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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죽이기

by 노연석

바쁜 업무로 오전 내내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화면을 터치해서 보니 메시지가 여러 번 스크롤을 해서 봐야 할 만큼 많이 쌓여 있다. 90% 이상은 쓸모없는 메시지들이다. 사실 100%가 스팸과 같은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오전 내내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메시지들이었다.


지난 일주일 하루평균 도착한 메시지가 200여 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지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다.


오랜 시간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이전에 설치된 것을 스마트한 동기화로 고스란히 옮기다 보니 스마트 폰에 설치된 앱이 거짓말을 보태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앱들로 수두룩해졌고 사용하지 않고 오랜 시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앱들은 알아서 얼음처럼 꽁꽁 얼어 버린다. 그런 앱들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삭제해야 할지 그냥 내버려 둬야 할지 망설여진다. 마음으로는 삭제지만 행동은 유지일 때가 더 많다. 어쩌면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사용하게 될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하고 불확실한 생각이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앱도 삭제하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쇼핑, 소셜 앱들의 알람 소리가 듣기 싫고, 손목으로 전달되는 살 떨리게 하는 진동이 짜증 나고, 메시지 삭제를 위한 소비를 노력을 들이는 시간이 아깝고 배터리의 불필요한 소모로 배터리 잔량에 신경 쓰는 것이 싫어 알람을 꺼버리기도 하고 삭제 버튼을 눌러 안녕을 고하기도 한다. 그를 통해 눈곱만큼이라도 스트레스도 줄이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도 줄여 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다시 앱을 소환해서 소생시키기도 한다. 알람을 다시 켜시도 한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 왜 이작은 사각 테두리 안에 것들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내가 된 것인지? 스마트한 세상에서 스마트해지기 위해서인가? 스마트폰이 없으면 스마트 해지지 않는가?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게임, 소셜, 웹툰, OTT 등에 중독이 되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나조차 OTT에 빠져 산다. 어떤 날은 끝도 없이 OTT 앱 속 드라마들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어떤 때는 한 번에 4편의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잘 살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더라면 벌써 부자가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본다.


그렇게 소비한 시간을 뒤돌아보며 그곳에 머물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심하고 창피하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가슴속으로는 멍청이라고 소심한 외침을 한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면 또 망각을 하고 바보 같은 상황을 되풀이한다.


이렇게 소비된 시간들은 책을 읽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야금야금 갉아먹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앱을 삭제하지 못한다. 삭제하고 잊어버리고 싶지만 또 내 안의 또 다른 자아의 방해로 원치 않는 결정을 한다. 다시 바보가 된다. 어쩌면 또 다른 자아는 삶에 지쳐있는 나에게 휴식을 주려 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에 암묵적 동의를 하며 변질된 삶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스마트폰 키보드로 글을 쓰는 시간이 많다. 책상에 앉아 쓰기보다 대부분 버스 안에서 글을 쓴다. 하루에 버스 안에서 2시간 넘게 갇혀 있어야 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쓰다 보며 오타 작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게 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데 스마트폰이 문제라 생각하고 바꿔봐도 여전히 오타쟁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앱들 중 절대 삭제하지 못하는 앱은 키보드 일 것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앱 또한 삭제에서 보호받는 대상이다. 앱 속에 미천한 활자들을 담고 있지만 미천함 그대로에 만족한다. 미천함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앱은 아픈 손가락과 같아 잘 보살피고 보호해야 한다.


이 작은 사각 프레임 안에 펼쳐진 가상의 세계는 현실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연결하는 앱들을 삭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통을 하기 힘들어지고 금융, 공공, 여가 생활까지 앱이 없다면 불편한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스마트함이 사라진다. 세상에 너무 많이 물들어 있어서 일 것이다. 어떤 땐 변화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려면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삭제 가능한 앱들은 많이 있다. 스마트폰 구입 시 기본으로 설치된 앱들 중 사용하지 않는 것, 일상생활, 업무와 무관한 앱들... 신경 써서 들여다보면 공간만 차지하고 배터리만 소모하는 앱들이 수두룩 하다 시간을 내서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은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


앱 죽이기. 표현이 과할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앱 죽이기,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는 앱 죽이기를 통해 되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편리함을 주는 만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소비는 늘어난다. 많아진 소비는 정작 해야 할 것들의 시간을 앗아 간다. 집중하지 못하게 정신을 어지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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