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좋아하던 소녀 육성 게임이 있다. 10살짜리 딸을 10년간 알뜰살뜰 키워내서 공주로 만드는 그 게임. 게임에서는 학교를 가거나 시장에서 일을 하거나 미술을 배우며 경험치를 쌓고, 마지막에 공주가 되기도 하고, 화가가 되기도 하고, 철학가가 되기도 한다. 치트키를 써서 부모의 재력을 최대로 높여놓고, 돈 걱정 없이 학교와 학원에 다닐 수도 있고, 1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여행만 주야장천 다닐 수도 있다. 게임과 현실의 다른 점이라 한다면 현실에는 치트키도, 공략집도 없다는 것이다. 언제 학교를 보내고, 얼마 간 무용을 배우고, 언제 어떻게 왕궁으로 초대되어야 왕자와 만나서 공주가 될 수 있는지 상세하게 나와있는 인생 공략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종료하거나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내 인생도 프린세스메이커 같길 바랐다. 언제, 어디로 가서 무슨 경험을 하면 어떤 사람이 되는지 자세히 나와 있어서 그대로 실행만 하면 원하는 엔딩을 볼 수 있는 공략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모습이, 내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끼면 게임처럼 저장해 둔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길 바랐다. 안타깝게도 나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에 사는 사람이기에 그 바람은 앞으로도 이뤄질 일 없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반 강제적인 휴직으로, 몇 달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나는 내면으로 파고들었고, 파고드는 만큼 우울해졌다. 지금의 나는 내가 원했던 엔딩은 아니란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인생을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다시 시작할 수도 없건만, 나는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고 실수를 복기하고 나의 선택을 후회했다. 우울감이 심해져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감기처럼 앓고 감기약처럼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치료한다고들 하지만, 매번 망설이곤 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도움받고 싶은 마음이 거부감을 이겼다. 첫 상담에서 의사 선생님은 항우울제 처방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약까지 먹어야 하나 싶다가도 약을 먹으면 좋아질까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우선은 몇 번 더 상담해본 뒤에 결정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을 때마다 전 주보다는 덜 우울하다는 게 느껴졌다. 처음 병원을 찾아갔을 때가 주식으로 따지면 최저점이라 반등하고 다시 올라온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일이 없다가 다시 출근을 해서 몸이 바쁘니 우울하다는 감정을 잊은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늘 사랑받고 싶었다. 그동안 아닌 척 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걸 좋아한다. 사랑받으려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뭐가 됐든 좋은 결과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꾸만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원하는 엔딩, 내가 원하는 엔딩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맞는 엔딩을 위해 나를 담금질했다. 슬프게도 그 기대는 시시각각 변해서 내가 맞추려 노력할수록 더 멀어져 갔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과를 내지 못하는 루저 같은 나를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받아들여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우울했다. 상담을 하며 알았다. 직장을 잃었다는 팩트보다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된 직장 하나 못 얻고 빌빌 거리는 낙오자로 보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또래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회사 다니면서 승진도 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는데 나는 가난한 취준생이던 25살에서 이뤄놓은 것 하나 없이 그대로 멈춰있다. '그러게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 누가 뛰쳐나오래?'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들이 뭐가 중요해. 남 신경 쓰지 마.'라고 조언해주는 말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실천할 수가 없었다. '미움받을 용기', '신경 끄기의 기술' 따위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위안이 되면서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약을 먹으면 좋아질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조금은 나아질 거라 기대해본다.