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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

by 노연석

시골집 지붕 위로 소복이 내려앉은 눈이 눈물을 흘리며 열매를 맺는다.


똑똑똑 떨어지는 눈물은 땅 위로 부딪혀 뒹굴기를 반복하며 고드름과 맞닿을 기둥을 만들며 손 내밀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같다. 아니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랑인지도 모른다. 같이 공존하지만 서로 다른 마음과 생각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눈의 운명이고 고드름은 운명을 거스르는 매개체다. 어차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 지붕에 가득한 눈들이 밀어내고 밀어낼 테니.


허공을 날아 지붕 위로 대지로 한송이 한송이가 내려앉아 백색의 송이들이 장관을 이룬다. 시린 바람과 눈부셔 실눈을 뜨게 만드는 햇살이 가슴을 더 뜨겁게 달구고 뭉클하게 한다. 하나 둘 모여 쌓인 송이들이 햇살에 조금씩 녹아내리며 고드름이 된다. 한 방향으로 향하고 한 목소리를 내어 고드름이 된다. 못생긴 어름 덩어리가 아니라 엉퀴고 설퀴어 보기 싫은 덩어리가 아니라 기다랗고 뾰족한 우리가 알고 바라는 고드름이 된다.


고드름이 된다.


고드름은 눈송이 하나하나의 눈물로 호소로 점점 더 길어져가고 넘쳐나는 눈물은 기둥을 타고 먼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며 손짓한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어서 빨리 내려오라고 어서 빨리 그 위에서 내려오라고. 지붕 위 눈들은 질서 있게 순서를 기다리며 땅을 만날 시간을 기다린다.


하얗게 덮여 깨끗하기만 해 보였던 세상이 깨끗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드름을 타고 떨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을 보며 새삼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세상사람들이 알아가고 더럽혀진 세상을 깨끗하게 훔쳐서 고드름을 타고 내려온다. 그렇게 세상을 한송이 한송이 눈이 세상을 깨끗하게 정화시킨다.


눈들이 모여 고드름이 되고 고드름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매개가 되어 흘려 내린 눈물의 값어치만큼의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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