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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Oct 18. 2022

어느 일요일 오후의 풍경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살만한 세상으로 생각되었다.

일요일 점심을 먹고 나니 주말 동안 한 번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한 탓인지 조금은 답답하기도 며칠 동안 걷기를 하지 않은 탓에 그동안의 나의 게으름에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나가는 거 공원에 앉아 책이라도 좀 읽으며 여유를 부려보고 싶어 져 가방에 책 한 권 과 스마트폰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날씨는 가을의 문턱에 와 있음을 알리는 듯 적당히 쌀쌀했다.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씨였지만 인공지능 스피커가 알려주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농도와는 다르게 근래 볼 수 없을 만큼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경관이 흐릿했다.


공원을 몇 바퀴를 도는 동안 운동장 축구 경기장에서 들려온 함성은 이어폰을 뚫고 들어와 고막까지 전달되었다. 어느 편인지 몰라도 공원이 들썩일 만큼 큰 함성을 질러댔다. 몇 바퀴 돌며 한눈을 팔며 보니 그냥 동네 축구는 아닌 듯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프로는 아니어도 꽤나 팀워크와 개인가 갖춰진 팀 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주심과 부심이 있다. 지역 리그의 결승전쯤 되어 보였다. 흘끔흘끔 곁눈질로 훔쳐보다 흥미진진한 축구 경기에 빠질 뻔했지만 가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몸이 달아오를 때쯤 공원 구석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쳤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김상현 작가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이자, 카페 사장으로 멀티 플레이어로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분의 작품이다.


에세이들이 다 비슷비슷한데 뭔가 좀 달랐다. 뭐랄까 나도 생각했던 것들이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했던 내용들이 있었지만 그 수준이 달랐다. 작가의 글쓰기 버릇 같은 것을 발견해 가며 읽는 책의 재미는 배가 되었다. 나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 수준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쌀쌀해진 기온에 더 앉아 있다가는 감기에라도 걸릴 것 같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옆에 있는 공원도 들러 조금 더 책을 읽다 들어가려는 마음으로 공원에 들어섰지만 앉아서 책을 읽을 만한 자리가 보이지 않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공원을 돌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 아빠로 보이는 이가 화단 뒤로 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꼬마 여자아이가 의자 뒤로 숨고 있었다. 아, 숨바꼭질을 하고 있구나. 오빠로 보이는 아이가 술래였다. 아빠가 숨은 곳은 내가 봐도 너무 어설펐다. 바로 걸릴 것 같았는데 역시나 생각대로 였다. 주위에서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한 시간 넘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걷고 책을 읽으며 나름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외로웠던 것 같다. 그 들이 살짝 부러워졌다. 그들이 나보다 백배는 행복해 보였다. 그런 나에게 웃음을 준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저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저 시절에 어떤 마음이었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나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와 놀아 주려고 일찍 퇴근을 했었다는 집사람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와 놀아 주던 시간들이 엄청 행복했었을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끌려 나와 어쩔 수 없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 있지만 후자이기를 바랐다. 그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시간들은 아이에게 삶을 살아 가는데 있어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공원을 돌아 나오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직된 나의 얼굴에 작은 웃음거리가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조금은 짠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졌다. 나이 들어 주책인가? 가을을 타나?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아직 그런 감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나의 그런 감성을 끄집어내어 주어 고마웠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다른 친구들과 이별을 하고 바닥을 뒹구는 녀석들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리고 친구들에게 어서 내려오라고,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말하며 재회를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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