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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와 창

by 노연석

우리는 수많은 규칙, 규범, 기준 등등의 룰 안에서 살아간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그 룰들에 의심을 품어보지 않고 틀렸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런 룰들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를 억압하는 울타리와 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많이 듣고 자란다. 하면 안 돼, 하지 마, 하지 마. 부모님의 부모님 그 이전 세대부터 내려오는 관습과 같은 억압은 아이들을 창의적이지 못하게 만들고 룰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무뎌지게 만들었다.


룰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경기를 하면서도 학교를 다니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누군가 부적합한 룰을 개선해 주기까지는 그렇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완벽이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어제는 그 완벽이 통했지만 오늘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사람도 변하고 적응해야 하지만 룰도 변해야 한다. 완벽해 보이는 룰도 내일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룰 안에서도 잘 돌아간다. 그래야 점점 더 완벽이 가까워질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안정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떤 룰도 완벽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예외 케이스들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문제들이 있더라도 당장 해결 할 수 없기에 문제를 피해 가거나 억압을 통해 통제를 하는 룰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면 최근에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정해 놓은 룰이 있었는데 그 룰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활동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사실 완벽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룰이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악용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짐작은 틀린 것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신에게 뭔가 불리한 룰이었기에 피해 갈 방법을 찾았던 것이고 그 한 사람만을 놓고 보면 사실 악용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외 다수의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은 결국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룰을 깨려는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러면 다시 룰을 개정하여 보완하는 사람이 나온다. 동호회의 룰은 결국 원래 기준은 이어가면서 룰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누가 봐도 납득이 갈만한 가이드를 포함했지만 여전히 이 룰은 완벽하지는 않다.


예에서 보았듯이 누군가 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바꾸려는 노력, 회피하려는 시도를 통해 사라지는 룰도 있도 새로 태어나는 룰도 있으며 업그레이드되는 룰도 생겨 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룰과 타인이 생각하는 룰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룰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하는 것은 다수가 안전하고 충돌 없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다. 하지만 너무 억압된 룰 안에서는 창의가 발휘될 수 없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 내가 근무 중인 회사 내에는 엄격한 IT 보안 정책이라는 룰을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개발자들은 해도 되지 않을 코딩을 해야 하고 그 룰을 지키기 위한 어찌 보면 불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일들을 해야 한다. 개발을 하기도 전에 보안 정책에 부합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다 녹초가 되기도 하고 때론 포기하는 사람들도 발견하게 된다. 문제는 그런 과정을 몰랐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너무도 많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의 케이스를 공유하지만 어느새 보완된 정책으로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서 난항을 겪는다.


창과 방패, 보안 정책이라는 룰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면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터넷 홈페이지, 앱 들에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개인정보, 시스템 공격 등에 대비하기 위해 방어 로직들이 들어가고 그 앱들이 운영되는 서버에는 보안 툴들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가 PC에 바이러스 침투를 막기 위해 백신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보안툴을 적용한다 할지라도 해킹 사건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모든 앱들이 보안 정책이라는 룰에 따라 개발을 했겠지만 어딘가에는 취약점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보안 정책이라는 룰에는 그 취약점을 방어하기 위한 로직이 추가 되게 된다. 이러한 정책은 최근 대형사고로 이어진 통신사의 보안 취약점에 대한 방어 로직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고 새로운 취약점이 발견되어서 일 수도 있다. 고객의 정보를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한 룰은 아무리 강화를 해도 지나치지는 않지만 여전히 개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보안 정책을 강화하는 것은 맞지만 그 정책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누락하기 위한 장치들이 지속적으로 보완되어 실수를 하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


룰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명백하고 그래야 우리가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룰이 합리적이지 않고 취약하거나 문제점이 있다고 하면 보완해야 하고 지나치게 강화된 룰로 인해 자유를 창의를 억압하고 통제한다면 발전은 더디거나 멈출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정책들이 이런 케이스들이 너무 많다 보니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는 사례들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국가가 만들어 놓은 교육 로드맵이라는 룰 안에서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마치 감옥과 같은 학교에서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은 룰 안에서 지식을 쌓고 성장해 간다. 그런데 간혹 대안학교를 찾고,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치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왜 국가가 만들어 놓은 표준 로드맵을 따르지 않고 이탈을 하는 것일까?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로드맵 안에 있는 룰들이 너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대안을 찾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런 이탈을 통해서도 표준 로드맵을 따른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 어떤 사람들이 더 창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을까? 수많은 룰 안에서 억압을 받은 사람들은 몸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닭장에서 자라는 닭과 같고 대안을 찾은 사람들은 울타리는 있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닭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더 창의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해보나 마나일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룰 안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사고를 하고 룰을 피하는 방법도 찾아볼 것이고 다양한 시도를 하겠지만 자유로운 삶에서 받아들이는 다양성 안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생각과 시도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룰은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내부의 안전을 위한 방패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억압된 룰은 룰을 깨트리게 만드는 일들이 발생을 하게 되고 룰 안에서 창의적 발전은 이뤄지기 어렵다. 그 안에서의 창의는 바깥세상에서 써먹지 못할 그런 창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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