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실무에서 ‘컨펌’이란 무엇일까? 컨펌을 받지 못한 시안은 프로덕트로 만들어지지 않기에 디자인 시안 입장으로 본다면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절차이다. 보통 디자인 조직에서는 가장 높은 직급의 사람이 컨펌을 진행한다. 컨펌을 통해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가지며 타 부서와의 협의를 통해 그 책임을 공유한다. 여기서 공유는 ‘인증’에 가깝다. 더 좋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보단 실제 프로덕트에 반영되었을 때 ‘어? 이거 못 본 건데 반영이 됐네?’라는 반응을 없애기 위한 절차다.
죽느냐 사느냐..
모든 컨펌에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컨펌의 기준이 데이터나 소비자의 반응과 같은 근거이면 좋겠으나 개인적인 취향이나 경험을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아마 그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자신의 시안이 프로덕트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컨펌하는 사람의 취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서비스에 더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실장님은 그라데이션을 싫어하시지’가 먼저 떠오르는 거다. 보수적이 조직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기에 어떻게 설득하냐 보다 상급자의 취향과 과거 컨펌 사례에 더 집중한다.
싫으면 싫은 거다
나도 그랬었다. 아니 지금도 그런 상황이긴 하다. 아무래도 조직에 계속 속한 디자이너이다 보디 이런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하는 욕심보다는 (그러려면 사장이 되는 수밖에 없다..) 서로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늘 바라고 있다. (난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컨펌이란 걸 없애보았다.
이전 스타트업에 있었을 때, 새로 뽑은 신입 디자이너가 시안을 좀 봐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지시한 업무를 바탕으로 시안을 완성한 상태에서 컨펌을 요청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신입인 만큼 컨펌을 해주는 식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나 자신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그 절차를 따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 신입 디자이너와 같이 정한 건 ‘컨펌 없이 디자인하기’였다. 그렇다고 이제 갓 1년 정도 된 신입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겨버리고 나 몰라라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컨펌은 디자인 시안이 완성이 된 후 상급자에게 확인(평가)을 받기 위한 절차다. 앞서 말했듯이 컨펌이라는 절차에는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난 그 이유가 완성본을 기준으로 컨펌을 진행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과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기에 yes or no 식으로의 판단이 나오기 쉽다고 생각했다.
이러지 좀 맙시다.
그럼 이렇게 한번 해보자
그래서 정한 규칙은 '업무의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논의하기’였다. 무엇을 디자인했는지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컨펌 대신에 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최종으로 확인을 해야 하는 단계, 그전에 흔히 알던 컨펌을 하는 단계는 과감히 생략을 하고 작업자가 알아서 개발 쪽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바꿔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수정을 요청하는 것만큼 작업자를 지치게 하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디자이너가 수정 요정이라고 해도 지칠 수밖에 없다.)
더 이야기하기 편해졌다.
사실 최종 결과물을 가지고 검사받는 마음으로 컨펌을 요청하는 건 좋은 경험은 아니다. 이건 컨펌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뭔가 수정하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기에는 근거가 너무 부족해 보이고 그렇다고 무작정 수정을 지시하려니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고.. 컨펌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즐거운 경우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컨펌을 없애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기존보다 디자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작업자는 결과물이 아닌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덜 부담스럽고 상급자 또한 수정을 지시하는 게 아니기에 좀 더 편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니 자연스럽게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보다 더 확인하기 쉬워졌다. 앞서 최종 결과물에 대한 컨펌을 없앴다고 했지만 작업 확인 빈도가 높아지니 굳이 최종 결과물을 확인하지 않아도 다른 부서에 시안을 전달하는 게 가능해졌다. 작업자 혼자 놓칠 수 있는 부분도 중간중간에 이야기 하기 수월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논의가 잦아진 만큼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지고, 서로를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가끔은 누가 상급자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한 명의 잣대가 아닌 같이 만든 잣대로 디자인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니까.
결과물보다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자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상급자에게 보고, 컨펌을 받는 경우는 많이 있고 대부분은 결과물을 가지고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경험과 경력이 더 많더라도 과연 작업자보다 해당 업무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여러 변수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상급자의 경험과 작업자의 고민은 최소한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