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다!!!" 

  일단 그는 13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Q.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 A : 20% / B : 50% / C :80% 

정답은 80%이다. 그러나 수많은 강연에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13% 정도만 정답을 맞혔을 뿐이다. 나는 50% 라고 대답했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진 것은 맞지만,  내게는 김연아의 안타까운 멘트가 흘러나오는 유니세프 광고의 영향력이 더 컸던 것이다.  저자가 던지는 13개의 질문에 답을 하며, 실제 통계수치를 통해 드러나는 fact와 우리 머릿속의 편견 사이에 간극을 확인하게 된다.


     팩트 폭행에 나서기 전 그는 일단  세상을 보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을 소득 수준에 따라 (국가나 지역과 상관없이) 한 줄로 세운다. 그리고 2달러 미만/8달러 미만/32달러 미만/ 32달러 이상 4단계로 구분한 후, 각 단계에 따라 삶의 풍경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에 사느냐보다 어느 단계에 속하느냐가 실제 삶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책에도 이동수단/요리 풍경 등의 사진으로 단계별 특징을 보여주는 page 가 있고, Gapminder(www.gapminder.org/dollar-street)에 홈페이지에 가면  소득 별 삶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사진들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나라에 사느냐 보다. 내 소득이 얼마 정도냐가 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이 한스 로슬링의 주장의 근거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살림살이 사진을 보고 있다 보면, '아 그의 주장이 정말 그렇네~'라고 무릎을 치며 동조할 수밖에 없다.

Gapmind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득별 home 사진 


  실제로 인간의 역사는 1단계에서 출발해서 1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1단계였다. 200년 전에는 세계 인구의 85%가 1단계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절대다수가 중간층인 2단계와 3단계가 분산되어 있다. 저자는 책에서 내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1단계에서 4단계로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책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의 기준에 따라 세상을 보면, 팩트에 근거해서 보면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데 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은 더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가 살면서 깨달은 바를 이야기해주고 싶어 한다. 그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라서, 즉 낡은 지식을 기준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최신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조차 세계를 오해하는 것을 보고 그것은 '우리 뇌의 작동방식' 때문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사실 충실성> 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세계관을 갖게 하는 10가지 뇌의 작동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1_간극 본능 : 어떤 대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두 집단으로 나누는 성향
2_부정 본능 :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성향
3_직선 본능 : 상황은 직선으로 전개되겠거니 생각하는 성향
4_공포 본능 : 위험한 상황이라 여기고 두려워하게 하는 성향
5_크기 본능 : 비율을 왜곡해 중요성을 오판하는 경향
6_일반화 본능 : 사람이나 사물, 국가 등 모든 것을 끊임없이 범주화하는 성향
7_운명 본능 :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
8_단일 관점 본능 :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경향
9_비난 본능 :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성향
10_다급함 본응- 빨리 조치를 취하고 즉각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


 저자는 말한다. 

"이 세계에 대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내 평생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다. 요컨대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잠재우고, 사람들이 가진 힘을 건설적 활동으로 돌리기 위해내 가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마지막 시도"라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본능이나 감정에 따른 판단이 아닌 'FACT에 충실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드 커버의 전공책 느낌이라 일단 첫 장을 펴는데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면 책이 너무 재미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벽을 헐고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첫 페이지 펴기가 쉽지 않아서 유튜브에서 TED 강연을 먼저 찾아봤다. 강의를 하는 저자는 유머러스하고 확고하다. 그리고 이 책은 더 유머러스하고, 더 확고하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10가지 본능은 여러 가지 결정을 할 때 참고하면 좋은 기준이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fact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느낌, 이미지 같은 것들을 기준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수 있는 기준이 된다. 10가지 본능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크기 본능'이었다. 2016년에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죽은 아기의 수가 420만 명이라고 유니세프에서 발표했다. 대부분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역시 세상은 점저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2015년에 죽은 아이의 숙자는 440만 명이었고, 1950년에는 1440만 명이다. 물론 420만 명이라는 숫자가 작은 숫자는 아니다. 우리는 이 숫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60년 전보다는 좋아졌다는 것도 fact다.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치다. 갭 마인더에서 만든 물방울 도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그 어떤 선진국 부럽지 않은 4단계 국가에 포함되어 있다. 6/25 전쟁을 하던 시절에는 2단계나 될지도 의문스러웠는데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나라는 4단계에 속하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많은 나라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워낙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까 4단계의 삶을 수준을 누리면서 2단계에 속해있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은밀하게 만연되어 있는 백인이나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나 패배의식 같은 것들이 그 예다. 그래서 이 책을 고등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처음부터 3단계 후반/4단계의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시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더불어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민족주의인가?) 그리고 두 번째로 재미있었던 부분은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추정이다. 2040년 이후에는 2~3단계의 사람들이 지금의 패권국가가 있는 유럽이나 아메리카가 아닌 이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훨씬 더 많이 거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나, 일본의 자충수를 보면 그의 이야기가 전혀 헛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서 한계가 있다. 일단 소득과 생활수준만을 기준으로 전 세계 인류를 4단계로 나누고 분석하는 것은  돈이 많아지는 것이 더 발전한 것이고,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과연 4단계에 속한다고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이 더 늘어나는 걸까? 우리나라의 경우 2단계~4단계까지의 구성원이 골고루 있고. 점점 더 계급갈등의 양상이 더 심해진다. '자조적인 수저론'이나 '조국 장관의 딸'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는 그런 갈등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다. 반세기 전보다 과연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많이 여행을 다니는 지금이 예전보다 사람들의 행복의 총합이 더 클까?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스웨덴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는 지금 4단계에 살고 있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들 대상으로 쓰인 듯하다.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자만한 채 잠이 든 토끼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아니면 거북이가 네 옆을 지나 경주에서 이기게 될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사실 그가 언급한 10가지 본능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물론 오랜 시간 직업적 경험과 학문적 탐구로 얻어낸 그의 사상의 ESSENSE 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에 따라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스 로슬링, 그의 말은 맞다. 사실 충실성에 기반하여 보면 정말로 세상은 열심히 파레토 개선(하나의 자원배분 상태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게 하면서 최소한 한 사람 이상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변화) 중이다그러나 끝없는 개선의 결과 파레토 효율 상태에 다다른다고 했을 때,  파레토 효율 곡선상의 모든 점은 무차별하게 '효율'적이라는 고리타분한 개념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 걸까? 

  책의 마지막에 그는 말한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릭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라고.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내 멋대로 해석해본다. 


  이봐 친구들~ 세상은 나아지고 있어~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그래 파레토 개선 정도? 자, 파레토 효율 곡선 상의 어떤 점을 선택할지는 너의 몫이야.
너를 기운 빠지게 하는,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는
개뼈다귀 같은 거짓말은 똥통에나 던져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보라고! 단, 사실 충실성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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