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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막장 드라마가 흔한 거죠?

30년 직장 생활 중 최대의 막장

by 노연석

한 7개월쯤 되었을까요?

어느 날 부서에 타 부서에서 갑자기 몇 분이 전배를 왔습니다.


그때 한창 새로운 분야 개척을 위해 여러 사람들과 맨땅에 헤딩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분들은 하늘이 준 튼튼한 동아줄과도 같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나 그렇잖아요.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텃세 같은 거. 저도 그렇지 않았다고는 못하겠지만 약간은 그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업무리더를 하고 있기에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분들을 우리 배에 올라타게 하고 함께 노를 저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지정하고 알려줘야 했지만 그분들은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제가 알려 주기도 전에 알아서 잘하더군요. 그러니 튼튼한 동아줄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사람은 겪어봐야 알기도 하지만 한눈에 알아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 알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거봐 처음에 봤던 게 맞았어"라고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자가 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예전에 개발자 채용 인터뷰를 많이 해봐서 일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능력치가 향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한배를 탄 사람들이고 노를 저어 가는데 누군가 일어나 움직인다면 배가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큰 문제없이 7개월이 흘렀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다 보니 첫인상 그런 게 맞던 틀리던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아 갑니다.


우리는 서로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을 테니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잘되는 꼴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도 이번 경험을 통해 뼈절이게 알았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아오던 막장과 다를 게 하나도 없지만 저에겐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지만 그래서 이 분야의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 꼴을 그냥 보고 그대로 두지 않는 강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손해 봐야 할 미래가치는 몇백억 도 넘겠지만, 강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튼튼한 동아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이 걸려서 넘어질 것 같은 동아줄이라 뿌리를 잘라 버립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쉽지 않은 시기에 7개월이란 세월을 함께 한 동지들이 끊긴 동아줄과 함께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이런 생이별이 있을까요.


7월 말 그들을 보내야 하는 제 맘은 그리 편치 않습니다. 7월 말이면 목표로 했던 것은 마무리를 짓지만 그것을 끝으로 모든 것이 끝나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싫지만 한낱 말 딴 직원에 불과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비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강가에 정박해 둔 배는 언제 다시 운행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분이 바뀌면 세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때는 너무 때가 늦게 되지요.


우스개 소리로 차라리 회사 울타리에서 벗어나 회사를 하나 차리는 것이 더 좋겠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우리들 중에는 그럴 용기와 그럴만한 여건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 이긴 합니다. 최고라고 자부하면서도 이 악덕 같은 회사의 그늘을 벗어나는 게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뿔뿔이 흩어진 우리의 가치는 곧 사장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분통이 터집니다.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은 함부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나도 안정적인 삶을 살다 보니 우물 안을 벗어나기 힘겨워하는 개구리가 되어 살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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