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갈 필요는 없다.
끝까지 갈 필요가 있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둬도 괜찮다. 목표까지 가기 위해 발을 내딛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것이라 목표를 향해 가다가 더 좋은 시작을 할 수는 순간을 만나면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도 좋다.
우리는 대부분 이 사회가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간다. 대학도 직장도 결혼도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암묵적인 압박을 받으며 걸어가고 하차를 하고 싶어도 망설이게 된다. 이탈을 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 친구들 부모 등등의 사람들로부터 견제를 받게 된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은 꼭 가야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서 정년까지 일하다 은퇴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대학에 보내고 내가 살아온 사람들이 살아온 보편타당한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 듯 이야기한다.
그렇게 정해진 틀 안에서 사는 삶은 모두에게 비슷한 삶으로 펼쳐진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의 정답인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뒤돌아보면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자식들에게 그 보편타당한 삶을 살라고 강요한다.
목적지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한 길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막히는 길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다른 길도 택해 가보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의 참 맛을 맛볼 수 있다. 막히는 길이 뚫리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 길에는 삶을 즐겁게 해 줄 일은 생기지 않는다.
두려움,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은 목표를 수정하는 일이고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기에 쉽게 변경하지 못한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안 되는 것을 꾸역꾸역 하며 살다 보니 고생만 하고 삶이 재미있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을 찾기보다 주어진 삶에 남들이 설계한 길로 안전하게 걸어왔다. 나쁘지는 않지만 만족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이 직장 생활도 역시 퇴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퇴직의 노하우를 귀동냥하며 그날을 기다린다. 한편으로 긴 여정의 끝을 이곳에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직도 가슴 한편에 이제 와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풀리지 않게 자리 잡고 있어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후회를 하면서도 말이다.
망설여지는 이 순건이 어쩌면 긴 여정을 함께한 이 버스에서 더 늦기 전에 내려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