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이 있어 내가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시간
우리는 3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벌이고 나서야 잠시나마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그 만남의 자리의 주인공들은 엄밀하게 따지면 내가 밥벌이를 하고 있는 회사의 선배도 동료도 후배도 아닌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에게 오늘의 이 주인공들은 내 삶에 있어 내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 준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이 오늘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든 사람이 나 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들이 나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는 늘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었다.
벌써 10년도 넘은 그때 우리 부서는 심각한 인력 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우리 회사의 후배들을 뽑아서 같이 성장할 수 있기만을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는 늘 원가에 민감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방향으로 일을 만들어간다. 우리와 협력 관계를 갖는 회사들이 많지만 그중 자회사의 인력들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고 함께 해주는 매우 고마운 분들이다.
함께 한 그날 주인공들의 대부분은 사실 법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나는 자회사를 직접 방문해서 그분들이 나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분들인가를 서류만으로 선발했다. 얼굴 한번 못 보고 사람을 뽑는 일은 처음이라 난감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 중 누구도 함께 한 시간들에 후회가 되거나 후회가 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정말 나에게는 천군 마마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 주었고 나를 따라 줬다.
미안한 것은 그런 그들을 두고 그들이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 내가 먼저 떠나 버렸다는 것이고, 오늘과 같은 이런 술자리도 마련해 주지 못하고 나는 도망치듯이 그곳을 떠나야 했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들이기에 다행히도 나에게 아무런 원망도 갖지는 않았다. 다행이면서도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떠나고 불어 닥친 폭풍 후들을 그래도 잘 견디어내고 이겨 내줘서 더 고마웠고 미안했다. 조금 더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어야 했는데 회사일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보 잘 것 없는 회사원이라는 핑계를 대어 본다.
그날 우리는 씁쓸한 술맛을 함께 공유한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맛을 함께 공유하며 그동안 멀어졌었던 시공간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었다. 지난 시절 함께 동고동락했었던 추억들을 술잔에 가득 채우고 비우며 맞아 그때 그랬었지. 그때가 참 좋았었는데,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추억 거리로 테이블 위에 차려진 안주보다 더 맛있게 지난 여백의 시간들을 채워 주었고, 언제나 과거만 못한 것 같은 현실의 불만들은 언제 합의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의 공감 거리가 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의 색깔로 그려 나가며 부족한 안주를 대신해 주었다.
어느덧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들,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조금씩 조금씩 형형 색색을 공간을 채워가고 허한 공간의 여백은 그 자리에 반쯤 주인공인 알코올병이 초록의 수채화 물감이 되어 빈 공간이 채워 주었다. 그리고 적당하게 붓칠이 된 붉은색들이 화룡점정이 되어 준다. 그 초록색이 어느 정도 물들어 갈 무렵 초록색의 너무 많아져 그림이 망쳐지기 전에 붓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