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의 퇴사, 네번째 회사

18살의 내가 40대 후반인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2

by 노연석

인생의 전환점,1991년12월 2일

입사가 확정된 회사로 2주간의 합숙 연수에 참여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문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닌데 2주씩이나 합숙을 했다는 것은 거의 세뇌교육 수준의 연수 프로그램으로 운영했었다.

그 해 12월 초는 매우 날씨가 추웠다. 비가 오기는 했지만 비온 뒤 날씨는 급격히 떨어졌다. 연수 과정 중 산악 프로그램은 추운 날씨로 훈련 중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이 발생 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2주간의 세뇌 교육 프로그램들이 끝나고 나면 다시 면접관들과 인터뷰를 해야 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어떤 회사로 보내게 될지가 결정이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룹 주관의 연수를 진행했었고 연수 과정의 결과를 통해 어느 회사로 보낼지가 결정이 되었고 마지막이 인터뷰다.

인터뷰에서는 직접적으로 가고 싶은 회사를 물어보았다. 1,2,3지망을 이야기 하라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나에게는 4지망을 어디로 할 것인지 물어 보았다. 내가 4지망으로 지목한 곳은 연구소였다. 연수가 끝날 무렵 어느 회사로 가야 할지 통보를 해 준다. 나는 4지망으로 이야기 했던 곳으로 발령이 났다.

나는 그곳에서 28년을 일을 했고 지금은 그곳을 나와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직 그 회사를 떠난 것은 아니다.




젊은날 색다른 퇴사의 시작

내가 근무하던 연구소는 최근 10년전까지만 해도 그룹의 중앙연구소 였기때문에 법인이 아니였다. 각 관계사로부터 펀딩을 받아 운영되었고 그러다 보니 연구소에 근무하는 인력들은 펀딩을 해 주는 회사의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많은 회사들이 있었는데 나의 소속사는 지금하는 일과 전혀 무관한 회사 였다. 물론 그때 당시 하던 일과도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였다.


1995년 말 회사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 났다. 내가 소속되었단 회사는 그룹에서 분리가 되어 새로운 사명으로 다시 시작을 하였다. 그렇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생애 첫퇴사의 수순을 밟아야 했고 다른 회사로 소속사가 변경되었다. 그렇게 1년도 되지 않았을까. 내가 소속된 회사가 부도 수준이었는데 회사가 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경영악화로 펀딩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나는 두번째 퇴사를 당했고 다시 세번째 다른 회사로 강제 이직을 당했다. 세번째 회사는 이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정말 지금까지의 이슈를 만든 회사와는 다른 정말 최고의 회사였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도 8개월만에 이 회사에서 다시 이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펀딩을 해 주는 회사가 아닌 그룹의 전산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회사로 진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회사가 아직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이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10년은 더 다니려고 희망 해 본다. 하지만 가끔 후회하는 건 어떻게든 세번째 회사에 남았어야 하는데 젊은 나이에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며 아쉬울때도 있다.


세번째 퇴사 후 네번째 회사에서 나는 많은 성장을 했다.

수 없이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수없이 많은 시스템들을 만들면서 서버, 네트워크, 보안 운영에서 코딩을 위한 모든 것까지 해 보지 않은 일이 없다.


91년 12월 2일 내가 회사에 입사하던 날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랜시간 이 회사에 머무를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이 모두 퇴사를 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동안 나는 그자리에 머물렀다. 그랬기때문에 나는 안정적인 삶을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나 삶의 굴곡이 없어 밋밋하기도 하고 이 상태로 사회의 다른 곳으로 나가 간다면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그날을 만든 것은 입사 지원서 일 것이다. 너무 오래 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자기 소개란에 구구절절하게 나와 나의 가정형편 등의 내용을 적었던 것 같다. 그때는 다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게 적는 사람은 없다.

고등학생인 내가 스펙으로 적어야 할 것은 딱히 없었다. 2년반 동안 취득한 자격증 4개가 전부였다. 아무 쓸모없는 자격들이지만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꿀 무기가 되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른다. 아마 아니였을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합격의 기준에 여러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장남, 장녀라는 소문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합격한 친구들을 보니 나를 포함에 모두 장남이였다. 그냥 우연일 수도 있다. 기업은 장남이라면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고 합격의 조건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정확한 건 공식적인 것이 아니니 알수 없다.

또, 입사 면접시 면접관 중에는 관상을 보는 사람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내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관상이 나쁘지는 않았나 보다.


기업에 입사를 위해서는 수많은 스펙과 경험을 중시하기도 했었고 특이한 방법으로 인재를 뽑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아마도 그 옛날 내가 가진 스펙으로 현실의 회사에 도전한다면 나는 입사 원서를 수십 곳에 내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는 아마 꿈도 꾸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고 덕분에 내 인생은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첫 직장, 첫인상

2주간의 연수가 끝난 금요일 나는 다시 시골로 향했고 간단하게 짐을 싸서 내가 다녀야 할 소속사로 갈 준비를 했다.

1991년 12월 16일. 나는 낯선 서울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에 회사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나의 첫 직장으로 향했다. 회사는 한적한 산골마을 같은 곳에 위치했다. 연수기간 중 한번 와 본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연구소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과 다르다. 건물 층수는 높지 않지만 4개의 동으로된 멋진 건물이었다. 농담삼아 본동 건물은 건물이 갈라지면거 마징가가 나온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그 건물들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나를 비롯한 다른 동기들도 도착을 했다. 도착 후 인사팀에 연락을 했고 선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인사팀 사무실로 향했다. 건물안으로 들어와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인사팀 모 대리 분이 들어오시더니 나를 비롯한 동기들을 반기는 말이 과관이다.

“왜 벌써 왔어?”라는 말에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말도 많은 굳이 이렇게 말을 해야 했나?

“집에 가서 좀 쉬고, 필요한 서류들 준비해서 일주일 후에 다시 봅시다.”

조금 더 있다가 와도 되니 일주일간 집에서 쉬다가 다시 오라고 한다. 뭐지? 뭐가 잘 못된 것인가?

잘못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인사팀에서 아직 사람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우리도 회사에 제출할 서류도 준비해야 했기때문이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유급 휴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 후로 인사과 소속으로 인사대기를 하면 OJT를 받던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사무실로 가서 그 선배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선배는 늘 우리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오늘 아침에 비왔냐? 머리가 다들 왜 그래?” 젊은 날 머리에 무스, 헤어 스프레이 같은 것을 한참 뿌리고 다닐 나이였는데 그 분들에게 보기에 좋지 않았나 보다. 늘 그냥 지나 치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장장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인사대기로 인사과 소속으로 교육도 받고 잡무도 해내며 보냈다. 지금은 컴퓨터 속에 들어있을 각종 서류들이 책상위에 가득했다. 연말이라서 그런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 뭔지 모르고 우리는 매일 서류를 정리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리고 그 당시 가장 유망한 기술테마였던 C&C(Computer & Communication)가 아닌 C&C(Coffee & Copy) 생활을 하며 인생 첫직장에서 생활들이 시작 되었다.


열여덟살,그렇게 나의 두번째 사회 생활이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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