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트러블 상반기 에세이 1>
<제2의 성> 1권 2부 역사 파트 에세이<제2의 성> 1권 2부 역사 파트 에세이<제
<제2의 성> 1부 2장 역사 파트를 읽고 썼습니다.
모든 주체는 계획을 통해 자기 자신을 구체적으로 초월로 확립한다. 그는 다른 자유들을 향한 영속적인 초월에 의해서만 자신의 자유를 완성시킨다. 무한히 열린 미래를 향하여 자신을 확장하는 길 외에는 현 존재를 정당화시킬 다른 방도는 없다. 초월이 내재 상태로 떨어질 때마다 존재는 '즉자 卽自'상태로 퇴보하고, 자유는 사실성(사물의 상태)으로 타락한다. 만약 이 전락이 주체에 의해 동의된 것이라면 도덕적 과실이고, 주체에게 강요된 것이라면 박탈감과 억압의 형태를 띤다. 두 경우 모두 악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고심하는 모든 개인은 초월하고자 하는 무한한 욕구로써 자신의 존재를 경험한다. (42쪽)
보부아르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고자 한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당연한 욕구다. 헤겔에 따르면 의식 안에 다른 모든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적대감이 있다.(30쪽) 자신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과정 속에서 주체는 타자를 인식한다. 쉬운 예로 1등은 2등이 있을 때 자신이 1등임을 안다. 자신을 본질로 확립하려는 주체는 타자를 비본질, 객체로 구성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는 주체의 본질을 증명하는 존재로서만 의미를 가져야 한다. 만약 타자가 주체임을 주장하며 주체의 본질을 훼손하려 한다면, 주체는 위협을 느낀다. 주체는 계속적으로 타자를 타자로 있도록 애쓰게 된다. 그것이 주체에게는 기투이며 초월이다.
보부아르는 질문을 던진다. 남자는 주체로서의 삶을 사는데 여자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남자가 여자를 타자로 호명할 수는 있다. 여자도 인간이라면 분명 삶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려는 욕구가 있을 텐데 왜 타자에 머무르고 있을까? 암컷이라는 생물학적 특성 때문일까? 여자의 정신 분석학적 운명인가? 사유재산제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사적 대패 때문인가?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대해 그럴듯한 분석을 한 기존 학문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절대적 우위를 성취하고자 하는 인간 의식의 제국주의적 결과(101쪽)라고 보았다.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의도가 없었더라면 하나의 성이 다른 성을 이렇게 철저하고 끈질기게 억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보부아르의 생각이다.
남자는 주체를 선점했다. 그리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규칙(발전, 폭력, 경쟁, 침략)을 만들었다. 그들의 방식대로 살지 않는 자는 초월할 수 없도록 해놓고, 그들의 방식은 남자만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제2의 성> 1권 2부의 역사 파트에서 남자가 주체를 선점하고 또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자는 생리를 시작하고 폐경이 올 때까지 모든 순간 가임기다. 원시 시대에 여자가 반복적인 임신과 출산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동안 남자는 막대기와 몽둥이로 세계에 맞서며 확장하는 경험을 하며 실존자로서 살았다. 사실 21세기인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여자가 막 태어난 아이의 젖을 먹이느라 아침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남자는 멀끔하게 차려입고 햇빛 속으로 출근해서 일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퇴근한다. 자기 삶을 살고 퇴근한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던 그때, 젖 냄새 풍기는 티셔츠를 내려다보며 여자가 느끼는 모멸감, 초라함, 열등감을 떠올려보자. "나는 새로운 생명을 기르는 가치 있는 일을 했어"라며 아무리 정신 승리하려고 해 보아도 마음속에 켜켜이 쌓이던 실존자로서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시시대부터의 이 경험을 통해 남자는 할 수 있지만 여자는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인간의 삶의 이유와 세상의 가치를 결정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남자가 실존자로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험하는 것들(위험을 무릅쓰고 동물을 잡는 것, 다른 부족을 침범해서 약탈하는 것,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자연을 다스리는 것) 이 인간에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여자가 경험하는 것(임신, 출산, 양육)은 여자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된 적이 없다. 이것이 여자에게 불행의 시작이다.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인간에게는 삶의 관념(과거, 현재, 미래)과 소유의 개념이 등장했다. 삶의 관념과 소유 개념의 결합을 통해 남자는 내(이 시기의 나는 개인이 아니라 씨족 공동체를 의미한다)가 실존자로서 삶을 살면서 얻은 소중한 재산이 미래에도 영원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자손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것은 여자다. 소중한 자손을 낳아준다는 차원에서 남자는 여자를 인정했다. 여신 숭배는 이런 맥락이었다. 농경시대에 농사도 여성의 출산과 비슷하게 이해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땅은 계속 나에게 무엇인가를 만들어주어 사유 재산을 불려주었다. 그 번식력에 감탄하며 대지(자연) 도 여성처럼 숭배했다. 대지와 여자 모두 남자에게 필요한 것(사유재산과 자손)을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생명의 신비한 근원에 파묻혀 있는 풍요를 이 세계에 끌어당기는 힘은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신비한 발산 물이라고 생각했다.(116쪽)" 그러나 이 시기에 여자에 대한 숭배는 여자가 강해서가 아니라 남자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출산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모르고, 직접 아이를 낳을 수도 없었다. 자연의 원리에 대해 잘 모르니 농사의 결과물은 마법적인 것이었다. 잘 모르니 몸을 사리는 차원에서 여자를 추켜세워준 것일 뿐 남자는 한 번도 여자를 동일한 주체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호모 파베르의 시대. 남자들은 청동기 시대 도구를 생산하면서 합리적인 사상과 논리 그리고 수학 등의 개념을 습득했다. 기술적 인과관계의 경험에서 자연을 다스릴 줄 알게 되면서 (운하를 파고 물을 대는 등) 농사가 자연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이 되었다. 자신들의 생식능력(정자의 역할)을 알아차리자 후손에 대한 독점적 소유를 주장했다. 여성을 숭배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남자는 드디어 세계의 지배권을 쟁취한다. 모계혈족에서 부계혈족으로의 대체와 남신이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남성의 원리가 승리했다. 정신이 생명을 이기고 초월이 내재성을, 기술이 마법을, 이성이 미신을 이겼다.(124쪽).
여자에게 불행인 것은 남자에게 노동의 동반자가 되지 못함으로써 인간적 공존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의 노동과 생각의 방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생명의 신비에 종속된 채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타자의 차원으로 바라보는 이상, 남자는 여자의 억압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팽창하고자 하는 남자의 의지가 여자의 무능력을 저주로 탈바꿈시켰다. (129쪽)
남자의 방식이 세상의 규칙이 되었다. 가부장제가 승리했다. 팽창하고자 하는 남자의 관점에서 생명의 신비에 종속된 여자는 무능력해 보인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를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자는 무능력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존재(아직 정복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자연처럼 미지의 존재)였고 동시에 남자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존재를 영속시키기 위해 여전히 필요한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늘 고민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주체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타자이기를 바랬다.
나의 영속을 위해 아이를 낳지만, 여러 여자와 쾌락을 추구하는 나를 방해하지 않는 존재.
내가 세계에 대항해 초월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렸다가 내가 힘들 때 집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
동시에 주체를 연기(절대로 진짜 주체여서는 안되고 주체인 척 연기만 해야 함. 잘 꾸미고 다이어트하고 세상사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져 대화가 잘 통하는 정도의 지적 수준을 유지하되 나의 희생을 요구하는 자신의 삶을 주장하지 않음) 해서 나에게 긴장감을 주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여자는? 인류사 처음에는 남자가 행하는 가치 추구의 방식을 따라 할 수 없어서 그리고 남자의 노동과 생각의 방식에 참여하지 못해서 여자는 남자의 타자가 되었다. 그러나 여자도 인간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여자도 당연히 실존자로서의 욕구가 있다. 그래서 여성의 삶은 투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자기 자신을 본질적으로 확립하려는 모든 주체의 기본적인 주장과 여자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구성하려는 상황의 요구 사이의 갈등 (42쪽) 속에 있다.
여자의 역사는 상속의 역사와 일치한다.(134쪽) 남자는 자기의 자손에게 사유재산을 상속함으로써 삶의 영속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자신의 핏줄에게 재산이 상속되도록 하기 위해서 여성의 정절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여성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가족을 영속시키고 세습 재산을 고스란히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을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 사유 세습 재산제가 없었던 이집트와 공유 재산제가 우세했던 스파르타의 경우 여성에 대한 통제가 덜했고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대우받았음을 볼 때 사유재산제가 여성 억압의 원인임을 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무런 법적,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주지 않음으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했다.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사회문화적으로 여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했다. 그리스 시대에 여자는 보잘것없고 잔소리가 많고 낭비벽이 심하며 교만한 존재로 여겨졌다. 크산티페가 악처라는 오명을 얻은 것도 그러한 분위기에서였을 것이다. 로마 시대에 여자는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며 이를 반영하여 법적 지위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여자에 대한 혐오는 한층 더 기승을 부렸다. 많은 풍자 작가들이 여자는 사치스럽고 폭음과 폭식을 하며 방탕하다고 비난하고 흠잡을 데 없는 아내와 헌신적인 어머니만을 찬미했다. 여자에 대한 혐오는 기독교에서 방점을 찍었다. 가톨릭 교회의 모든 성부가 여자의 비열함을 선포했다. 교회법은 여자에게 남자의 직무를 금지시켰고, 법정에서 여성의 증언도 금지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율법은 여자를 아내와 어머니로서 공경했으나 이러한 역할에 예속시켰다.
중세 시대에 여자는 폭력적인 영주의 노예였다. 다행히 중세가 저물고 왕이 등장하며 영주는 힘이 약해졌다. 여자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단 결혼을 안 한다면 말이다. 결혼한 여자는 여전히 남편에게 예속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영주는 사라졌지만 신흥 귀족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등장했다. 사유재산을 좀 더 손에 꽉 쥐고 있는. 그들은 여전히 기혼 여성의 종속을 필요로 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여자를 여자라는 이유로 인색하고 사악하며 교활하고 심술궂다며 비난했다. 거대한 가스 라이팅이다. 여자들은 여전히 교육을 받지 못했고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농노에서 해방된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남녀 간의 불평등에서 벗어났지만 먹고살기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은 (가장의)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기생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16세기 개인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17세가 사교계 생활이 발달하고 교양이 보급되면서 살롱에서 부르주아 여성들은 괄목할 만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급 창녀들은 방종에 불과하지만 경제적 자립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많은 부르주아 여성들이 교양 수준의 얕은 교육이었지만 이를 통해 여자들은 읽고 쓰기 시작했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문화가 소수 엘리트 문화의 전유물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나는 여기서부터가 의미 있는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지배자의 언어일지언정 읽고 생각하고 쓴다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계기가 된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 여성들은 여자가 처한 조건에 대한 분개로 인한 증오와 분노와 공포로 그 천재성을 소진했지만 말이다.
근대로 오면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이상이 태동하던 시기와 맞물려 여성의 권위와 지위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는 <여성의 기품과 우수성에 관한 웅변술>에서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신의 명령이나 필연성,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관습, 힘, 교 교육, 노동에 의한 것이며, 주로 폭력과 억압에 의한 것(176쪽)이라고 했다. 플랭 드라 바르는 <양성평등에 관하여>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열등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여자들을 위한 탄탄한 교육이 필요하다(178쪽)고 했다. 볼테르. 디드로. 몽테스키외, 콩 도세르 등 많은 이들이 여자가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교육과 사회에 의해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시민 혁명 그러니까 부르주아 혁명이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시민혁명은 아래와 같다.
절대 왕정기를 통하여 크게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 봉건 제도의 모순을 극복하고, 국가 권력을 획득하여 사회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 역사적 사건을 시민 혁명이라고 한다. 시민 혁명은 영국의 명예혁명에서 미국의 독립 혁명을 거쳐 프랑스 대혁명에서 완성되었다. 이 중 프랑스혁명의 경우 봉건적 신분 제도와 토지 소유의 모순을 극복하고, 시민의 권리를 인권 선언에 명시하였으며, 혁명의 주요 시기에 항상 민중 운동이 함께 하였다는 측면에서 가장 전형적인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내세운 주요 이념은 세습 전제 군주제 타파, 시민에 의한 정부 권력의 형성과 운영이었으며, 시민 혁명의 성공으로 시민들은 정치적 자유와 법 앞의 평등을 획득하고, 경제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게 되고, 이후 유럽 사회에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확산을 가져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민 혁명 [市民革命]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 사전, 2006. 10. 30., 이상수)
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다. 그러나 혁명의 계획은 민중이 지도하지 않았고, 그 열매도 민중이 거두지 않았다. (182쪽) <캘리번과 마녀>를 쓴 실비아 페데리치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봉건 영주, 도시 귀족, 주교와 교황의 권력을 흔든 반봉건 투쟁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으로 등장한 제도에 불과하고 근대 국가의 수립은 지배계층의 교체일 뿐이다. 지배계층은 한 번도 피지배계층에게 진 적이 없고, 남자는 한 번도 여자를 주체로 인정한 적이 없다. 따라서 부르주아는 오히려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진보적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격렬한 반여 성주의 적 태도를 취한(185쪽)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시기 노동자 계층의 여성들은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물질적인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나 먹고살기 바쁘기도 했고, 사회 정치적 사건들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도 아니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기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권리를 요구하지 못했다. 일부 페미니스트 운동이 있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남자들은 더욱더 여성들을 법적, 정치적으로 예속했다. 발자크는 <결혼 생리학>에서 여자에게 교육과 교양을 차단하고, 여자가 교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금지해야 하며, 여자에게 불편한 옷을 입도록 강요하고, 여자가 빈혈을 일으키는 섭생을 따르도록 고무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시기 여자는 독립의 시도를 저지하는 예의범절의 의식에 갇혀 지냈다. (185쪽) 재미있는 것은 이 시대가 바로 낭만적 사랑이 등장하던 빅토리아 시대라는 점이다. 곱게 어머니와 주부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만족한다면 남자들은 무릎 꿇고 프러포즈하며 얼마든지 여자를 숭배하는 연기를 하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낭만적 사랑이 가지는 기만을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기계는 남녀 노동자의 신체적 힘의 차이를 해소했다.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했고, 여자들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여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였고 혁명이었다. 여자가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앵겔스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던 것이다. 여자가 남자의 세습 재산 신분에서 벗어나서 한 명의 인간으로 삶을 회복하는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여성 노동자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여자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조합을 만들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가정에서 자신의 경제적 역할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부분 낮은 임금을 수락해버렸다. 착취당하는 여자는 독립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여전히 여자는 재생산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류사 최초에 남자가 주체로 자신을 인식하는 동안 여자가 내재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생식기능!!!!! 피임법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 여성에게 삶이란 임신의 연속이었다. 피임법과 낙태 그리고 인공수정 등의 방법으로 출산은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드디어 여자는 자기 몸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여자는 인격 쟁취를 보장할 경제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드디어 여성의 조건이 변했다. 재생산의 예속에서 해방되어 (남자와 동등하게)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여자가 경제적 독립을 이룰 기반이 되어줄 예정이었다. 자본주의의 근대적 형태가 자리를 잡으면서 세습 재산은 폐지되고, 동시에 공동체는 무너지고 모두가 개인이 되었다. 여성을 억압하던 법적 제한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여자들은 정치적 권리의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급투쟁이 성혁 명예 선행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며 여자 노동자들은 노동자 해방에서 오는 자유를 기대했고, 부르주아 여성들은 혁명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여성들이 성으로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극렬한 반대도 많았다. 그럼에도 투쟁은 계속되었고 결실은 여자의 투표권 획득으로 이어졌다. 소련의 혁명은 여자에게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가져다주었다 ( 이 책이 1949년도에 쓰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 보부아르는 쓰고 있다.
이 책이 써진 지 벌써 70년이 지났다. 사회주의 혁명은 망했지만, 선거권 운동으로 시작된 페미니즘 제1의 물결 이후 제2 물결, 제3 물결 그리고 최근에는 제4의 물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여자의 법적, 정치적, 경제적 지위는 70년 전과 비교하면 좋아졌다. 여자가 직업을 가지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20대 여자들은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문제임을 명확히 인식하며 비혼, 비출산을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여자가 실존자로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여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남자가 만들어 놓은 사회의 규칙에서 벗어나서, 남자의 가치에 짓눌리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해 여자의 가치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속 시원하게 yes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늘 저녁 남편과 나눈 대화를 상기해 봐도 그렇다. 남편은 아이가 생기고 나서 더 책임감이 생기고 회사일을 더 잘하고 싶어 졌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에게 네가 삶을 사는 방식과 부모로서의 태도가 상충되지 않아서 부럽다고 했다. 나 역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이를 생각하며 접은 기회들이 많다. 나는 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면 그만큼 아이를 놓칠 것 같다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해봐야 하는 것인데 기투가 안 된다. 때문에 내가 나로 사는 것과 부모로서의 삶이 충돌한다고 느낀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아이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아이를 돌보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 직종은 다르지만 비슷한 연봉을 받고 비슷한 연차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우리지만 아이 앞에서 미묘하게 입장이 갈린다. 내가 남편보다 아이를 더 위한다는 말이 아니다. 아이를 앞에 두고 남편과 내가 사회에서 부여받은 기대나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부여하는 그 시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더 열심히 노오오력해서 내 안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 되는 걸까? 그게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일까? 그리하여 나는 모성을 극복(?) 하고 나 자신의 성취감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일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나는 이 신농도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시대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대? ( 나는 플랫폼 자본주의는 신농노 시대라고 혼자서 주장하고 있다.)
남자는 주체를 선점했다. 그리고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았다. 사회의 규칙과 가치는 남자들이 정했다. 그 규칙을 따르고 가치를 추구해야 유능하고 성공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발전, 약탈, 폭력, 성장, 팽창과 같은 것. 그러나 나는 그런 게 정말 싫다. 나는 적당히 사는 게 좋고, 이왕이면 사이좋게 사는 게 좋고, 이왕이면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좋다. 내가 덜 갖더라도 네가 덜 아프면 좋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뱃속에 아이를 품은 채 열 달을 보내고, 눈도 못 뜨는 생명을 낳아서 사람 구실 할 때까지 (스스로 먹고 걷고 달리고 자고) 키우는 경험을 하는 여자에게는 남자의 가치는 애초에 맞지 않은 옷이 아닐까? 실존주의가 주체를 둘러싼 세계에 맞서도 행동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와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 그 결과로써 팽창과 발전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한다면, 지금 여자는 다른 언어로 여자의 삶을 말하고 그것이 세상의 규칙과 법칙이 되도록 세상에 기투하고 초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5주 동안 <제2의 성>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보부아르가 여자들에게 재생산의 예속에서 해방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남자의 가치를 쟁취하라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그래서 내내 보부아르는 발전주의자인가? 남자의 가치를 옹호하는 명예 남성인가 하는 오해를 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첫 페이지로 돌아가서 다시 읽기 시작하니 그제야 보부아르의 진심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 책에서 옳고 그름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남자가 주체를 선점하고 여자를 예속시켰다. 그리고 타자인 여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녀 역시 "여성의 가치"에 대해 상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때문에 사르트르가 싸늘하게 인간은 실존 자이다라고 선언하고 끝내버렸을 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더해 "실존주의 윤리"를 생각해 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의식 안에 다른 모든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적대감이 있다는 헤겔의 분석 또한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기초한 남자의 가치에 불과하다. 여자의 가치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 안에는 다른 모든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연대감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프랑스 페미니즘처럼 여자의 본질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존의 언어로는 여자는 열등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또한 윤리적이라는 것은 이 운동을 멈추지 않는 것, 즉 단 한 번에 결정적으로 "존재하기"를 시도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2의 성>에서도 동일한 실존주의 윤리에 토대를 두게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갱신된 계획들 속에서 자신을 초월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존하게 하고 그 안에 우리의 초월성이 구현된 계획들은 타인들이 그것을 필요한 것이 되게 하면서 정당화한다. 내가 만들어낸 대상들은 세계에 존재하는 즉시 정당화되기 위하여 타인들의 시선과 부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내 존재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은 내 존재를 필요한 것으로 만들면서 내 자유를 만들어낸다. 그는 내가 자유롭게 되고 구체적인 자유로서 나를 실현하기 위해 미래를 향해 나를 초월하게 해 준다. 그 누구도 홀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독 속에서는 모든 것이 그에게 헛되어 보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유들이 자족하지 못하고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순 교수님 22년 소요서가 강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