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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Jan 14. 2024

도시여 잠시 안녕

나를 돌아보는 시간

토요일 아침 6시 울려대는 알람 소리, 오늘의 알람 소리는 도시로부터 탈출을 알려오는 기상나팔이다. 그러나 휴일에도 이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며 이불을 뒤집어써 본다. 출근도 아닌데 조금 늦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진 않는다.


나의 토요일은 언제나 정해진 일정으로 돌아간다.   이런 루틴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피곤했던 한 주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기 위한 일과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유대감을 쌓는 일은 미래의 언젠가 나에게 다가온 어려움의 열쇠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내가 다른 사람들이 풀지 못하고 있는 자물쇠의 열쇠가 되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외로움을 달래는 동시에 복잡한 생각들을 날려 버리게도 하고 감정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주를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준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조금의 변화를 주어 보려 새 봄맞이 대청소를 하듯이 마음속 이곳저곳에 정리하지 않고 널브러져 있게 했던 것들을 끄집어냈다. 그것들 중에는 버려야 할 것들도 있고 다시 정리해 두고 계속 같이 가야 할 것들도 있다. 하지만 옷장 속에 입지 않는 옷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것과 같이 버려야 할 것 앞에서  머뭇 거리게 된다.


대청소를 하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올해 고3이 되는 아이도 나와 같은 같은 마음으로 도시로부터의 탈출 계약서에 동의를 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암묵적인 동의였다.


집을 비워두고 잠시 떠나는 여행이지만 그 어떤 긴 여행들보다 의미가 있고 치유가 되었다.


나는 최근 회사일들로 골머리를 썩고 있어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아내는 몇 년간 일해 온 직장이 곧 폐업을 하게 되고 고3이 되는 아이도 입시에 대한 불안감으로 편치 못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들 안에 있는 힘듦을 이겨 내려고 애쓰고 있지만 사실 모두 어딘가 기대고 싶은 마음, 그만두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포문을 연 것은 나였다.

아내에게 나의 상황 심정 그리고 감정들까지 모두 꺼내어 보여 주었을 때 아내에게서 "주말에 바람 쐬러 갈까?"라는 문장이 전달되어 왔다. 그리고 각종 이모티콘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현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어 ㅆ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거창한 여행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여행이 아닌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일상에서의 생각들도 집에 가둬둔 채 떠나는 작은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을 위한 계획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목적지만 정하고 떠나면 된다. 그런데 우연인지? 오랜 시간 같이 살아와서 인지? 아내와 나는 같은 목적지로 설정을 하고 있었다.


강화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은 코스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는 이유가 우리를 더 그곳으로 이끌었다.


아침 식사로는 좀 부담스럽지만 맛집을 찾았다.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 속에서 그 음식이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자극해 댔고, 맛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다림이라는 설렘에 초조함이 더 해졌다. 주문한 음식들을 맛을 보기 전까지 각자가 상상한 맛들로 입안 가득 군침이 흐른다. 조금 늦은 아침을 알아차린 배속에서는 공허함을 채워 달라는 신호를 보내오고…


꼬르륵, 또르륵


뱃속에서 보내오는 신호들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경험하고 다음 신호는 영영 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 가득 채우고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보며 고개를 저으며 더는 못 먹겠다는 보이지 않는 신호를 보낸다.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같은 목적지에서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같은 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동안 어제까지 나를 억누르던 생각들은 자리를 비워 줘야 했다. 그것 잠시라고 할지라도...


불러진 배는 작은 여행에 조금 더 안정감과 편안한 마음을 만들어주었고 다른 목적지로의 이동,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것에 집중하고 빠져들게 해 줄 에너지가 되어 주었다.


딸아이는 늘 답답한 공간에 갇혀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밥을 먹고 서둘러 바다로 출발을 했고 금방 도착한 바다로 쏟아지며 부서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그런데 바닷물에 부서진 햇살이 보였지만 착시였다. 바닷물은 흔적을 감춘 지 오래되었고 질퍽한 질감을 드러낸 갯벌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딸아이의 실망하는 눈 빛에 나도 조금 아쉬움을 더 해 본다.

물때를 알아보니 이 시즌에 낮에는 바닷물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만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와본 바닷가이건만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만약 계획적으로 사전에 준비를 했더라면 다른 시간대에 오거나 다른 곳으로 가거나 했었겠지만 계획 없이 내딛는 여정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그렇다고 실패는 아니다 계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바다가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였다면 계획은 필요했을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며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목표는 그렇게 절실하지도 않아 실패라고 하더라고 충격은 크지 않다. 이런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아쉬움은 남지만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다른 것으로 전환을 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늘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살아온 나에게 낯설기는 하지만 마음은 더 편했다. 계획을 짜 놓고 그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의 초조함은 목적을 잃어버리게도 해서 여행을 망치기도 하는데 이런 여행도 괜찮다. 일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중립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계획이 디테일하지 않더라도 목적과 목적지 정도는 세워져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멍 때림


아직 배도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배부름이 가져다주는 노곤함을 만족시켜 줄 장소가 필요했다. 바닷가에서 빠르게 미련을 버리고 돌아서 다음 목적지를 물색하고 출발했다.


배도 부르고 차 한잔 하며 멍 때리기 좋은 곳이 이럴 땐 제격일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검색하면 다 알아낼 수 있기에 계획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문에 들어온 카페가 멍 때림 이란 간판을 걸고 있었다. 당연히 만장일치로 결정되고 그곳으로 향했다. 산 중턱쯤 위치한 카페는 외길로 가파른 길을 올라야  했다. 도착한 카페는 카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특이한 구조물들로 이뤄져 있었다.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동안 아내와 아이가 사라졌다. 겉보기에도 특이한 이 구조물들의 탐험을 나섰던 거다. 아이 카페 곳곳을 돌아보고 나서 어디에 머무를지 결정을 했다.

이곳은 정말 멍 때리기 좋은 공간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중 우리가 선택한 곳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있는 책방이었다. 엄청 큰 공간에 책을 읽기 좋은 분위기. 아무도 없다는 것. 오롯이 우리 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 주었다. 책도 구경하고 오래된 책장 책상 의자들의 숨결도 느껴보면서  나도 그곳에 공간의 일부가 되어 본다.


책을 한 권 골라 책상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아내도 아이도. 아이는 엄마가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을 가져다주고 엄마는 그 책을 읽었다.


한참을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잘되기를 바라면서 왜 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변화하는 세상에 맞서기 위해 턱없이 부족한 내 역량은 이제 더 쓸모없는 것 들로 가득한데 새로운 것 들을 채워 넣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잘 정리되고 보기 좋은 카페를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면 더럽고 보기 싫은 곳으로 변하게 될 거었다. 아무리 멋진 정원이라고 주기적으로 풀을 뽑고 나무나 꽃들을 가꾸어 주지 않으면 풀밭이 되고 마는데 나는 왜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름답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나의 정원을 가꾸고 꾸미려 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정년에 점점 가까워지는 나이이기는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돌아보니 꿈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냥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흐름에 따라 살아오기만 했었다. 꼭 무언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살면서 내가 서고 싶어도 서 있지 못했던 영역이 그냥 동경이나 다른 사람의 자리로만 생각을 했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상황, 자리를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살았으면 이제 내가 가진 것을 베풀 줄 알고 배려하며 살아도 되는데 아직도 나 자신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평소에 주기적으로 가꾸고 보살펴야 했을 나를 방치한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일상을 벗어나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행운이었다. 이 도시 탈출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어지럽혀진 정원을 방치한 채 과거에만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작은 여행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정원에 삐죽삐죽 피어오른 풀들도 제거하고 그 시기에 맞는 꽃들도 심어 보면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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