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온고지신처럼
삶의 속도
20대의 나의 시간은
그 순간순간들이 너무도 느리게 흐른다고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나니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렸다.
매일 토끼처럼 뛰어다녔던 것 같다.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배우고 익혔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뛰어다녔었다.
50대의 나의 시간은
매 순간이 아쉬울 만큼 빨리 지나가고
이제 삶 속에서 배움의 속도는 마치 거북이라도 된 것처럼 느려졌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고, 배움은 느려지고,
과거에 배운 것이라도 꺼내어 까먹으며 살아보려 하지만,
꺼내어 든 낱알은 빈 쭉정이일 때가 많다.
삶의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
20대는 언제나 뽀송뽀송한 스펀지와 같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50대는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랄까.
그래서 무거워진 만큼 느려지는 것은 아닐까?
너무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검색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느려지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만한 것은
쥐어짜 내면 다시 무엇이든 흡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삶의 속도를 저하시키는 쓸데없는 고집
그런데, 함정은 어떤 것도 짜내서 버리지 않으려는 고집이다.
언젠가 필요할 거라 생각하며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다.
당신의 옷장 가득한 버리지 못한 옷들처럼 말이다.
결국 아무것도 짜내지 못한 스펀지는 새로운 것을 흡수하지 못한다.
어쩌다 새로운 것을 흡수해도 뒤죽박죽이 썩여 버린다.
흡수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어디를 비워야 할지 고민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당신, 혹시 꼰대인가요?
과거의 것들로 가득 채워진 스펀지에 머금은 지식들을
현실에 꺼내어 놓는 순간 꼰대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꼰대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조차 모른다.
20대의 나는 꼰대가 아니었지만
50대의 나는 부정하고 싶지만 꼰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온고지신처럼
스펀지 가득 머금은 불필요한 낡은 지식을 짜내어 버리고
빈자리에 새로운 지식을 흡수해서, 시대에 맞는 지식을 꺼내어 활용하는 것,
즉, 온고지신처럼 옛것에서 버릴 건 버리고 새로운 것을 담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되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