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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오늘도 출근을 합니다.

by 노연석

34년 차 월급쟁이, 오늘도 출근을 합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입니다.

그래도 월급쟁이의 삶도 괜찮습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가면 퇴직 후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퇴직 후에 다른 일을 할 것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가를 즐기며 살 것인지?

퇴직하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런데 다들 월급쟁이로 열심히 살아오다 보니

정작 퇴직 후 삶에 대해서 고민들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확실하게 정한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작년에 퇴직하신 분들을 가끔 만나면 아직도 놀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계획도 없었고

어설픈 계획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퇴직 시점에도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지 않다 보니

그 시점까지 먹고 놀 돈을 모아두지 않았다면 다시 일을 해야 합니다.

다른 회사로 들어가던가? 자영업을 하던가?

선택을 해야 하지만 월급쟁이로 살아온 세월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월급쟁이로 살아서 좋았던 것은 때 되면 나오는 월급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것

늘 빠듯했지만 그래도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웠다는 것

출퇴근은 고되지만 그래도 직장에 가면 고됨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가끔 동료들과 소주 한잔 하며 인생을 논할 수 있다는 것

그 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월급쟁이 삶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월급쟁이여서 다행입니다.


매달 받던 월급이 끊어질 날을 생각하니 암울하기도 합니다.

아직 조금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모아 둔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매일 출근을 하고 사람들과 무언가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성취와 좌절을 경험했던 순간들이 꽤 괜찮은 삶이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사라질 시간이 온다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결국 긴 시간을 월급쟁이로 살아올 수 있게 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같이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동료들이 있어서였습니다.

월급이 끊기는 것보다 사람들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는 생각이

자신을 더 암울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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