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퇴근이다!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선 호다닥 교무실을 나와 종종걸음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지붕이[1]에 도착한다. 시동을 켜고 잠시 차 안의 적막을 즐긴다. 학교는 정말이지 소음이 끊이지 않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떠들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제게 적막을 허락하소서. 하고는 얼마 있다가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을 튼다. 콰광쾅쾅! 학교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 망각하기에 딱 좋다.
집에 도착하여 손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며 도시락 가방 끈을 푼다. 도시락통을 여니 그새 남아있던 반찬 양념과 찌꺼기가 상하기 시작했는지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 두유를 담아갔던 텀블러도 가방에서 꺼내 싱크대에 넣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렸던 모카포트를 열어 바스켓에 담긴 원두가루를 비우고 물에 헹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 비누를 거의 다 써서 물러지고 조각이 나니 영 거품을 내기 불편하다. 엄마에게서 배운 살림 스킬을 떠올려, 옷장에서 안 신는 스타킹을 꺼낸다. 발 한쪽을 잘라 그 안에 비누 조각들을 넣고 꽁꽁 묶는다. 수세미에 벅벅 문대도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니 좋다. 스타킹 속에서 비누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남김없이 쓰리라.
먼저 기름기가 많이 묻은 것들은 애벌로 비누칠을 하고 헹군다. 천연 수세미에 비누로 거품을 잔뜩 내어 반찬통을 닦는다. 각진 반찬통의 네 모서리가 구석구석 잘 닦이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물을 틀어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식기들을 씻어낸다. 설거지는 명상의 순간이다. 마음을 지치게 했던 일들을 망각하고 그릇을 깨끗이 하는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해본다. 물이 손에 닿는 감각을 오롯이 느껴본다. 그릇의 굴곡과 질감과 무게를 열심히 더듬어본다. 축축하고 시원한 물의 감촉, 온도, 기름기의 미끌거림과 씻고 난 후의 뽀득거림을 충분히 즐겨본다.
설거지가 끝나면 수채 구멍에 쌓인 음식물쓰레기를 봉투에 털어 넣고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끼워 넣는다. 소창 행주로 싱크대 주변의 물기를 깨끗이 제거한다. 마지막으로 비누칠을 해서 행주를 빨고 물기를 꼭 짜서 널어둔다. 어지러웠던 마음도 깨끗이 정리된 것만 같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오직 업무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내 몸의 닫혀 있던 감각들이 깨어난다. 퇴근하고 설거지를 하는 오후 다섯 시, 비로소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은 뭘 먹을까. 먹었던 흔적을 치우니 또 먹을 일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 꽂힌 음식은 들깨 떡국이다. 라면 끓이는 것만큼 간단하고, 냄비 하나만 필요하니 설거지도 간편하다. 끓는 물에 다시마와 말린 표고와 다진 마늘 조금을 넣는다. 채수가 우러나오길 기다리며 얼려 둔 떡을 꺼내 물에 담그고 엉겨 붙은 떡들을 분리시킨다. 팔팔 끓이다 다시마를 건지고 참기름 한 방울을 톡 떨어뜨린 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풀어낸다. 송송 썰어둔 파와 떡과 유부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완성이다. 맛있게 먹고 나면 2차 설거지와 도시락 싸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쉴 틈이 없다. 말 그대로 “먹고사는 일”은 적잖이 힘이 드는 일이다.
2021년 11월, 난생처음 대출이라는 것을 왕창 받아 마포구 한 귀퉁이에 나의 공간을 얻었다. 5년의 자취생활을 마치고 부모님과 합가 한 지 3년 8개월 여 만이다. 독립하고 싶었던 이유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했지만, 온전한 일 인분의 살림을 꾸려보고 싶어서였다. 부모님은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아마 지금까지도 내가 그저 간섭받지 않고 싶어서 나갔다고 생각하시리라.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사실 간섭이란 걸 잘하지 않는 편이고, 나는 본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와 내 이기적인 성격 탓에 원할 때면 내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가지며 살았다.
그래서 부모님은 더 더욱이 내가 독립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쉬이 납득하지 못하셨다. 본가에 살면 돈도 더 모을 수 있고, 집안일도 덜 하니 좋지 않냐고, 그렇게 맨날 퇴근하면 피곤해하면서 밥은 어떻게 해 먹고 청소는 어떻게 하며 살 거냐 걱정하셨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피곤한 “밥 해 먹고 청소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독립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돈도 아끼고, 몸이 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입었던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고 자면 빨래가 돼있었고, 퇴근 후 피곤해서 뻗었다 일어나면 밥이 차려져 있었다. 비건이 된 후 도시락을 싸는 일은 스스로 했지만, 그 외 대부분의 살림은 부모님의 노동에 의탁하여 살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방 정리와 가끔 하던 설거지, 빨래를 빼고는 살림을 거의 안 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자취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부모님 두 분이 유일무이한 살림의 의사결정자로서 업무를 분담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이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내가 합가 하면 살림의 행위자는 둘에서 셋으로 느는 것이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렇게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나의 의지박약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집안일을 더 해야지, 하면서도 퇴근하면 정리되어 있는 집을 보며 게을러졌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살림이 운영된다는 생각에 최소한만 겨우 하며 부모님의 노동에 의탁한 삶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내 생활에서 대부분의 살림이란 여유 있을 때 종종 참여하는 일 정도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살림의 공간은 부모님이 노동하시기 편한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집 안에서 살림의 공간은 내 생활 반경에서 철저히 분리돼 있었다. 살림 도구들을 선택하고, 구매하고, 비치하고, 정리하고, 이용하는 모든 과정으로부터 나는 동떨어져 있었고, 그 거리감에서 난 내 삶에서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부모님의 노동에 살림을 의존하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죄책감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모든 사사로운 과정에 살림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내 삶에서 살림은 지워져 있었다. 살림은 내게 원할 때 취사선택하여 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자고 일어나 밥이 차려져 있을 때, 내가 더럽힌 세면대가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깨끗해져 있을 때, 내가 물을 주지 않아도 거실의 뱅갈고무나무와 개운죽이 잘 자랄 때, 어딘가 삶의 일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라는 한 존재가 생존하는데 수반되는 노동이 무엇인지 좀 더 적극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었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과 머리카락, 내가 먹는 음식, 내가 먹고 난 흔적, 내가 더럽힌 화장실. 그 살아간다는 행위의 모든 과정을 낱낱이 내 손으로 주물러보고 싶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진짜 일 인분의 삶을 만져보고, 살아내고 싶었다. 나를 보살피고 살리는 일을, 내가 몸을 뉘이는 공간을 스스로 가꾸는 일을 내 손으로 해보고 싶었다. 다른 방식과 감각으로 살아있고 싶었다.
[1] 지은이와 붕붕이의 합성어로, 중고로 업어온 나의 자동차 이름이다. 그렇다. 앞서 등장한 나의 자전거 ‘지롱이’는 지붕이와 같은 문법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난 이름 짓기엔 영 재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