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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1년에 한 번뿐인 순간

by 노연석

그곳엔 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물론 나도 그들과 같은 목적으로 그곳에 섰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째 그 자리를 찾아야 했고, 나와 같이 처음으로 그곳을 찾은 사람들도 많다. 모두들 자신의 꿈을 찾아 그곳에 섰다.


그 꿈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겐 그저 정복해야 할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왜 그곳에 와 있는지 모른 채 서 있다.


그래서 그곳에 선 사람들의 눈빛은 각양각색이다. 오랜 시간 이 순간을 위해 공부하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을 한다. 그중 많은 사람들은 간절함 때문에 좌절을 딛고 일어서 다시 도전하게 만든다. 그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된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섰는지 사실 분명하지 않다. 간절함은 있지만 어떤 누군가만큼 간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나는 그저 내 삶의 도피처쯤으로 그곳에 서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현실을 어떤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손가락질을 당할지도 모른다. 너무도 열심히 그곳에 선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들만큼 간절한지 바라봤다.


지난 몇 개월간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모든 걸 접어 두고 노력을 했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당신은 왜 거기 서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내 삶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는 꿈을 찾아 그곳에 서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진심을 다해 그곳에 서고 그곳에서의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고배를 마시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더운 날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도달하지 못해 축배를 들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이 순간의 상황들이 인생이라는 굴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삶의 어떤 순간보다 더 긴장하게 되고 그로 인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좌절을 맛보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고 어느 순간 그 굴레를 벗어나게 된다. 그것을 한 번에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번에 걸쳐 이루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날의 순간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들 그 순간을 모면했다고 해서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상황들은 그 여정의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결말을 알 수 없기에 한 순간도 긴장을 누출 수 없다.


나는 그 순간에 긴장은 했지만 떨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떨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떨림을 이겨 낸 것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끝없이 노력했고 좌절하지 않고 순간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계획했던 일들이 계획대로 들어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계획이 틀어졌다고 손들어 버린다면 어떤 삶도 살아 낼 수 없을 것이다.


내 계획들이 들어맞지 않고 어긋나고 있었어도 계속 계획한 대로 움직였다. 그러다 보면 그중 하나는 계획된 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집중하다 보면 계획이 계획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계획대로 흘러가게 만들었고 실수가 있더라고 그를 만회할 수 있는 행운도 가져가 준다. 내게 그런 행운은 있었다.


내가 축배를 들 수 있었던 건 역시 평정심이다. 내 상황이 불리하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지난 순간들을 잊고 내 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고 계획대로 이루어지도록 실천하는 것이었다. 절망의 순간들에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배를 탔다면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모든 것에 감사했다. 함께 했지만 축배를 들지 못했던 사람들, 함께 하면서 지켜봐 줬던 사람들, 같은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각자의 순간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그들이 그곳에서 함께 해 줘서 감사했다.


그리고 어떤 결과를 얻었든 간에 그 순간에 도전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좇아 그곳에 선 사람들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속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나도 1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축배는 시험을 통과해서가 아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고 실천을 통해 넘어야 할 관문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술시험에는 그렇지 못했고 내 마음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을 기재하는 것은 쓸데없는 욕심이다. 설사 합격을 하더라도 어딘가 찝찝함이 남을 것이다.


만족하는 것은 이 도전이 도전할만했고 다음에는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만큼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 생활스포츠지도사 실기 현장에서의 생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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