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소비량은 소주 기준 년간 53병이라고 한다. 한 달에 거의 7명을 마신다는 것이고 한 달을 4주라고 가정하면 일주일에 대략 한 병을 마시고 있다. 여기에 맥주도 계산을 해 보면 일주일에 1.75병을 마시고 있다. 물론 평균이겠지만 나는 그 평균보다 더 많은 양을 마시고 있고 평균을 높이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다.
술을 배워가던 20대 초반, 나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알코올 쓰레기였다. 얼굴은 금방 빨개져 오고 술을 마실 때마다 주량을 초과 한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면 변기를 붙들고 구토를 하던 기억들은 잊히지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음주의 횟수가 늘어 갈수록 그것에 익숙해지고 단련이 되어서 지금은 아무리 마셔도 구토를 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단련이 된 것인지 어딘가 이상이 생겨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알코올 중독자인지는 건강검진을 받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겉모습으로도, 나 자신도 알 수없었다. 조금 과한 날 다음 날에 술 마시는 것 쯤 언제나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살았다.
그런 나는 건강 검진 때마다 십이지장 궤양과 각종 위염을 달고 살았다. 다행히도 더 나빠지지는 않는 상황, 십이지장 궤양은 나도 모르는 사이 찾아왔다 살며시 돌아가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나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있지만 그때마다 술로 인한 문제가 생길까 노심초사 조마조마해야 했었고 언제나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잠시의 멈춤이 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알코올을 충당할 합리적인 구실을 만들고 술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생각은하지 않았다. 술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생각은 무너져 버리고 마는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을 하며 살아왔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알코올 중독자는 아녔었다. 술자리가 많지 않지만 폭음을 했기 때문에 위가 멀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술이 센 편이 아니기 때문에 강자들과 같이 대적을 하다 보면 늘 나는 힘든 아침을 맞이 해야 했었다. 그렇게 나의 위장, 간은 혹사를 당하고 방치되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매일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십이지장 궤양이 스스로 치료되는 기이한 일도 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내가 매년 받는 검진 결과서에는 주로 이런 것들이 적혀 있었다. 십이지장 궤양, 미란성 위염, 만성 위염 등등.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엔가 위경련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가진 각종 위의 염증들에 스트레스를 추가해 준 덕분에 예상되어 있는 시나리오였을 것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올해는 기쁜 소식하나가 있었다. 건강검진 결과에는 위에 가득하던 염증들도 없었고, 간에 이상이 있지도 않았다. 늘 술을 달고 살았는데 이해할 수 없지만 결과가 그러니 뭔가 의심스럽기도 하긴 했지만 그냥 믿고 살기로 했다. 나는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20대 초반 나는 1년 동안 술을 끊었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의 일이다. 같이 일하는 과장님을 따라다니며 술을 마셨었는데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의 간은 해독력이 떨어지더니 금방 고장이 나고 말았다. 늘 만취 상태였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과장님은 나보다 더 만취상태였고 난 늘 그런 그분을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늘 정신은 멀쩡했다. 그래서 술이 세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해 건강검진에서 간이 좋지 않다는 소견을 받아 들고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20대 초반인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그날 이후로 술을 끊었고 술자리는 참석은 하지만 술을 끊었다고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왜 술을 끊었는지 묻는 사람들, 다 그런 거니 그냥 마시라는 사람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말 1년을 술을 마시지 않고 살았다. 1년 후 건강검진의 결과 내 간은 생생한 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이제부터 조심하면 된다고 조금씩만 마시면 되고 적당히 마시면 된다고 그렇게 나는 술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1년이나 끊었던 독한 사람이니까.
얼마간은 내가 생각한 대로 컨트롤을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술을 끊었던 1년도 끊은 것이 아니라 잠시 참았을 뿐 참고 견뎠을 뿐, 다시 술을 마실 구실을 만들기 위한 잠시 멈춤이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일이 간혹 생기곤 했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때는 알코올 중독은 아녔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술로 인한 창피한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스마트폰 액정은 도대체 얼마나 깨 먹었는지 수리비도 참 많이 도 들어갔다. 그래도 그건 양반이다. 19년쯤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집은 찾아 들어와 잠을 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스마트폰도 지갑도 가방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스마트폰은 추적을 해 봤지만 분당 어느 물류센터 근처에서 신호가 사라졌다. 연락도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분실신고를 하고 리퍼폰을 받았지만 지갑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모든 카드도 정지시켜야 했다.
며칠이 지나고 지하 주차장의 자전거 보관소를 지나는데 낯익은 가방이 자전거에 걸려 있었다.
"어, 이 가방이 왜 여기에... "
나는 가방을 들고 안을 뒤졌다. 지갑도 다른 물건도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사건이 가장 큰 사건이었고 난 술 마시는 것을 다시 통제해야 할 것 다고 생각하고 한동안 술을 멀리했다. 멀리 했을 뿐 끊은 것은 아니다.
그 후로도 이런 일은 지난날의 악몽은 잊은 채 계속 반복되었다. 큰 사고를 치지 않더라도 술자리에서 하지 않고 싶었던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어 후회를 하는 날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코로나19 이후인 것 같다.
나에게 혼 술 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이지만 혼술 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아지게 되었다. 혼자 술을 마시면 소주 한병이나 소맥으로 소주, 맥주 한 병을 마시는 정도였다. 그 정도면 다음날 크게 무리가 되지 않았고 일하는데도 지장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점점 소맥을 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조금씩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플라스틱 용기의 작은 병 6병과 맥주 6캔짜리 한 팩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아졌다. 일주일치 분량이다. 그래도 하루는 쉬어 주어야 한다는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얼마 전에 썼던 글 중에도 소주, 맥주를 텀블러에 섞어 영화를 보며 빨대로 야금야금 먹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버릇이 그때 즈음에 생겨났다.
이쯤 하면 나는 누가 봐도 알코올 중독자이며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다. 환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것도 나는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질병을 만드는 원흉 일 것이다. 병중에서도 불치병이다. 술을 완전히 끊지 못한다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듯 내 수명을 단축하는 일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