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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Jan 11. 2020

지금부터 육아는  캐치볼 단계?

뾰족뾰족한 마음과 시발스러운 마음도 괜찮아.

 

 나는 요즘 가끔 욕을 한다. "C발"
말로 뱉고 나면 긴장이 풀리고 스트레스가 사그라들며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릴 때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보면 그들만의 패턴이 있었다. 엄마가 일단 문제를 제기를 한다. 아빠는 묵묵부답. 엄마의 잔소리가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피드백이 없으니 엄마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본래의 문제는 잊어버리고, 아빠의 대응에 대해 문제를 삼는다. 그러다 보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서운함이 다시 떠오르는 모양이다. 과거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이다. 예전 이야기를 까먹지도 않는 엄마도 대단하지만, 묵묵부답인 아빠의 끈기도 대단하다. 엄마의 언성이 높아질 때로 높아지고 짜증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아빠가 한마디 내뱉는다. "에이 씨팔 조까치!"  엄마는 순간 입을 다문다. 뭐 그다음은 또 같은 패턴의 반복.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빠가 언제 "에이 씨팔 조까치"를 뱉을까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다. 그 말이 나와야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느낌이었으니까. 아빠가 뱉은 욕은 그거 하나만 기억나는 걸로 봐선 아빠가 욕을 막 버릇처럼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저 부부싸움에서 수세에 몰린다 싶었을 때 "그만해!" 왜 같은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언어를 가져본 적 없는 자의 슬픈 외침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당시엔 내게 "에이 씨팔 조까치" 는 가정불화의 상징과 같은 언어였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얼마 전부터 가끔 내가 "씨발"이라고 욕을 할 때가 있다. 그냥 어떤 감정이 들 때가 있고 그 마음이 참 씨발스럽구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지막이 "씨발"이라고 읊조려본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긴장이 풀리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욕을 할 때면 옆에 있던 신랑은 푸하하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내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내 입 밖으로 "씨! 발!"을 발음하는 그 순간이 아니라 신랑이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그 시점이다. 신랑이 웃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그 순간(내가 욕을 하고 싶은 기분이 되는 그 포인트)을 신랑이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변태인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로다..) 그와 나만 이해하는 대화 패턴이 있다는 사실이 팍팍한 일상에 큰 위로가 된다.  


혹시 엄마도 아빠의 "에이 씨발 조카치" 기다렸던 아닐까? "그만해"를 외치는 그 지점을 말이다. 뭐 바람직한 패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어제 아이가 나와 놀다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이유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모르니 답답할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달래다가 임계치에 이르면 화를 냈을 텐데 지난번 "벽보기 서있기 훈육 (?)"에서 나도 깨달은 바가 있으니 일단 내 감정은 넣어두기로 했다. 짜증을 내는 아이를 앞에 두고, 좀 전까지 아이와 놀았던 순간을 복기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짜증이 났다는 그 사실을 인정해주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내가 엄마는 네 마음 알아, 엄마가 다 알고 있어.라고 이야기하기엔 나는 아이의 감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단어를 고심하며 찾다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가 볼 때 지금 솔빈이 마음이 뾰족뾰족한 거 같은데.... 왜 뾰족뾰족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솔빈이 마음을 만져볼게.... 앗. 아야. 솔빈이 마음이 진짜 뾰족한가 봐...?"

"어... 엄마 나 지금 마음이 엄청 뾰족뾰족해."

놀랍게도 아이가 스스로 뾰족뾰족이란 말을 뱉는 순간 아이의 화가 사그라들었다. 내가 바로 느껴질 만큼.

아이의 가슴을 문지르며..."엄마가 둥글둥글해지게 문질러줄게..."라고 이야기해주었다.

1분쯤 지났을까.... "엄마 나 이제 마음이 둥글 둥글 해졌어...."   

그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표현을 연결해주었을 뿐인데 아이의 화가 사그라들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화가 나면 짜증을 내다가 소리를 질고 물건을 던지며 손을 물던 아이가...


 그날  밤, 아이가 자다가 꿈을 꾸는지 "내가 할 거야! 내가 할 거라고~~"라고 울면서 소리치는 일이 있었다.  그저 잠투정이니 꿈속에서 스스로 풀겠거니 하고 "꿈이네~ 얼른 자~"라고 이야기했더니 갑자기  분노가 나에게 향했다. "엄마 미워! 엄마 싫어!." 자는 아이 잠꼬대에 반응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 엄마..."하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SOS 요청처럼 들렸다. 아까 저녁처럼 마음을 읽어달라는. (오버 해석일지도 모른다...)

결국 몸을 돌려 아이를 달래려고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다시 몸부림이다. "엄마 나 만지지 말라고!!"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간의 패턴으로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자면서 짜증 내는 나이에게 "너 나한테 왜 그래!!"라고 해봤자 어차피 돌아오는 건 더 큰 짜증과 분노뿐이라는 것을.

숨을 고르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꿈속에서 짜증이 나는 일이 있었던 거 같아. 엄마에게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어?"

"엄마한테 얘기 안 할 거야. 절대 안 할 거야.."

"음... 이야기하기 싫구나. 알겠어. 근데 엄마 옆에 있을게. 엄마는 엄청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어서 솔빈이가 하는 말을 아주 잘 들을 수 있어. 엄마 마음속에는 솔빈이가 하는 말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 그러니까 솔빈이가 말하고 싶을 때 엄마한테 말하면 돼. 혹시 엄마가 못 들으면 엄마한테 '엄마~ 마음의 귀를 열어주세요~'라고 얘기하면 엄마가 또 왕 귀를 크게 펼게~ 엄마 옆에 있어...."

놀랍게도 멀리 떨어져 누워 울던 아이가 내 품을 찾아 파고든다. 그리고 나를 꼭 안고 눈물을 그치고 숨을 한번 몰아쉬고 잠들었다.  와.. 5분 만에 상황 종결.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세요."  육아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감정은 포용하되 행동은 단호하게 제어할 것. 그러나 나는 내 마음도 모르는 사람인데, 아이의 마음을 무슨 수로 알겠는가. 그저 '뭔가 수틀린 게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이거 때문에 화가 났구나.. 아니면 이거 때문인가...' 라며 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해보며 걸려들길 바랬었다. 그다음은 뭐 늘 그렇듯 달래다가 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불같이 화내기...

명확히 훈육을 할 사항(아이가 잘못된 행동인지 모르고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위험한 장난을 할 때) 이 아닐 때가 가장 난감했다. 마치 오늘 밤처럼 말이다.


그러다 어제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약간은 알게 된 것 같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화가 난 명확한 이유나 혹은 짜증의 명확한 실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인 내가 네 마음이 지금 뾰족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때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


   엄마가 아빠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에이 씨발 조 까치"가 아니라 "당신 마음이 지금 그렇구나.."라는 다정한 인정이었던 것처럼 아이도 "앙~~" 하고 울 때 "네가 지금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어"라는 그 마음의 인정이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씨발'이라고 발음할 신랑이 '푸하하' 웃어주면 마음이 풀리는 것처럼, 아이도 내가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있어라는 사인을 받아들여준 것 같다.


연애에서 서로 합을 맞춰가며 관계를 지속해가는 것처럼, 아이가 자라니 육아도 일방적인 돌봄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는 것 같다. 아이가 던지는 어설픈 공을 처음에는 나도 어설프게 밖에 못받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과 경험이 쌓이며 아이도 나도 서로만 아는 싸인이 생기겠지. 그러다보면 끝없이 주고 받는 그런 캐치볼이 가능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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