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내리는 비가 오늘도 여전히 추적추적 내립니다. 오랜만에 카페 안에서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망중한에 빠져 봅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한 해의 반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마음먹은 대로, 하고 싶었던 일들이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고 있기에 남은 반기가 더 초조해집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떠나곤 합니다.
살면서 이렇게 일이 풀리지 않던 적이 없었기에 더 답답하기도 합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죠. 오늘처럼 구름 가득하고 비가 내리는 날이 있기도 하고, 지난 주말처럼 화창하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도 있듯이 조급해한다고 바라던 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다 창밖을 보니 이른 아침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카페 안으로 드라이브 쓰루로 들어오고 나기를 반복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비 오는 날 저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카페에 오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이내 궁금증은 사라 집니다.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사람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묻어나고, 친구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계신 어르신들도... 여려가지 사연을 가지고 이 카페를 찾습니다.
문득 공부를 하고 있는 한 학생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도 되는가란 생각이 스쳐 지납니다. 나도 공부를 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은데 이런 여유를 부리는 것이 사치는 아닐까. 재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쯤 창밖을 다시 내다봅니다.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고 더 세차게 내려오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비는 금방 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이 축축함이라는 짙은 색깔로 물들여져 버려 언제 다시 뽀송뽀송한 색깔로 물들여 질지 모르겠습니다. 햇살이 따가운 날이 계속되면 비가 좀 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비가 이렇게 계속 내리고 있으면 이제 그만 멈춰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기주의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릴 수밖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아내와 가끔 시간이 될 때 들리는 이 카페에서 우리는 가장 구석진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아무도 지나 다지지 않으며 타인으로부터 접속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함께 이런 오붓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에 구석 자리이지만 타인으로부터의 방해를 받지 않는 최적의 자리를 찾아 앉으려 합니다.
아마도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 모두 각자의 소중한 시간에 타인이 개입되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 중 특히 공부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소리에서 차단을 위해 귀에 이어폰 끼거나 헤드폰을 씁니다. 이어폰, 헤드폰은 우리가 찾는 구석진 자리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앞사람과의 대면을 피하기 위해 노트북을 앞에 벽처럼 놓아두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차단막이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주위 환경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이 목적하는 것에만 집중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의 구석진 자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그 집중 덕분에 그 자리와 멀어지려 하거나 귀를 틀어막습니다.
카페 내에서 너무 과하지 않다면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귀를 틀어막는 사람들은 그런 환경임을 알면서도 그곳에 와서 공부를 하고 어쩌면 그런 환경이 집중해서 공부하기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 되어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석진 자리를 찾는 사람들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그 카페에서 일어나는 환경의 변화에 충분히 적응할 각오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입니다.
얼마간의 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앉아 있다가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에서 그 사람들의 온기와 함께 공허함이 남아 있습니다. 여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여운은 다른 사람이 와서 그 빈자리를 채울 때쯤 사라집니다.
카페에 혼자서 오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언젠가 나도 공부를 하러 와서 귀를 틀어 먹고 몇 시간을 공부를 하다 보니 왜 사람들이 카페로 와서 공부를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부하러 온 거야, 놀러 온 거야" 이런 소리를 내게 들리지 않게 하겠지만 그런 기운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전달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부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경우 카페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이 되지 못하는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들처럼 카페 안을 탈출합니다. 어쩌면 누군가 내가 카페에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랬던것처럼.
커피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것을 보니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망중한을 즐기던 나는 남겨질 나의 여운에게 망중한을 양보한 채 자리를 떠납니다. 누군가 그 자리를 찾기 전까지 내 여운은 그 자리에 머물겠지만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닐 겁니다.
카페 곳곳에 있는 자리들은 사람들의 목적에 맞는 역할과 여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