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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SIGNER Sep 09. 2020

기록의 수단

에버노트

ㅆㅆ1


이제 와서 기록을?



어린 시절 학업과 관련된 압박을 전혀 주시지 않았던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강요하셨던 일(?)이 있었다. 바로 일기 쓰기였다. 방학숙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렇게 일기 쓰기를 말씀하셨고 검사하셨다. 물론 난 죽어라 쓰기 싫었고 사춘기 시절이 될 즈음 아버지의 강요가 사라짐과 동시에 나의 일기 쓰기도 거기서 끝나버렸다.  


난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기는 물론이고 한때 선풍적인 인기였던 다이어리 꾸미기 (그 당시에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모두 혈안이 되어있었다.)도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기록에 도움을 주는 디바이스에 더 관심이 있었고 그 관심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 같다. 기록을 한다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니까. 


남녀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인기였다


그러던 내가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해왔던 거를 기록하고 정리해야 하는 필요를 가지게 되었다. 무언가를 쌓아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 시점이 아마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인듯하다. 처음에는 주로 업무, 포트폴리오와 관련된 것을 기록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점점 더 기록을 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직장에서 한 개발자분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개발자는 40% 정도만 코딩 업무를 하고 나머지는 문서정리를 해야 한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입사를 하시고 난 후 confluence라는 wiki를 정리하는 설루션에 하나하나 문서화를 하는 것을 보면서 디자인 파트에서도 체계화, 정리가 필요함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디지털로 기록하고자 관련 설루션들을 써보기 시작했다.  


대단한 atlassian...


단순 메모 앱부터 에버노트, 구글 킵, 원노트, 삼성 노트, 노션 등 다양한 설루션들을 써보면서 나에게 가장 알맞은 툴을 정하고 싶었다. 일종의 나만의 wiki를 만들고 싶었다. 노션의 경우 요즘도 핫하고 한동안은 유료 가입도 했었지만 엔터 = 블록 추가라는 개념이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훌륭한 웹에 비해 너무 무겁게 느껴졌던 앱으로 인해 돌고 돌아 에버노트로 정착하게 되었다. (현재까지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ㅆㅆ2

그렇다고 완벽한 건 아니다.


2013년부터 사용한 에버노트, 현재는 411개의 노트가 있다. (물론 지운 게 훨씬 많다.) 꽤 오랫동안 사용해왔지만 서비스의 기능, UI의 변화는 크지 않았던 거 같다. (조금 질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유니콘으로 주목받던 에버노트인 만큼 중간중간 협업 설루션과 같은 부가적인 기능을 시도하였지만 오히려 서비스를 무겁게 만들기만 했던 것 같다. (물론 사용해보지는 않았다.) 비슷한 서비스 대비 에버노트의 장단점을 살펴보면, 


장점 1. 크로스오버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에버노트 초기에만 하더라도 꽤나 강점으로 어필되었다. 물론 가지고 있는 모든 기기에서 에버노트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유료가입을 해야 한다. (무료인 경우 2대까지 제한이 걸리게 되는데 바로 이점 때문에 나도 유료로 전환하였다. ) 안드로이드, ios, 태블릿, 윈도우, 맥 거의 모든 플랫폼을 위한 앱을 제공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웹에서 사용하면 되니 아무 디바이스만 있으면 기록을 할 수 있다.  


장점 2. wiki형태의 UI 

사실 장점이라고 하기 좀 애매한데, 에버노트는 Wiki 서비스들의 공통적인 UI인 좌측에 카테고리, 우측에 내용을 보여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산발적으로 작성된 내용을 정리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UI라고 생각한다. 특히 화면이 넓은 디바이스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다. 


이 UI 보다 나을 수 있을까?


장점 3. chrome extension 

디자인 관련 리서치를 하다 보면 별도로 저장하고 싶은 콘텐츠를 쉽게 발견한다. 이때 evernote web clipper를 사용하면 손쉽게 해당 내용을 나의 에버노트로 가져올 수 있다. 가져오는 형태도 선택할 수 있고 이미지도 같이 이동되기에 편리하다. 다만 주의할 점은 퍼오기 쉬운만큼 나중에 정리를 하지 않으면 내 것으로 만들기 힘들다. 꼭 다시 한번 정리를 해줘야 한다. 


정보를 저장하기 쉬운만큼 가공이 필수적이다.


단점 1. 폰트 스타일 미제공 

에버노트 입력창에서는 폰트 스타일을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폰트 스타일은 h1, h2, h3, p 와같은 일종의 폰트 스타일 preset이다. 일반적인 문서작성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기능인데 에버노트에는 없다. 따라서 문서 작성 시 hierarchy를 표시하기가 너무 번거롭다. 타이틀과 본문 정도는 구분이 되어야 하기에 bulleted list 기능을 주로 사용한다. 


하아.. 이게 없다...


단점 2. 노트 탐색 UI의 불편함 

Wiki형태의 UI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노트북 화면에서 노트 탐색이 번거롭다. 가지고 있는 노트북 목록까지만 나와 상세 노트 리스트를 보고자 하면 꼭 더블 클릭을 해야 한다. mac의 탐색기와 같은 UI 구조 개선이 되면 훨씬 탐색하기 수월할 것이다. 추가로 어떤 노트 진입 시 이 노트가 어느 노트북에 위치하고 있는지 breadcrumb 형식으로 노출되면 보다 상위 노트북으로 이동도 쉽고 위치 파악도 쉬울 것이다. (현재는 첫 번째 상위 노트북 이름까지만 노출된다.) 


단점 3. 기존 UI 피로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거의 변화가 없는 UI를 유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데이트를 통해 달라졌다는 이미지를 느꼈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의 UI 피로도가 조금 높은 편이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Notion이 주목받았을 때 1순위 이유는 서비스 style이 아녔을까 싶다. 개발 친화적인 기능도 물론 비교가 안되지만 무언가를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느낌을 Notion은 UI에서 잘 보여준 것 같다. (에버노트는 점점 아저씨들이 사용하는 이미지로..) 

확실히 notion이 좀 더 세련되어 보인다





ㅆㅆ3 

분류를 하면서 기록하자


예전에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를 읽었을 때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창조”라는 말이 너무도 와 닿았다. 그리고 이런 창조를 위해 기록하고, 편집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구성을 해야 한다는 내용은 그동안 기록이라는 것을 잘 해오지 않았던 나에게, 그리고 디자이너 일을 하는 나에게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와 관련된 것을 모두 기록해보자. 


잘 정리해야 한다 (출처 : yes 24)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공책이 있고, 스크랩북이 있고, 다양한 연필(디바이스)이 에버노트에서 가능하니 이제 노트북 구성만 잘 짜면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여러 노트북을 만들고 지우고 옮기고 한 결과 현재 나의 에버노트 계정의 노트북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은 이렇게 쓰고 있다


1. knowledge  

말 그대로 디자인 관련, 기타 관심사 관련된 정보를 모아놓는 곳이다. articles의 경우 주로 에버노트 web clipper를 사용해서 가지고 온 다음 기사를 읽고 정리를 한다. 정리한 메모는 ‘[완료]’라는 앞머리를 붙인다. 각 주제별로 하위 노트북이 있으며 관련 정보를 찾을 때마다 추가한다. 책을 보면서 좋은 문구가 있는 경우도 별도로 정리한다. 


2. memo 

아직 분류를 하지 않은 노트나 급하게 메모를 해야 하는 경우 이곳에 노트를 생성한다. 이후에 다른 곳으로 재분류를 하거나 삭제한다.  


3. personal 

개인적인 정보를 담는다. 가계부, 가족 행사, 여행기록, 그리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일기도 이곳에 포함된다. 아쉬운 점은 개별 노트 잠금 기능이 없어 누군가가 내 일기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4. schedule 

그날그날 해야 하는 일을 주 단위로 적는 일종의 스케쥴러다. 대표 템플릿을 만들고 매주 이를 복사해서 사용한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매주 복제해서 사용한다.


5. work 

회사 프로젝트, 개인 프로젝트를 위한 노트북이다. 리서치, 작업 내역 등 프로젝트와 관련된 노트로 채워져 있다. 블로그 콘텐츠들도 이곳에서 작성하고 있다. 



ㅆㅆ4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 



디자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사용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다 나와있다.” 앞서 언급한 김정운 교수의 말처럼 우리가 새롭다고 느낀 것은 이미 있던 것들의 재구성이고 새로운 조합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건은 하나다. 얼마큼 잘 기록하고, 나중에 얼마나 잘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을 갖추는지. 과거 공대생 시절 재료역학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나는 교수지만 연구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다. 대신 그 내용들이 어떤 책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당신의 기록은 얼마큼 정리되어있나?


나름 기록을 쌓으면서 에버노트를 사용하고 있고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아직 불만족스러운 건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지 않다는 점과 나의 글짓기 실력 정도 인듯하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도 바랬던 건 조금은 나아진 글쓰기 실력이었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나아질 글쓰기 실력과 더불어 나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였으면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에버노트는 아직까지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쓰고쓰기 - 써본 제품만 다룹니다. 저도 최신 제품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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