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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욘 Feb 21. 2022

아빠는 다 괜찮아.

아빠와 나는 조금 떨어져 걸었다. 안내해주시는 두 선생님들을 따라 낯선 교정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흰색 조리복을 입은 학생들은 남색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와 자주색 교복을 입은 여자애를 힐끔 훔쳐보았다. 9월의 초저녁 바람이 선선했다.


제주도로 내려간 아빠는 한 달에 한번 서울에 일을 보러 올라온다. 그런 날이면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 준비를 한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걸려온 아빠의 전화를 받으면, 아빠는 꼭 "어 수연~아빠~"라고 말하며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챙겨둔 가방을 들고 칼퇴를 한다.


집 근처 역에서 내려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는 다시 "어 수연~아빠~"라며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걸 때도 받을 때도 아빠인 거 아는데 왜 자꾸 아빠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늘 고깃집에서 양념돼지갈비 아니면 삼겹살을 먹는다. 그날도 열심히 삼겹살을 굽는데 아빠가 지금 회사는 다닐만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저냥이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첫 회사를 그만둔 거 후회하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 회사를 다닐 때는 살고 싶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어색하게 고기를 마저 집어먹었다. 그냥 좀 힘들었다고 말할걸, 터진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나는 늘 스스로를 덜 아픈 손가락이라 생각했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모범생 딸내미가 내 역할이라 믿었다. 어느 아침,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고 말 잘 듣는 착한 딸 포지션을 버리고 뜬금없이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엄마는 갑자기 너까지 왜 속을 썩이냐며 내 16년 인생에서 가장 크게 화를 냈다. 처음으로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한낮의 거리는 조용했다. 등교 시간에 만나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딜 간 건지, 매일 걷던 거리, 매일 보던 건물이 낯설었다. 마땅히 갈 곳도, 돈도, 만날 사람도 없어 한참을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생일날 사준 폴더폰을 열어 고민하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어 수연~아빠~"라며 전화를 받았다. 울먹이며 내뱉는 말을 한참 들어주던 아빠는 "아빠 회사로 올래?"라고 말했다.


엄마가 충전해  교통카드로 지하철을 타고 아빠 회사가 있는 동네로 갔다. 역에서 나오니 기다리고 아빠가 보였다. 항상 밤늦게 집에 오는 아빠를 대낮에 밖에서 만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회사에 있지 않아도 되냐 물으니 오늘은  일찍 나왔다며 아빠는 어디를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아빠를 따라 걷다 보니 내가 가고 싶다던  실업계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학교에 아빠가 미리 이야기해놓았는지, 학교에서 선생님  분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관광서비스산업인력을 양성하는  학교에서는 주요 학과와 교육 목표, 졸업  취업 현황 등을 꽤나 자세하게 소개해주고, 교내 실습 시설까지 전부 보여주었다.


어리둥절한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그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입맛이 같은 아빠와 내가 좋아하는 광어회를 먹으러 갔다. 밖에서 둘이 밥을 먹는 게 처음이라 어색해서였는지 전화로 울며 불며 난리 치던 게 민망해서였는지 나는 광어 지느러미만 연신 입에 넣었다.


아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아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짧은 가출은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등교를 했다.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께 연락받았다고, 몸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질병 결석 처리가 되었다. 개근상은 못 받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하루 종일 열심히 둘러본 것이 무색하게,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진 나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 같은 건 아무렴 괜찮았다. 원래 내 자리인 걱정시키지 않는 딸로 돌아갔다.


그때처럼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조금 떨어져 말없이 걸었다. 몇 발짝 앞선 아빠를 부르자 아빠는 전화받을 때처럼 다정하게 돌아보았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아빠도 괜찮다고 했다. 다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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