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를 깨달아 보는 시간

충분히 행복하다.

by 노연석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고 도는 생활 속에서 지금의 내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를 잊은 채 살아갑니다. 아침에 출근할 직장이 있고 삼시세끼 거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가끔은 치킨에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도 부려보며 살아갑니다.


늘 비슷한 생활 패턴을 반복하며 더해져 가는 하루는 지루하고 심심하고 때로는 우울하게까지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의 일탈을 꿈꿉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조차 행복에 겨운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과의 비교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내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잘 인지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과 시각으로 바라보면 가족도 있고 그래도 아직은 나에게 월급을 주는 직장이 있고, 매일매일 반복하며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는 근근이 살아남기에도 벅찰 만큼 힘겨운 삶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앉자 몇 자 끄적이고 있는 동안에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힘겨운 삶을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멋진 식사를 위해 일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버스 안에서 퇴근길에 거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니 눈에 띄게 많아진 배달통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질주합니다. 그들은 배달일을 해서라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위험천만한 일을 어쩔 수 없이 선택했습니다. 한건이라도 더 배달을 하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배달하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다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가끔 거리에서 배달 가방을 메고 배달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걷는 사람, 전동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 그들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새벽 배송이라는 것이 시작되면서 우리의 생활은 너무도 많이 편리해졌습니다. 이 분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는 지역에 배달을 하고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차 안에 한가득 물건을 싣고 배달을 합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는 그분들을 위해 우리는 배달을 줄여야 하는 것이 맞는지 늘려야 하는 것이 맞는지 어떤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분들의 생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배달이 많아져야겠지만 그만큼 그들이 힘들어질 텐데 그래도 전자이겠지요.


코로나 발로 배달시장은 엄청난 훈풍을 맞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수요가 늘어나자 배달비는 상승하고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는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지만 정작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초창기 사업을 할 때 꽤 괜찮은 금액을 제시했던 회사들도 시장이 안정화되자 여러 가지 명목으로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비용을 줄여 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더 많은 비용을 내고 있는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배달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런 시장의 변화에 역풍을 맞고 있는 배달일을 하시는 분들의 입장을 사실 잘 모릅니다. 하지만 도로 위에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커진 것도 있겠지만 그 시장에 참여하는 사업자들이 많아졌고 그 파이가 점점 줄어들고 배달의 저 끝에 놓인 사람들에게 안전도 보장이 되지 않는 노동의 착취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란 우려를 해봅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는 과정에 부모들이 너무도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아라는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먹고살려면 혼자 일해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어 부부가 모두 전쟁터와 같은 일터로 출전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 한 명 키우기도 힘든 세상이라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을 마땅히 봐줄 사람이 없다면 누군가 한 명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육아 휴직을 내어야 하는데 혼자 벌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게 하려면 흥미를 갖지 못하다라도 학원에 보내야 하고 주변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먹는 것, 입는 것들을 맞추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워가는 부모들에게는 매우 힘겨운 일이 되곤 합니다. 직장일 때문에 함께 하는 시간 부족한 것에 힘겨워하고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합니다. 그렇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는 일도 사실상 그다지 흥이 나는 일은 아닙니다. 피곤하니까요.


주변에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맞벌이를 하는 부부는 아이가 유치원, 학교 등에 가 있는 동안 아프거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면 회사 일을 미뤄두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가야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당연히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입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은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일들로 고민하고 힘들어할 일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보다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그늘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법칙이니 미리 상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5월에는 쉬는 날이 유난히 많은 데다 학교의 재량으로 며칠간 휴일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직장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눈치 보면서 휴가를 써야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휴가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이해해 주고 배려를 해 주는 문화가 정착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선진국들이 차츰 시행을 하고 있는 주 4일, 주 3일 근무가 우리나라에도 현실이 되어 보기를 바라봅니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한 지인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보다 학력도 좋고, 똑똑하고, 일도 잘하고 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분이지만 정말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난 뭐라도 하나를 포기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분은 어떤 것 하나 놓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들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들을 아버지 그늘 아래 착하게 그리고 열심히 잘 살아 주었더군요. 올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미국에 있는 유명 음대에 온라인 인터뷰를 착실하게 준비해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아들의 합격을 축하해 줄만큼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학교에 보내려면 당장 통장에 있는 잔고가 학비, 기숙사비등에 필요한 비용이 대략 1.3억 원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사실 아들이 이 학교에 합격할 것을 미리 직감하고 미리 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1년 전쯤 일이었는데 하필 주식을 통한 준비였고 처음에는 생각보다 주식투자가 잘 되다 보니 더 많은 돈을 쏟아부었으나 결국에 쓰라린 경험만을 남긴 채 몇 푼 남기지 못하고 날렸습니다.


세상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명은 있다는 말은 맞기는 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잔고 증명 후 모두 되돌려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만, 이제부터가 다시 걱정이겠지요.


문제가 여기까지이면 좋으련만 작년부터 홀로 사시는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좋지 않아지고 심해지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와 중에 무릎 관절 수술도 해야 했고 어머니를 홀로 집에 두고 출근을 하다 보니 늘 집에 있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과정, 후에도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잘하시지 못하는 어머니가 내가 왜 병원에 와 있는지? 왜 수술을 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셔서 병원 직원들과의 많은 말다툼이 있을 때 매다 회사에서 달려와야 했다고 합니다. 수술한 사실조차 모르고 무심코 걸어가려다 쓰리지는 일도 일어났고요.


도저히 혼자 모시기가 힘들어 요양병원에라도 모시려고 했지만 그곳에도 아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4등급 이상의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시는 어머니에게는 그런 등급을 절대 주지 않더라고 합니다.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매번 돌아오는 것은 무등급이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분을 바라보며 나를 다시 바라봅니다. 나는 그에 비하면 얼마나 걱정도 없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 아이가 유명 대학에 입학은 하지 못했어도 그런 걱정들을 갖지 않게 잘 커주고 있구나. 내가 삶이 힘들어질 만큼 걱정해야 할 가족도 없구나. 그만큼 나의 환경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 비해 행복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을 돌아봅니다. 나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나태함과 쓸데없는 고민들이 얼마나 행복에 겨운 것들인가를 바라보면서 지금의 삶은 충분히 행복한 것이고 미래의 삶도 그렇게 만들어지도록 노력하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Image by 루의 포천라이프 from NAVER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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