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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Oct 26. 2022

주재원의 귀임과 만찬

조금의 차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흘러 버렸다. 마지막 회의를 하고 나니 퇴근 시간을 지나버렸다.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쯤 부서원들이 갑자기 퇴근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다들 다른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들인데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구나 생각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당도 떨어져 사무실 한편 비치된 과자 부스러기를 집어 들어 먹고 있었다.

몰려 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내 자리로 찾아왔다.


"저녁 먹을래요?"


"음, 오늘은 시간도 늦었는데 먹고 갈까요?"


"가시죠"


나가면서 생각해 보니 낮에 영국에 나갔던 주재원이 왔었는데 회의를 쫓아다니느라 인사도 못 했다. 메일로 메신저로만 주고받으며 일을 했는데 복귀하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저녁식사 자리는 그냥 모이는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주재원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나타났다. 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같이 식사 장소로 출발했다. 주재원을 위한 식사 자리였다.


내가 이제 이 부서에서 조금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예전 같으면 이렇게 불러주지도 않았을 텐데, 고마웠다. 식사 장소에는 벌써 두 분이 와 계셨다. 이 자리에 못 왔으면 왕따나 다름없었을 거다.


사실 식사 자리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그 순간순간 마음을 다 잡느라 최선을 다했다. 주재원이 왔으니 그곳에서의 생활들에 대한 이야기 들로 시작을 하며, 유럽 축구 이야기가 나오고,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르익어가는데 모두들 해외에 많이 다니셨는지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나는 국내에서의 추억조차 그리 많지 않은데 해외 곳곳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쏟아질 때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란 주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어떻게 요리를 할지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었다. 이렇다 할 만한 이야기가 나에겐 없었다. 아직 끊지 못한 술, 무료함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술잔을 홀짝이며 세상 무용담을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어디 가서 듣겠는가? 여행하기도 쉽지 않은데 귀 호강이라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 자리에서 9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의 다양한 이야기들로 점점 비워지고 있는 음식의 빈자리를 채워 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사람들은 관계라는 이름이 되어 연결이 되어 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에는 멘티의 멘토, 그 멘토의 멘토까지 족보로 따지면 3대에 걸치는 인연을 같은 분들도 있었다. 어쩌면 한때는 지금 전 회사의 동료였던 사람도 있었다. 늘 가깝게 지내지만 서로의 개인 사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 현세대 찾아보기 힘든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나는 이 주제에도 예외였다. 왜냐하면 나는 태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들과 나는 신분의 높이가 다른 출발 점에서 시작했다. 그것이 핸디캡이 되지 않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공감을 하기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지금은 그 갭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 세월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기에 에게 흔들림이란 없다. 이 정도는 고민하지 않을 만큼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장점은 하루아침에 바꾸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어떤 시련도, 고난도 나는 견디어 오고 잘 살아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장점은 모두 내 것 될 수 없다. 내가 가진 장점은 다른 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마다 가진 개성, 다양성들을 흡수하고 싶은 만큼 흡수하면 된다. 언제가 써먹을 수 있는 자산이 되어 중 것이다. 그중 몸에 맞지 않는 것은 내다 버리고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의 것을 탐내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면서 더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들과 나는 백지 한 장의 차이밖에 없다. 어쩌면 그 보다 더 얇은 차이 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2시간의 긴 여행을 해야 하기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오늘은 어제의 시간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고 지나간 과거일 뿐이었다.


오늘을,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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