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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SIGNER Sep 17. 2020

저 비싼 디자이너예요

생각 없이 부탁하지 말아 주세요



자랑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디자인이 내 밥벌이 수단이 된지도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본래 공대를 졸업하기도 했고 디자인, 미술 관련된 경험을 이전에는 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주위에 대다수다. (부모님도 아직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르신다. 그냥 회사 잘 다니는 줄만 아실뿐..) 고등학교, 대학생활을 통틀어 나와 같은 분야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이런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너 디자인한다며? 그럼 이것 좀 만들어 줄 수 있어?


사업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자영업 준비를 위한 부탁도 있었다. 알다시피 디자인 관련 직종의 경우 포트폴리오가 매우 중요한 만큼, 특히 경력이 없는 신입 시절에는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될만한 작업을 닥치는 대로 하고 싶어 한다. 나도 그랬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내 작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고 뭔가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인정(?) 받을 기회라는 생각에 다 흔쾌히 작업을 진행했었다.



결과 물적으로는 전혀 훌륭하진 않지만 부탁을 해준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워했고 나도 작게나마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고가 아니라 간판을 만들어준다고 한다면?



만약 음식점 로고가 아니라 간판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면? 금전적인 계약이 아니어도 아마 결과물을 전달하고 나면 ‘아무리 그래도 얼마라도 드려야 하는데..’라는 반응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고를 만들어주는 작업이라면? 아마 고마움을 표시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그렇다면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해서 뭔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애초에 금전적인 대가를 바란 적도 없었고 행여 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도 없다. (개인 작업물을 만들었고 실제 사용되는 사례로 포트폴리오에 사용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뭔가 빠져있다고 생각한 건 무형의 작업물에 대한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만 원짜리 로고 디자인


5만 원 치 로고 디자인 가능하세요?


무형의 제품을 유형의 가치로 거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디자인 쪽은 더 어려운 것 같다. 가치의 기준으로 삼을만한 게 없다 보니 대기업의 경우 로고 디자인에 수십억을 쓰기도 하지만 클라우드 소싱에서는 단돈 5만 원에 로고 디자인을 의뢰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낮은 가격에 이루어지는 디자인 작업들이다. 거래를 통해 수요자와 공급자가 모두 윈윈 하는 구조가 아닌 둘 다 피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용과 결과물이 비례하지는 않지만 단돈 5만 원을 기준으로 진행되는 작업의 퀄리티는 어떻게 할 것이며 5만 원을 투자하는 수요자가 5만 원 치의 결과물을 기대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하다


무형의 작업 특히 디자인 관련 작업들이 이런 구조와 인식을 가지게 된 건 수요자, 공급자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까짓 거 잠깐 해서 만들어주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과 대충대충 많이 만들어서 수익을 보자는 마인드. 그리고 무형의 작업 중 유난히 가볍게 여겨지는 디자인 작업에 대한 인식.(여기서는 클라우드 소싱 플랫폼의 문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면 열 받으니까.)


그래서 난 나 자신이 비싸다고 이야기한다



디자인 작업을 부탁하거나 의뢰할 때 지인 찬스를 쓰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다. 한번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면 그냥 해주는 거니까, 난 얼마를 받았으니까 딱 그만큼의 결과물을 생각하며 작업하지 않는다. 주유소에서 딱 2만 원치 기름을 넣는 것처럼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계약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지인끼리의 디자인 작업 의뢰는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최소한의 대가를 정하길 추천한다. 돈이 되든, 맛있는 밥이 되든 뭔가 있어야 하고 이는 의뢰자와 작업자 사이의 최소한의 성의이자 약속의 의미여야 한다. 그래야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피드백과 수정이 오고 가는, 결과적으로 좀 더 괜찮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난 저 말을 하기 시작한 후 지인의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적이 없다. (듣는 사람 입장에는 좀 재수 없다고 느꼈을지도..)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진짜 비싼 디자이너가 되는 것 밖에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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