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주요 임원진이 참석하는 경영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김전무, 우리 회사도 미래를 위해 요즘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DT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경쟁사들도 시작한다고 하는데, 김전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안을 준비해서 보고해 주세요."
"사장님, DT가 업계의 화두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실제 성공 사례들도 여러 분야에서 소개되고 있고요. 그러나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내부적으로 준비하기 보다 전문 컨설팅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 봅시다. 다만 시간이 없으니 조속히 서둘러 주시고 김전무께서 이를 총괄하세요."
회의 후 김전무는 DT 전략 수립의 경험이 많은 유명 컨설팅 회사를 수소문하였고, 각 컨설팅 회사로부터 제안 발표를 듣고 가장 최적의 회사를 컨설팅 파트너로 선정하였다. 그렇게 1~2개월 동안 외부 컨설턴트들은 회사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과 구성원들의 다양한 업무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검토한다. 또한 동종 업계는 어떻게 DT를 수행하고 있는지 벤치마크하고 기존 DT의 사례와 대비해 가면서 회사에서 적합한 전략과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그러나 경영진이 요구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원점에서의 깊은 고민보다는 경영진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도출하는데 더 집중한다. 결론은 경쟁사와의 비교가 중심이 되고 논리적으로도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김전무는 기간 대비 품질을 볼 때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CEO에게 최종 보고를 한다.
"사장님, 컨설팅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력 사업의 DT를 통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 그리고 DT를 통한 각종 문제 해결과 운영 효율화와 비용 절감. 이렇게 두고서 가능한 분야를 찾아봤습니다. 이른 시간 안에 실행 가능하고 효과가 기대되는 것으로 기존 사업의 운영 효율화, 이를 위한 빅데이터 이용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A, B, C의 과제가 도출되었습니다. 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아웃소싱을 통한 실행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내부 역량을 키우기 위해 회사 안에 전담 조직이 있었으면 합니다. DT는 앞으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에 대한 기술의 이해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선은 작게 시작한다는 관점에서 데이터를 활용한 DT부터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 조직을 먼저 만들었으면 합니다."
"김전무, 잘 알겠습니다. 속도가 중요합니다. 바로 조직을 만들고 우리도 DT를 본격적으로 해봅시다. 다른 임원들께서도 김전무를 잘 도와서 우리 회사를 바꾸는데 앞장서 주십시오. "
물론 가상의 시나리오로 구성해 본 것이지만 많은 경우 DT 실행 결정은 실무진에서 경영진으로 의견이 올라가기보다는 경영진의 전략 방향에 따라 실무 조직이 움직이면서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앞의 이야기는 상당히 긍정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설된 신규 조직은 과연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이렇게 만들어진 신규 조직은 일을 잘 해 내기가 어렵다.
IT 업종이 아닌 많은 회사들이 DT 실행을 가속화하기 위해 작은 규모의 전담 조직을 별도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 조직은 기존 IT 부서로 소속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전략 또는 경영 지원 조직으로 소속될 수도 있다. 그리고 데이터 분석이든 클라우드든 기존 조직에는 없었던 역량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경우 신규 인력을 외부에서 채용하면서 조직을 꾸린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보다 전문성 있는 방법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우여곡절 끝에 신설된 조직은 회사에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대감을 받으면서 출발한다. 그리고 경영진의 높은 기대치를 반영하여 중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임무도 부여된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DT를 실행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SI 프로젝트처럼 한쪽의 요구 사항을 다른 한쪽이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업 조직과 DT 조직이 각자의 역할에 기반을 두고서 서로 소통하며 문제를 도출하고 이를 어떻게 DT로 해결할지 찾아가는 일이다. 기존 사업부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해결한다고 생각해 보자. 분석을 통해 실행 안을 만드는 것은 DT 조직이지만 사업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현업 조직이다. 즉, DT 조직은 분석 결과를 직접 실행까지 옮기는 부서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DT 조직은 현업 조직과 긴밀하게 협의를 하며 현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반대일 때가 많다. DT 조직은 신설되자마자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된다. 빠르게 움직이려다 보니 충분한 협업의 조건을 만들기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현업 조직과 무관한 주제를 찾게 되고 기대와는 다른 출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대기업일수록 타부서와 함께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된다.
빅데이터 분야의 과제를 수행한다고 할 경우 기존에 이미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도 다시 분석하고, 최신의 기술을 이용해 모델링 결과도 만들 것이다. 신생 조직이기도 하고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가들인 만큼 결과물도 괜찮다. DT 조직 입장에서는 파급력 높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협업을 토대로 출발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현업 조직은 없을 것이고 실제 활용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경영진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당연히 성과가 없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DT 조직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가 된다.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지 못한 전문 인력들은 스스로 회사를 그만둔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데에는 부서 간의 협업이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경영진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경영진이 DT를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DT가 성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관문은 바로 회사 내에서 당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DT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문제가 무엇이고, 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문제 해결을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영진은 그것을 잘 추진할 수 있게 적극적인 스폰을 자임해야 한다.
규모가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기존과 다른 업무 방식이 도입될 때면 기존 조직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이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을 경계심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이런 대목을 경영진은 놓쳐서는 안 된다. DT를 뿌리내리고자 한다면 경영진은 강력한 스폰서십을 통해서 조직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조직과 잘 융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을 보내야 한다. 경영진이 먼저 나서서 DT 결과물에 관심을 보이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확대할지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해 주어야 한다. 조직을 만들 때처럼 강력한 지원이 뒤따라야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DT 성공의 8할은 바로 경영진의 강력한 스폰서십에 있다. 전담 조직을 만들어 실행을 위한 체계를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존 조직과 잘 융합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내부 조직을 만들지 말고 DT도구 도입으로만 한정하는 것이 낫다. DT 성공의 키는 바로 실무자가 아닌 경영진임을 잊어선 안된다. 덧붙여서 하나 더 얘기하자면, DT는 한 번의 시작으로 성공한다고 할 수도 없는 만큼 기대감을 낮추고 작은 성공에도 격려를 보내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출발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