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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을 욕하지만 나라고 다르지 않다.

그 사람이 나 일 수도 있다.

by 노연석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가끔 만나게 된다.


과연 이 사람이 같은 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가?

여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온 것인가?


어쩌면 상대방에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여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온 것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각자가 가진 사고의 범위와 살아온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믿어 본다.


같은 업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일을 하는 방법이나 가는 길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수십 번도 더 넘게 이야기하고 설명을 해 줘도 이해를 하지 못할 때는 물어보고 싶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그런 사람을 잘 모르는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람은 나처럼 저 밑바닥부터 다 해보고 올라온 것이 아니라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 모를 수도 있지. 그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교묘하게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이 된다.

한편으로는 그런 삶을 사느라 얼마나 피곤했을까란 생각에 짠해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나와는 평행선을 달리는 한 분이 다른 부서로 떠났다.

순간 정말 잘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지내느라 불편했을까?

한때는 떠난다고 할 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같이 같으면 하는 생각도 하긴 했었다.

이번엔 그렇게 떠난 것을 매우 환영해 줘야 했고 같이 계속하자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같이 있을 때 좀 더 잘해 드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남는다.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런 분들은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지?

반복되는 상황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본인도 불편할 텐데 왜 그럴까?

그 일을 배우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을 하나 더 안고 간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내 시선으로는 그 일을 배우지 않으면 매번 일을 힘들게 살아야 함이 분명한데 혹시 그것을 즐기는 건가?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힘든 삶을 지속하고 반복하고 싶지 않으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너무 주관적인 생각인가? 그게 맞다고 하더라도, 내 의견이 정답이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나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도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다.

짬밥을 많이 먹었다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것은 착각이다.

겉모습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적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신이 들기 전까지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방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평가도 비방도 해서는 안 된다.

첫인상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도 없고, 첫인상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 없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먼저 다가서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 때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

나의 잘못된 선입견은 소통 없이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며 풀지 못한 숙제는 점점 더 고착되어 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잘 알면서 생각과 행동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공존을 꿈꾼다.

언행일치와 같이 생각도 행동과 일치를 해야 하는데 끝없는 평생선을 달린다.

그러면서 오늘은 생각과 행동이 순간이라도 일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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