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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대체

by 노연석

지난 토요일 딸아이의 종강 후 기숙사 퇴실로 짐을 빼서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3시간이나 가야 하는 거리. 거리가 멀어질수록 운전하는 게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그 긴 여정의 출발은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위험한 상황을 일깨워주는 도로 위 과속 단속 카메라, 경고 문구들 그리고 위험 요소 제거를 위한 쉼터와 휴게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고속도로 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역시 졸음운전이다. 아무리 졸음에 빠지지 않으려 해도 그럴수록 더 졸음은 쏟아지고 무거워진 눈꺼풀은 중력의 법칙을 따른다.


요즘은 반자율, 자율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들이 나와서 이런 위험으로부터 조금은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휴게소 화장실에 붙어 있는 반자율 기능을 맹신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보면 생각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AI가 세상에 출현된 지 오래되었고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생성형 AI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을 보면 기술이 발전을 해도 인간과 같은 인지 구조와 반응을 하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완전한 기계로 가는 과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언젠가 기계가 인간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날은 올 것이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역시나 피곤함이 몰려온다. 새벽에 출발을 해서 식사를 하지 못한 덕분에 꼬르륵 거리는 배를 간단하게라도 채울 겸 휴게소에 들렀다. 시간이 지나도 휴게소의 풍경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로봇커피'.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가 이미 생활 곳곳이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게 되고 모든 가게가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해야 하는 풍경에서 왠지 정이 없어진 것 같아 씁쓸해진다. 뭐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만물상. 한 번도 물건을 사 본 적은 없지만 변하지 않는 이 점포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트로트 음악 소리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조금의 쉼과 채움을 뒤로하고 다시 위험이 도사리는 고속도로를 올라탄다. 그러고 보니 이미 오래되기는 했지만 하이패스도 이미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 도로 위의 과속 카메라도 과속 단속 드론도 인간의 임무를 대체한 기계들 중 하나인데 대체는 했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 아닐까. 카메라도 많이 팔렸으니 생산을 하는 일자리와 유지보수를 위한 일자리가 늘었을 것이고 드론도 라이선스가 있어야 띄울 할 수 있으니...


이것 말고도 곳곳에서 사람이 하던 일들이 기계로 대체되겠지만 그로 인해 자리를 내 준 사람들은 기계를 운영하기 위한 자리로 이동하거나 좀 더 새로 생겨나는 일 자리로 채워질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이며 보다 안전한 일자리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기를 희망한다.


AI 기술의 발달이 가져오는 자동화로 일자리가 많이 없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AI를 활용하고 주도하는 일은 아직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기에 앞서 이야기한 것 같이 좀 더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일로 업무가 대체될 것은 분명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적응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힘겨운 나날의 시작이 될 수 있으며 일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최근에 AI로 코딩을 시켜 보았다. 원하는 스펙을 프롬프트를 간단하게 만들어 실행을 시켜보니 나보다 더 코딩을 잘한다. 물론 지금 나는 코딩을 하지 않아 위협을 느끼지 않지만 순간 좀 무섭긴 했다. 하지만 AI는 아직 사람의 명령 없이는 능동적으로 어떤 것도 하지 못하기에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최근 본 기사 무서운 이야기가 실렸다. AI도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거 좋은 것이 나오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데 구형 AI 모델들이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사람들에게 계속 사용할 것을 권하는 답변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조금 더 발전하면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되어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날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기계가 많은 부분을 인간을 대체하고 있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직은 더 많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기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현실의 AI나 자동화 기계 장치들이 동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동화 개발 업무를 오랫동안 하고 있지만 개발이라는 업무가 없으면 자동화는 무용지물이다. 완전히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AI도 아직 갈길이 멀다. AI 기술 자체만으로 어렵다. 법적, 도덕적 부분도 그렇고 보안 측면에서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기 때문에 발전 속도에 걸림돌이 많다.


지루하게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를 오가며 세상 속으로 파고들어 인간을 대체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들을 하다 보니 긴 여정이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고 고속도로 위를 자동차의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한 편으로 반자율 주행 기능이 없었더라면 힘든 여정이었을 텐데 기계의 도움으로 힘듦을 나누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과 기계가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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