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프레임

한 끼

술안주

by 노연석

가끔씩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아내와 아이는 처갓집에 가고 집안은 텅 비었다.

모임이 있어 아침에 나갔다 점심식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삼세끼를 모두 챙겨 먹는 나에게 저녁식사가 문제다.


홀로 식당에 가서 먹기도 귀찮고 할 줄 아는 요리는 없어 고민하다 냉동실 문을 연다. 냉동실 안에 가득한 식재료들 중 꺼내어 든 것은 돼지고기와 손질된 낙지다. 낙지가 들어있는 봉투에는 유명 셰프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셰프가 손질을 한 낙지라는데 낙지가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생각을 하고 둘 다 해동을 한다.


재료를 꺼내며 해동을 하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제육볶음으로 결정을 했다.


제육볶음은 빨간색이니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꺼내고 그래도 야채는 좀 들어가야 하니 파와 양파를 꺼내어 썰고 다진 마늘을 추가한다. 또 뭐를 너야 할지 고민하다 냉장실에서 불고기 소스 발견하고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간을 맞추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넣고 언젠가인지 모르겠지만 요리마다 후추를 넣는 아내에게 전염이 된 것인지 나도 모르게 후추도 조금 뿌린다. 음식은 단짠인데 설탕이 빠진 것 같아 혈당이 걱정되지만 아주 조금 넣어 본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넣는다. 그러다 실수로 참기름도 넣는다. 불맛 나는 소스인 줄 알았는데 넣다 보니 색깔이 다르다. 앗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잊어버린다.


여기서 더 무엇을 넣어야 할지 생각을 멈추고 해동된 고기, 낙지와 양념들을 잘 섞으며 이 정도면 되면 될까 생각하다 좀 허여 멀 금한 것 같아 고춧가루를 더 뿌려본다. 조금 숙성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배속에서 꼬르륵꼬르륵 대고 있어 바로 프라이팬으로 향한다.


간도 안 보고 대충 넣은 재료들 도대체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프라이팬에 볶으면서 약간의 물을 추가한다. 혹시나 눌어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어느 정도 익히고 나서 프라이팬의 뚜껑을 닫고 불을 줄이고 다시 냉장고로 가서 쌈이 있는지 뒤적거리다 양상추를 발견하고 빠르게 씻어서 준비한다.


밥통에 밥은 없고 밥을 하자니 한 끼 먹을 건데 굳이라는 맘으로 햇반을 생각했지만 냉장실에 한 끼 분량으로 담아 놓은 밥이 있어 꺼내어 레인지에 돌린다.


그래도 찬은 조금 있어야 하니 냉장실에서 오이김치와 무생채를 꺼내어 놓았다. 제육볶음은 찬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완성이 되었고 다른 반찬들과 함께 식탁에 올린다.

혼자 있으니 술 한잔 생각 절로 났지만 어쩌면 요리를 시작할 때 술안주를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


양상추에 한쌈을 쌓아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데 맛있네, 왜 맛있는 거지?라는 생각은 배고픔 때문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우러진 술 한잔 때문이라고 귀결이 되었지만 꽤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먹어치우고 만다.


간도 적당하고 약간의 달달함은 설탕, 불고기 소스와 양파에서 오는 듯하다. 맵기는 적당히 넣은 고추장과 양념하면서 추가 한 고춧가루가 신의 한 수였다. 빛깔과 맵기도 적당하다. 낙지는 좀 오래 볶아 질길 것 같았는데 유명 셰프가 손질하면 뭔가 다르긴 다른가 보다. 아니면 우연인가?


이 정도면 요리 천재가 아닌가란 망상을 하며 한 끼 잘 해결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길을 걸듯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