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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Oct 22. 2022

오늘도 애쓰는 당신에게

파이팅!!

금요일 새벽 서울, 6시 17분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이 꽉 차고 단단하고 곧게 자라면서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벼와 같이 그날 새벽의 가을도 여물어 가고 있었다.


한 결 차가워진 공기에 사람들은 몸은 움츠러들었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가을빛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직 부족한 시간이긴 하지만 점점 더 세상이 밝아지고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의 빛은 짙은 하늘색을 점점 더 밝은 하늘빛으로 물들이며 아침을 열고 있었다.


환승 정류장에 선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도화지 위에는 아직 가을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나뭇잎들이 아직은 당당하지만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연두 빛 물감을 기력을 다해 짜내어 물들이고 있었다.


나뭇잎 끝자락의 옆에는 1.255초 전에 38만 4400km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초승달의 빛이 파란색 도화지의 구멍을 뚫고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잠시 올려다본 서울 하늘, 거리의 사람들을 쌩하게 스치고 지나는 바람의 온도는 체온을 더 떨어뜨릴 만큼 차가워졌고, 그 차가움에 옷깃을 저미게 한다.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버스가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염없이 고개를 돌리고 되돌리고 돌리고 되돌리고를 반복한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서서 잠시 멈춰진 순간에 바라다본 하늘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잠시 싸늘함 마녀를 잊게 해 준다. 잠시라도 고단함을 잊게 해 줄 거리의 미술관이 되어 준다.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만큼,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렸다. 그만큼 요즘 너무도 정신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담스러울 만큼 늘어난 일들, 처음이라 걱정거리가 많은 일들 속에서 개인적으로는 술과의 전쟁, 지금 내 삶에 들어온 이 모든 것들은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두 내가 안고 가야 할 업보라 피할 것이 아니라 부딪히며 하나하나 풀어 가야 한다고 아직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견디어 내고 있다.


새벽 거리의 미술관에서 바라본 한 점의 그림에 대한 기억 따위는 잊어버린 채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뽀송뽀송하게 출근할 때와는 다르게 헝클어진 머리와 얼굴에는 좋은 영양 크림이라도 바른 듯한 반짝임은 자가발전으로 뿜어 낸 기름기 일뿐, 보이지 않는 일의 무게에 짓눌려 축 늘어진 나에게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마법을 걸어 본다.


내가 매일 출정하는 전쟁터의 자동화 업무처럼, 내 개인의 삶에도 나의 게으름과 부족함을 채워주는 자동화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내 집의 반경을 벗어났을 때 스마트폰이 가진 입을 막아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막았던 입을 풀어주어 자유를 찾아 주는 그런 자동화다.


회의 시간, 버스, 지하철과 같이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 공간에서 난대 없이 울어대지 않도록 하며, 적막한 사무실에서 잘못 터치해서 울려 퍼지는 음악이나 유튜브 영상의 소리들로 정적을 깨는 일들을 하지 않게 해 준다.


집이라는 공간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집에서 만큼은 스마트폰도 답답한 하루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뱃노래, 뱃노래 외로움을 던지는 노래, 몇 고개, 몇 고개...."


이 가사말은 악뮤도 불렀던 "뱃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전화 벨소리로 등록이 되어 있다.


저녁 8시 27분,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앉아서 고단 했던 하루, 일주일을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여행을 하며 잊고 있었다. 그 속에 얼굴을 파묻고 호기심 거리들의 이끌림에 저항 없이 끌려 다녔고 그 순간만큼은 근심 걱정 없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그 평화로움을 깨버린 것은 내가 보고 있던 화면을 덮어 버리고, 튀어 올라온 전화 앱 화면의 아무개와 전화 벨소리가 망중한을 깨트려 버렸다.


내가 좋아해서 설정해 둔 벨소리임에도 반갑지가 않았다. 사실 화면에 뜬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몰려왔다.


부서장이었다.

못 본척하고 부재중 전화로 뜬 메시지를 한참 후에나 발견한 것처럼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세대를 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 냉정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화면 아래 수신 버튼을 오른쪽으로 드래그를 했다.


한 껏 격양되고 고조된 목소리 톤이 내 귓가를 울려 퍼졌다.

우리가 이 시간에 수화기를 붙잡고 편하게 그렇게 격양된 소리로 통화를 할 사이는 아닌데, 적어도 나는 이 시간, 아니 정확하게는 업무 시간 이후로 별로 반기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미 수신 버튼을 눌려져 버린 후였다.


이 분도 세상을 참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사실 그런 점을 이해하는 나로서는 딱히 뭐라고 딴지를 걸거나 불만의 소리를 꺼내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간에 전화하는 것은....


회사에서도 그분이 쏟아내는 질문들 때문에 일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어 더욱더 지친 하루를 보내다 왔는데 이 시간에 전화는 아직 업무시간이 끝나지 않았었나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열심히 세상을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주는 수밖에... 나는 이런 상황에 매몰차게 뿌리리는 그런 성격도 아니라 문제라고 하면 문제일 수도 있다.


통화는 50초 정도 이어졌다.

낮에 나에게 열심히 물어보던 내용과 다른 내용들을 엮어서 일을 하나 만들어 낸 것 갔아다.


우리가 하는 업무 자동화 일 중에서 업무 프로세스의 중간, 중간 끊어져 프로세스가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을 시스템적으로 연결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데,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최적의 아이디어를 도출해 낸 것 마냥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찌 냉정 하게 대할 수 있겠는가?


자신은 지금 이 시간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 거리를 만들었는데 너는 뭐하냐 라는 느낌이 좀 있기는 했지만 늘 느끼는 거라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본인은 뭔가 정말 큰 것을 알아낸 것처럼 유레카를 외치며 나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같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을 전달하려고 굳이 이 시간에 전화를 걸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내가 월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주일을 마감하는 시간에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알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빨리 끊기를 바라고 있었다. 본인도 미안했는지 통화는 길지 않게 끝났다.


하지만 그 여운은 길게 느러지고 있었다. 왜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일을 왜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가 벌려 놓은 일 뒤치다꺼리하기도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소중한 시간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생각들로 퇴근을 했는데 퇴근 시간이 밤 10시가 되어 버린 것 같았고, 이런 찜찜함을 가지고 주말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참, 애쓰시는구나.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부서원들을 위한 그분의 희생이구나"라고 생각으로 조금 전환해 봤다.


요즘 부서원들과 트러블이 많은 부서장이 오죽하면 나에게 전화를 했겠는가? 그도 부서 내, 외부로부터의 압박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얼마나 힘들까.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고된 하루에 마침표를 찍었다.


새벽 거리의 미술관에서 하루를 아름답게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을 앗아가 버린 순간, 눈앞에 펼쳐졌던 풍경화에 하얀색 물감을 들이부어 백지로 만들어 버린 거 같은 순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하얀 도화지 위에 다시 그리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쩌면 더 좋은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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