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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Oct 23. 2022

한 폭의 수채화가 되다.

미세먼지와 수증기는 핑크 빛 필터가 되어 주었다.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내 눈으로 확인을 하지 못했었지만 태양은 늘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씩 올려다본 하늘은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선물을 가져다주곤 한다.


건물, 산과 산의 능선 뒤로, 구름이 짖게 깔린 그 위로, 태양은 마법의 가루와 소량의 수분을 적정히 섞어 어제와는 또 다른 빛으로 그려내고 있다. 빛의 산란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색깔 빛은 마치 마법과 같다.


오늘의 태양은 핑크 빛이다.

평소보다 더 뿌연 미세먼지는 붉은 태양 빛을 핑크 빛으로 만드는 필터가 되어 주었고, 하늘 가득 차 있는 구름의 수분은 너무 강열한 핑크 빛에 한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 보기 좋은 색감으로 농도를 낮췄다. 그리고 주변 풍경들과 어우러지는 색상이 되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불과 몇 분 후 칠흑 같은 어둠이 삼켜 버릴 것이다. 그럴지라도 내 기억 속에 자라 잡은 이 풍경까지 집어 삼길 수 없다. 내 스마트 폰에 저장된 이 광경을 집어삼킬 수도 없다.


이런 순간들은 내 기억 속에 스마트 폰 속에 차곡차곡 저장이 되고 있지만 언젠가 그 풍경들은 사라지고 다른 풍경들이 자릴 잡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 반복은 저장된 기억보다 더 좋은 풍경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저녁 하늘 저 끝에 펼쳐진 풍경이 내 기억 속에 새겨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처럼 저장해 둔 기억을 꺼내어 펼쳐 놓는다.

이 기억은 온전히 내 망막을 통해 나의 뇌에 기록된 유일한 기억이지만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스마트폰 속의 사진을 꺼내고 머릿속에 기록한 풍경의 기억을 꺼내어 펼쳐 놓는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페이지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는 이미지와 텍스트에 불과할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에 찾아오는 이런 풍경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집을 나선다. 아름다운 저녁노을 풍경을 담기 위해 거리가 멀고 가는 길이 엄청 막혀 힘들 것을 알면서도 달려간다. 지금과 같은 가을엔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단풍 색을 담기 위해 산으로 향한다.


그렇게 활동적이지 못한 나에게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을 감히 너무 뻔뻔하게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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