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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Nov 02. 2022

어느 날 갑자기 핫 플레이스가 된 시골 마을의 시름

나의 고향, 드르니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산 174번지. 이곳은 요즘 핫한 한탄강 주상절리 길 드르니 매표소의 주소다.


 드르니 매표소, 동네 이름이 드르니이다. 왜 드르니?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왕건과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쫓겨 그 동네를 들렀다는 말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들리다'라는 뜻이고, 한탄강 또한 쫓기던 궁예가 한탄을 하고 갔던 강에서 유래된다고 합니다.  


  매표소로부터 약 600m 거리에 시골집이 위치해 있다. 그 집은 내가 19살 때까지 살던 집이고 지금은 어머니 혼자 살고 계신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가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는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고 더 추워지기 전에 김장을 해야겠다고 말하시고 바로 배추를 절이셨다.


  토요일 11시쯤 서울에서 일을 보고 출발을 했는데 평소 같으면 1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가 2시간 가까이 소요가 되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계절에 단풍놀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동생도 시골집에 오기로 했는데 연락을 해 보니 나보다 조금 앞서 가고 있었다.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7시 30분쯤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철원행 버스표가 매진이 되었다고 한다. 동생도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탔다는데 나와 거리 차이가 얼마 마지않을 만큼 길도 많이 막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생이 내리는 신철원 터미널에서 함께 하차를 했다고 했다.


  점심시간을 놓쳐 밖에서 사 먹고 가기로 했다. 오래된 그저 평범한 식당이었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이 후로 유명해져서 줄을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콩나물국밥 집. 먼저 도착한 동생이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나도 도착을 했지만 30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시까지 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조금 더 늦었으면 여기서 식사를 못할 뻔했다. 1시 반 넘어서 들어온 손님들은 영업 마감이 되었다는 소리에 아쉬움을 돌리며 들어왔던 문으로 되돌아 나가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어머니가 주문한 김장 재료들을 사서 시골집으로 향했다. 언제나 평화롭고 조용하던 동네가 너무도 많은 차량이 몰리고 좁은 도로가에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시골 농로와 같은 도로는 아수라 장이 되어 버렸다.

  집이 코 앞인데 한참을 줄을 서 있다가 간신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탄강 주상절리 길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지난여름에도 많았다고 하는데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기 때문에 너무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김장을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10시가 지나자 초 절정에 이르렀다. 집 앞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주차할 공간이 없자 수확을 끝낸 논이 이제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이 되어 주었다.


  김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가는데 김치통을 몇 개 가져가지 않아 담을 곳이 없어 시내에 김장용 봉투를 사러 나섰는데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긴 차량 행렬에 끼어 멈춰 서야 했다. 마트에 5분이면 다녀오는데 나가는데만 20분을 걸렸고, 다시 돌아오는 길도 그랬다. 


  "읍내 나가려면 동온동(옆동네 이름)으로 돌아가야 해"


  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조용하고 한가롭기만 하던 시골 마을에 몰려든 관광객들 때문에 주민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 매일 다니던 도로로 다니지 못하고 한참을 돌아 우회길로 시장에 가야 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어르신들은 택시를 잡을 수 없어서 지팡이를 들고, 보행기를 밀며 먼 길을 걸어서 다닌다고 한다. 쌩쌩 달리는 차들과 많아진 차들 때문에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도 하신다.

 

  겨우 몇 시간 이런 경험을 한 나도 적응이 되지 않는데 대부분 많은 어르신들만 사는 동네에서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질서를 잘 지켜주시지만 간혹 집 으로 가는 길목에 차를 세워두는 바람에 집을 나가거나, 집을 나섰다가 돌아와 주차하는데 애를 먹기도 하고, 아무런 동의도 없이 주차를 하고 사라져 버린 관광객들 때문에 실랑이가 붙기도 한다고 한다.

  

  한탄강 주상절리 길, 드리니 매표소에서 순담 계속 매표소까지 이르는 한탄강은 어린 시절 여름에는 수영장이 되어 주었고, 낚시터가 되었주었으며 겨울에는 썰매 장이 되어 주었었다. 나에겐 추억이 많은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주상절리 길은 우리의 놀이터였었다. 지금은 잘 가진 않지만 우리들만의 아지트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제 예전처럼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어린 시절처럼 그곳에서 놀 수도 없기는 하다.


  한탄강 주상절리는 유니스코가 지정하는 지질공원으로 선정된 후 사람들이 관광을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상절리 길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나는 이 길에 관심이 없다. 늘 보아오던 풍경들이라 나에게는 새롭게 경험하고 싶은 풍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구경을 와 보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와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음은 장담한다. 어린 시절 그곳에서 놀면서 질려 본 적이 없었고 언제난 우리의 즐거운 놀이터였었다.


  주민들을 위해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사항은 시골 동네라 주차공간이 부족하지만 갓길도 아닌 인도로 차를 올려 주차를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차량으로 10분 거리) 철원 종합운동장에 주차장에 주차를 하시고 셔틀을 이용하거나 철원군청에서 임시로 마련하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한탄강 주상절리 길을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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