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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Jan 03. 2020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는 거짓말.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스포일러 있습니다.

글을 다시 수정하여 발행했습니다. ^^



"LA에서 영화에 데뷔를 하고, 남자 친구인 벤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내 일부가 죽어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관계도 없다고 생각했죠. (중략) 뉴욕에서 어떤 연극을 보게 되었는데 그 공연에서 찰리를 보게 되었어요.

그를 만나고 내 일부는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우린 함께 밤을 보냈고 그다음 날도 또. 내가 떠나지 않았어요.

난 계속 찰리와 그의 인생에 맞춰 살았고 그만큼 기분이 좋았고 살아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나 연극무대에 서면서 난 잊혀갔고, 극단이 호평을 받으면서 나는 보잘것 없어졌어요.

한 때 잘 나갔던 반짝 스타로 남고 찰리가 주목을 받았어요. I got smaller...

나는 살아난 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줬던 거죠. 그래도 찰리는 똑똑하고 독창적이라 괜찮았어요. 찰리 같은 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내 의견을 중시해줬어요.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낳아 키웠어요.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에요. 나조차 내 소유가 아니었어요. 작은 물건, 쓸모없는 물건, 큰 물건 할 것 없이 전부 남편 취향이었어요. 내 취향을 잊어버릴 정도였어요. 아무도 안 물어봤으니까요. LA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어요.

그가 제 의견을 물어봤으면 어색했을 거예요.

그러다 LA에서 영화 파일럿 제안이 들어왔고 생명줄이 생긴 기분이었어요.

나만의 세계였고 어쨌든 내 것인 거였어요. 찰리가 꼭 안아주며 응원해주길 바랬어요. '새로운 모험을 경험하게 돼서 기뻐. 당신만의 세계를 누리면 좋겠어"라고, 그랬다면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겠죠.

찰리는 그것을 비웃고 샘을 냈어요. 출연료를 듣더니 극단 예산으로 쓰자고 했어요.

그때 확실히 깨달았죠.

찰리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자기와 별개인 독립적인 존재로요.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봤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무대감독과 잔 것 같아요."


   영화 초반 니콜이 변호사를 찾아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니콜과 찰리는 첫눈에 반했다. LA에서 살던 니콜은 뉴욕에 있는 찰리의 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만드는 연극에 출연하면서. 니콜은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공간인 뉴욕에서 살지만 한 번쯤은 그도 그녀의 공간인 LA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믿으면서. 한 번도 제대로 얘기해본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는 뉴요커로서의 삶 외에 생각해본 적이 없다. LA에서도 살아보자는 그녀의 제안은 거실에 새로운 가구를 사는 건 어떨까 라고 묻는 것 정도의 무게감밖에 지니지 못해다. 뉴욕에서의 삶이 당연하다는 찰리의 생각과 LA에서도 살아보자는 니콜의 제안은 같음 무게를 지니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평등하지 않았다. 그리고 니콜이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일상에 균열이 일어났다.


    양상은 다를 수 있지만 맥락은 동일한 일들이 수많은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다. 남성이 혼자 경제활동을 할 경우, 남성은 일을 한다는 명목 하에 가정 내의 많은 일들에서 면제된다. 가사노동이든, 감정노동이든. 또 여성의 사회생활은 남성의 사회생활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관계의 주도성은 남편에게 있고, 아내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너도 나만큼 벌어와.”, “나는 돈 버느라 힘들어”라는 말이 돌아오기 일쑤다. 이런 방식으로 부부관계에서 남편에게 기대되는 역할 그리고 아내 기대되는 역할은 관습적으로 불평등성을 내포한다. 니콜이 스스로 초라해지는 감정을 남편의 성공으로 대리 만족했더라면, 그들은 꾸역꾸역 함께 살아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으로 살기 원하는 사람은 관습적인 부부관계 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그녀가 그에게 원했던 것은 개별적 존재로서, 다른 삶을 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이었다. 니콜이 뉴욕에서 자신의 배우자가 아니라, "LA에 돌아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찰리는 왜 힘들었을까?


  이혼 소송 막바지에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니콜에게 찰리는 "헨리만 괜찮다면 차라리 네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니콜의 말대로 찰리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본인이 이기적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타인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조정하고 변경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니콜이 LA에서 이혼과 양육권 소송을 거는 바람에 찰리는 LA와 뉴욕을 오가며 힘겹게 소송을 한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니콜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 그는 끝까지 왜 니콜이 LA로 오고 싶어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계는 갈등을 동력으로 성장한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이다. 관계에 빨간 불이 들어왔음을 인지했을 때, 나를 변화시켜 관계를 유지시킬 마음과 의지가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인식하는 수준에 대한 합의다. 문제를 문제라고 인정하는 것.


   사소한 갈등의 예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다. 같이 사는 두 사람이 있다. A는 신발이 현관을 가득 채우고 있어도 거슬리지 않는다. 그러나 B는 현관에 신발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못 참는다. 처음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 B는 A의 신발까지 모두 정리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씩 A에게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바로 신발장에 넣었으면 좋겠어.'라고 제안할 것이다. A가 B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면, 적어도 세 번에 한 번이라도 신발을 정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A가 '신발이 현관에 있든 신발장 안에 있든 무슨 상관이지?'라며 하던 대로 계속 현관에 늘어놓는다면, B는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자신이 배려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참기만 하던 B가 어느 날 버럭 화를 낼 것이다.

"내가 신발 정리하라고 몇 번을 얘기해!! 왜 나만 신발을 정리해야 하지? 이건 너무 불공평해!!"

아마도 A 에게는 B의 화가 갑작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그때 A는 어떤 제스처를 취하게 될까?

대략 2가지 정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하지 마~ 누가 하랬어?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라고 항변하는 것, 그리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네가 그렇게 스트레스받는지 몰랐어~ 일단 미안해."라고 B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 후자가 더 적절한 반응으로 보이지만 대게 전자의 반응을 보인다.

어찌어찌 그들이 화해를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사실 가장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사항이 그들 앞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현관문에 있어도 되는 적절한 신발의 개수'에 대해 서로 가지고 있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해결책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B가 기준을 완화하여 현관문의 적당한 혼란스러움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A 가 습관을 바꿔 신발을 바로 신발장에 넣을 수도 있다. 혹은 B가 계속 그 일을 하지만, A 가 B의 노고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고마워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일상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합의들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 그것이 결혼생활이 주는 달콤한 열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혼을 하게 되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니콜이 좀 더 찰리에게 정확하게 이야기를 했더라면, 찰리가 니콜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라는 부질없는 가정을 하게 된다.


  

   영화는 '사랑과 전쟁' 못지않은 치열한 과정을 거쳐 그들은 결국 이혼을 했다. 니콜은 아들 헨리와 LA에서의 삶을 살고, 가까이서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찰리는 결국 LA에 일자리를 구한다. 니콜이 그렇게 원할 때는 할 수 없었던 선택이, 스스로 필요해지자 가능한 선택이 되었다. 그들이 이제 부모로서의 관계만 남긴 채, 부부관계는 종료되었다. 그들의 결혼 이야기가 비로소 끝이 났다.


   결혼을 하는 그 순간부터 결혼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수많은 갈등을 경험하며 이어진다. 그 균열이 해결되지 못했을 때 할 수 있는 선택 중의 하나가 이혼일 뿐이다. 그래서 이혼까지 가는 그 과정 또한 결혼 이야기에 포함된다. 이혼은 그 자체로 어떤 목적일 수 없고, 그저 결혼 이야기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제목은 너무나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P.S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공감했던 대사는 사실 니콜의 변호사 노라의 대사다. 관습적이고 비가시적인 부부관계의 불평등성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이 대사가 이 영화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과음하고 자식에게 호통치며 욕하는 엄마를 용납 못해요. 아빠는 부족해도 그런가 보다 하죠. 솔직히 좋은 아빠라는 개념도 고작 30년 전에 나왔어요.. 그전까지는 아빠들은 말도 안 하고 자식한테 무심한 못 미덥고 이기적인 존재였죠. 아빠들이 변하기를 바란 다지만 기본적인 수준에서 그냥 받아들여요. 아빠는 실수 투정이라 사랑하죠. 하지만 엄마가 그런다면 사람들 다 들고 있어나요. 구조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죠. 왜냐하면, 우리의 기독교적 뿌리인 예수님의 마리아는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심지어 마리아는 동정녀로 아이를 잉태했고 꿋꿋하게 자식을 부양했으며 죽을 때는 시체도 끌어안고 있었죠. 근데 아빠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심지어 섹스조차 안 했다니까!.... 하나님은 천국에 있고 하나님은 아버지고 나타나지 않았죠. 그러니까 당신(니콜)은 완벽해야 하고 남편(찰리)은 망치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요. 항상 당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죠. 무지하게 짜증 나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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