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3kg의 우량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병원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있던 신생아는 나, 그리고 같은 날 태어난 또 다른 한 아이뿐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3.2kg으로 지극히 평균 체중의 아이였기에 행여나 둘이 바뀌거나 할 염려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출산 예정일 즈음, 내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엄마는 걱정이 됐지만 애기도 나오고 싶어야 나오는 거라는 의사의 말에 일단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참이 지나도 애가 나오지 않자, 엄마는 결국 촉진제를 맞고 출산을 했다고 한다. 그때가 예정일보다 2주나 지났다고 했으니 참 우량해질 만도 했다.
나는 이 우량아 탄생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미 여러 번 들어서 전부 아는 이야기임에도 종종 엄마한테 나는 몇 킬로그램으로 태어났냐고 물어본다. 그럼 엄마가 "어휴 말도 마라." 라면서 몇 번이고 한 이야기를 또 한 번 생생하게 묘사하는 게 좋다. 이야기는 매번 조금씩 바뀌지만 병원 사람들이 애가 너무 크니까 전부 깜짝 놀랐다는 내용은 빠진 적이 없었고, 항상 "의사 말로는 애가 뱃속에서 나올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잠만 자고 있었다더라. 그렇게 잠만 자는 애가 어딨냐." 면서 혀를 차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마 그때 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 귀찮은데 왜 자꾸 나오래. 나 좀만 더 잘게."라고 하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나는 꽤나 예민해서 쉽게 피로를 느낀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되도록 가만히 있는 게 좋고, 누워서 멍이나 때리거나 퍼질러 잠이나 자는 게 좋다. 게으르고, 귀찮다는 말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예전부터 참 쉽지 않았다. 이런 내가 사회 부적응자, 실패자란 생각에 나는 자주 나를 채찍질했다. 그러나 뒤처지지 않으려, 살아남으려 발버둥 칠수록 나는 점점 가라앉았고 불행해졌다.
예정일보다 2주나 늦게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런 성향의 사람이라 정해져 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심심찮은 위로가 된다. 꿀잠 자느라 늦었어도, 평균 체중이 아니었어도 결국 건강하게 잘 태어났으니 말이다.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남들보다 조금 못해도, 남들보다 조금 이상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옅은 기대감 따위가 든다.
P.S
유치원 때도 우량했고 쉽게 피로를 느꼈으며 멍을 자주 때리고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